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자의 TV Up&Down] 칸타빌레, 지휘 어설픈 '호화 오케스트라'.. 미생, 乙이 주인공인 '삶의 현장'

유석재 기자 2014. 10. 2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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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원작을 드라마로 만드는 건 사실 밑지는 장사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원작 팬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최근 KBS와 tvN이 이런 밑지는 장사를 용감하게 시작했다. 둘 모두 대박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KBS '내일도 칸타빌레'

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은 혹평할 준비가 돼 있었다. 창의성을 보여준 전례가 드문 KBS가 '노다메 칸타빌레'를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랬다. 음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얘기를 다룬 이 일본 만화는 2006년 드라마로 제작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작을 훼손치 마라"는 팬들의 보호 본능 너머엔, 국내 제작진을 향한 깊은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하면 안 되는 드라마였다. 이 작품의 생명은 '오버액션'이다. 일본 특유의 만화적 제스처와 CG가 어울린 코믹함이다(한 대 맞고 전방 5m 정도 나가떨어지는 주인공을 상상해보라). 이걸 살리면 한국에서 외면받고, 죽이면 원래 매력이 실종된다.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일본판의 주인공 우에노 주리의 잔상이 워낙 강하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가 주인공 물망에 오르자, 뿔난 네티즌들의 대란(大亂)까지 일었다.

결국 연기파 심은경이 '욕받이'로 용감히 나섰고, '굿닥터'의 주원도 까다로운 음악 천재로 훌륭하게 변신했다. 문제는 연출. 수위 조절을 위해서라지만, 독일에서 온 색골 마에스트로(백윤식)는 그저 엉뚱한 아저씨일 뿐이고, "오라방"을 외치며 주원의 뒤를 졸졸 쫓는 심은경은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지휘가 어설프니 배우들의 열연도, 베토벤과 말러의 명곡도 어쩔 도리가 없다.

◇tvN '미생'

아프니까 직장인이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며, 일이 많으면 힘들다. 긴 하루를 마치고 술 한잔 하다 보면 이게 사는 건지, '살아지는' 건지 몽롱하다. 그래서, 우리는 '미생(未生·생사를 모르는 돌을 뜻하는 바둑 용어)'이다.

드라마 '미생'은 이렇게 아픈 직장인들 얘기다. 종합상사 인턴·대리·과장 같은 이들이 주인공이다. 이런 이들이 주연이었던 게 'TV 손자병법' 말고 몇 편이나 됐던가. 제작진은 욕심내지 않고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다. 상수(上手·뛰어난 한 수)라 하겠다. 특히 배우 캐스팅이 성공적이다. 주연을 맡은 임시완·이성민·강소라는 만화 속 캐릭터를 자신의 역량에 맞게 재해석할 줄 안다. 류태호·성병숙 등 조연들도 하나같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원작의 팬이 아니라도 공감할 수 있는 디테일도 장점이다. 출근 첫날 복사용지 위치를 몰라 헤매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 혼자 앉아있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잘못이 없는 부하직원을 혼내고 술자리에선 사과 대신 다른 엉뚱한 칭찬을 하는 상사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이 드라마는 매일 출근해서 일하다 혼나고 반성하는 보통 직장인들의 삶이 사실 얼마나 비범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하루를 버티려고 온갖 고생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다 보면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아니 우리는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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