병마와 사투, 세상과 화해.. 시인의 마지막 인사

2014. 10. 3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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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종철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 '

[서울신문]'이것저것 끌어모아 시집을 낼까 두렵다. 그래서 작은딸의 힘을 빌려 눈에 뜨이는 원고부터 힘겹게 정리했다. 부끄러운 수준이다. 혹시 시간 지나 책이 되어 나오면 용서 바란다. 그리고 잊어 주길 바란다.'

지난 7월 작고한 김종철 시인이 임종 전 마지막 의식이 있을 때 쓴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문학세계사)의 서문이다. 1968년 등단 이후 46년간 천착해온 시도, 사람들도, 삶도 모두 내려놓고 떠나려는 심정이 묻어난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시는 남았다. 유고시집엔 시인의 마지막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지난해 7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3월엔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하기까지 했다. 시의 달 제정, 시인의 마을 조성, 시문학 전문지 부활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 지난 5월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다. 시인은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의식조차 사라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임종 한 달 전쯤부터 둘째딸 시내씨와 함께 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시도 다시 다듬고, 투병 중의 심정도 한자 한자 시로 옮겼다.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주사실에 들렀다/칸칸이 놓인 빈 침대의/허연 슬픔이 나를 맞았다'(암 병동에서)

'매일 아침/기도가 머리에서 한 움큼씩 빠졌다/마른 장작처럼 서서히 굳어 가는 몸/한 방울씩 스며든 항암 주사액에/생의 마지막 잎새까지 말라 버렸다.'(나는 기도한다)

'몸과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곳/아내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와 시안에도 들렀다/(중략) 부활의 집 지하3층에서/망자와 함께 이제사 천상의 집 지으리라'(절두산 부활의 집)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도 정리했다. '커브 볼 세 개로/집사람 노후 대책/어린 손자 미래 보기/그리고 지인과 작별 준비하고/위협구인 빈볼 하나쯤으로/세상과 화해하고/일곱 번째는 직구로/꼭 가고 싶은 곳을 찾고/(중략) 일생의 마운드에서/결코 교체되지 말아야 할 나는 패전투수/열 개의 버킷리스트로 기록된 자책점들!'(버킷리스트)

시인 곁에서 시집을 정리하며 마지막을 함께 했던 시내씨의 회고담이다. "아버님은 예전엔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셨다. 굉장히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된 뒤 이승의 삶을 떠나 영적 세상에 모든 걸 맡기고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하신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죽음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신 것 같다."

시인은 '병을 얻자 멀쩡한데도 따라서 투병하고 길면 6개월에서 1년 주치의 암 선고 들었던 날 밤 애써 웃었던'(언제 울어야 하나) 아내를 눈을 감는 순간에도 잊지 못했다. "혼자 남은 아내가 마음에 걸린다. 잘 부탁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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