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시인 '텟짱'의 고단한 삶 렌즈에 담아

2014. 10. 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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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철씨 포토에세이집 출간

다큐멘터리 사진가 권철(47)씨의 포토에세이집 <텟짱-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이 나왔다. 눈빛출판사 1만5000원. 이 책은 2014년 도쿄 북페어 '지금 꼭 읽어야 할 책 30선'에 선정되었다. 권철은 1997년, 한센인 요양소인 구사쓰의 '라쿠센엔'(낙천원)에서 한센병 시인 텟짱(사쿠라이 데쓰오)을 처음 만났고 텟짱이 세상을 뜰 때까지 친구처럼 지내면서 사진으로 텟짱을 기록했다.

책은 2001년 부산을 방문한 텟짱이 신라대 대학원생들과 특별수업을 하거나 해운대와 국제시장 등지에서 "정이 많은" 부산 사람들과 만나는 사진으로 시작하여 권철이 마지막으로 텟짱을 만난 날까지의 사진과 글이 주요 골자를 이룬다. 다른 한센인의 생활과 요양소 발굴작업, 한국 소록도 요양소 등도 소개하여 한센병의 역사에 관해서 간명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텟짱은 17살에 한센병 환자로 판명되어 낙천원으로 강제격리 수용되었다. 22살에 요양소 원내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한센인의 출산이 금지됨에 따라 딸을 임신한 부인은 강제낙태를 당했고 그 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떴다. 시련은 계속 이어져 텟짱도 한센병 신치료제 프로민의 부작용 탓에 신경통, 결절, 궤양, 연쇄상구균으로 인한 고열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세월을 보내면서 손은 뭉개지고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런 텟짱이 활로를 찾아낸 계기는 39살 때 접한 장기였다. 시력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를 두려면 장기판의 길과 말의 움직임을 외워야 한다. 텟짱은 장기의 정석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수도 없이 반복 청취하며 길을 연구해 '시각장애우 장기' 4단을 따냈다. 이때의 끈기와 암기력을 바탕으로 50대 후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눈도 보이지 않고 펜을 쥘 손가락도 없어서 점자도 못 쓴다. 일주일에 한번 장애우회관 직원이 찾아오면 머릿속에 저장했던 시를 구술하여 대필시켰다. 1988년에 첫 시집 <쓰가루의 자장가>를 출간하는 등, 모두 6권의 시집을 냈는데 특히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시 중 하나인 '미모사'는 이렇게 끝이 난다.

"붕대 두른 손가락으로 톡 하고 건드리니 인사성 바른 미모사, 인사를 하네. 손가락 앗아간 '나병'에게 손가락 없는 손 가지런히 모아 인사성 바른 미모사처럼 인사를 했네."

텟짱은 시 창작에 대해 "나는 시를 문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쓰고 싶어. 나의 시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준 따스한 온정과 사람의 말에서 비롯되었으니까"라고 했으며 본인의 외모에 대해서는 "나는 말이야, 내 얼굴에 자긍심이 있다네. 고생한 흔적과 슬픔이 깊게 스며 있는 내 얼굴,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온 나 자신이기에 비록 이렇게 뭉개져 있기는 하지만 좋은 얼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이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이런 풍미를 전해줄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라고 했다.

일본에서 사진을 배우면서 텟짱을 만난 것이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성장하는 권철의 뼈를 굵게 만들었다. 일반인은 한센인 텟짱의 외모를 마주보기도 꺼릴 수 있다. 권철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기본으로 한센인들을 렌즈에 담았고 텟짱은 권철의 작업을 둘러싼 주변의 의심스런 시선에 대해 "우리 (한센인)들이 죽고 나면 아마도 이 나라에는 한센병이 사라지고 말겠지. 그러니까 분명히 귀한 기록이 될 거야. 자네가 진행하는 이 사진 도큐멘트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하네"라면서 권철을 적극 옹호했다.

권철은 "고단한 삶의 역정이 고스란히 담긴 텟짱의 얼굴 표정을 섬세하게 담고 싶었고 '한센인의 모습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는 신념으로 찍었다"고 했다.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받아온 한센병 환자의 존엄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기원이 사진에 짙게 배어 있는 권철의 포토에세이집 <텟짱-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은 진짜 다큐멘터리사진이 무엇인지 강력하게 보여준다. 여수에서 한센인 사진전을 열었던 박성태와 권철의 '한일 한센인 공동사진전'이 11월 소록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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