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추행 자살' 여직원, '정규직 전환' 약속도 거짓

입력 2014. 10. 26. 17:40 수정 2014. 10. 2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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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제남 의원, 중소기업중앙회 '임시직 활용' 내부 문건 공개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쪼개기 계약' 이어오다 계약 해지"

입사 2년 이틀 앞두고 유서에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져"

#지난 9월26일 중소기업중앙회(중앙회) 계약직 직원 권아무개(25·여)씨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계약해지를 당한 뒤 한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2년여의 근무 기간 동안 기업 관계자들에게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이런 내용은 생전에 지난 6월 중앙회 상사에게도 알린 바 있다. 또 유서에 "아주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고 토로하며 정규직으로 전환 되지 못하고 해고된 답담한 심경도 비쳤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는 "자살은 불우한 가정 환경 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으며, 정규직 전환 좌절만이 이유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정감사를 통해 권씨가 2012년 8월 입사 뒤 2년 동안 7차례(3개월-6개월-2개월-3개월-2개월-3개월-2개월)에 걸쳐 계약과 해지를 반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기간) 쪼개기 계약'인 것이다. 중앙회 간부들이 정규직 전환을 암시하며 권씨에게 '희망고문'을 해온 정황도 고인의 전자우편과 통화 녹취록,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 중앙회가 내부적으로 계약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한 이른바 '쪼개기 계약' 지침을 사실상 현업부서에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26일 공개한 중앙회의 '2014년 하반기 임시직 활용여부 승인 여부 통보'라는 내부 문건을 보면, 중앙회는 각 부서에 계약직 노동자의 '쪼개기 계약'을 사실상 권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30일에 중앙회 각부서에 하달된 문건은 '동일인의 계속되는 근로계약기간은 11개월 초과 불가', '동일인의 누적 근로계약기간은 2년 초과 불가'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건은 "타부서 근속, 타인명의 활용, 계약해지 후 (또는) 일정계약 후 재계약 등 어떠한 방법을 활용하더라도 동일인의 누적계약근로기간이 2년 이상인 경우 무기계약 대상이 되므로 각별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부연 설명'도 붙어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피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잘게 나누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현업부서에 권해 온 것이다.

2012년 8월 중앙회 인재교육본부 1년 계약직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교육과정을 담당했던 권씨는 입사 뒤 2년 동안 7차례에 걸쳐 계약과 해지를 반복했다. 권씨의 유족들은 지난 2월 퇴직하려던 권씨에게 중앙회가 6개월만 더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이 공개한 권씨와 중앙회 간부와의 통화내용 녹취록을 보면, 권씨가 성추행, 성희롱 사실을 전자우편으로 알렸을 때도 중앙회 한 간부는 "반강제적으로 OK(무기계약직 전환)를 받아놨다"고 정규직 전환을 암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권씨가 7월 초 '정규직 전환을 통보 받았다'고 지인에게 알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내부 지침상 계약직 전환 계획이 없는데,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권씨에게 '쪼개기 계약'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중앙회 송재희 상근 부회장과 강아무개 전무이사는 "권씨에게 정규직화를 약속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결국 권씨는 입사 2년을 이틀 앞둔 지난 8월25일 중앙회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그는 유서에 "노력하면 다 될 거라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 아주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고 토로했다.

김 의원은 "이러한 과정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 지원하기 위해 정부지원자금을 받아 운영되는 중앙회가 사회적 약자의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해 착취한 것과 다름없다"며 "정규직 전환 비용을 아끼고, 기간제법상 정규직 전환 시점인 2년까지 꽉 채워서 쓰기 위한 '악의적 기망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이 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고용현황 자료를 보면, 중앙회 계약직(업무보조원)은 117명으로 대부분 계약기간이 2년을 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중기중앙회에는 아직도 전체 직원의 30%가 넘는 인원인 1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중기중앙회의 잘못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물론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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