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TV 음악프로 불편한 '악마의 간격'들
[동아일보]
미국 로커 메릴린 맨슨. 동아일보DB |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는다.
컴퓨터 키보드 위에선 곡예사, 피아노 건반 위에선 독수리. 피아노에 서툰 내게 젤 먼저 떠오르는 건 '젓가락 행진곡'이다. 양손 검지로 딱 두 개의 건반을 이리저리 눌러 본다.
지난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님포매니악'(2014년)을 보면서 악마의 음정에 대해 생각했다. 성교에 집착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속에서 성관계는 수학, 철학, 음악에 현학적이면서 해학적으로 비유됐다.
신성모독에 대한 은유가 적잖은 이 영화의 음악 얘기는 흥미롭다. 바흐의 폴리포니(polyphony·독립된 선율을 지닌 둘 이상의 성부로 이뤄진 음악)와 악마의 음정 이야기 말이다.
음악사에서 '악마의 음정'은 단2도나 감5도(또는 증4도)를 가리킨다. 감5도는 계이름 시와 파 사이 만큼의 간격이다. 건반 위에서 독수리 타법을 발휘해 보자. 건반 위에서 단 두 개의 음만으로 가장 불길한 소리를 내는 쉬운 방법은 이웃한 '시-도'를 동시에 치는 거다. 그 다음으로 음산한 소리는 '시-파'에서 난다. 18세기 유럽에서 이들은 '음악 속 악마(diabolus in musica)'로 불렸다.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데다 부르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록 음악에는 불길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악마의 음정을 이용한 곡이 많다. 블랙 새버스부터 콘까지, 경쾌함이나 슬픔보다 음산함을 선호한 밴드는 다 한 번씩, 아니 여러 번씩 이걸 썼다.
'님포매니악'을 여는 독일 록 밴드 람슈타인의 '날 이끌어줘(F¨uhre Mich·2009년)'도 감5도를 음악적 테마로 쓴 곡이다. 그 주제부 화성 진행은 미국 록 밴드 메릴린 맨슨의 '더 뷰티풀 피플'과 똑같다. D5-G#5. D5는 가장 굵은 줄을 보통보다 한 음 더 낮게 조율한 전기기타에서 내는 육중한 코드다. '레-라♭'과 '라-미♭'이 평행으로 움직이니 감5도와 단2도('라♭-라' '레-미♭)가 이리저리 반복해 충돌한다.
난 이 악마의 음정을 요즘 TV 음악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떠올린다. 음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 'interval'은 '간격'도 의미한다. '악마의 편집'보다 더 신경을 거스르는 '악마의 간격'들. 5∼60초짜리 긴장과 이완의 반복들. 수시로 틈입하는 무수한 직간접 광고들의 분자 구조가 이루는 그 불편한 간격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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