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노동권 품다

2014. 10. 19. 20: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1. "누가 거저 주는 게 용돈이지, 자기 몸 골병 들어가며 버는 돈이 무슨 용돈이요? 남의 일 해주고 돈 받으면 임금이고, 일하는 사람한테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있는 겁니다!" (웹툰 <송곳> 중)

#2. "계약직이 암만 파리 목숨이라도 이건 아니지." "이건 부당 해고예요. 회사의 일방적인 계약 위반이라고요."(영화 <카트> 중)

영화·웹툰·방송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들의 한가운데로 '노동문제'가 걸어 들어오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저항 코드', '이념논쟁의 대상'으로 인식돼 그동안 주류 문화판에서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졌던 '노동의 권리'가 최근 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88만원 세대, 양극화 심화 같은 현실 속 모순을 드러낸 문화 콘텐츠들은 '노동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인식을 증폭시키는 구실까지 하고 있다.

이념투쟁 치부됐던 노동문제웹툰·상업영화·드라마·연극서주요 콘텐츠로 다뤄져 큰 호응웹툰 최규석 작가 '송곳' 대표적영화 '카트' 마트와의 투쟁 그려'을' 문제·반도체 산재도 작품화1%를 위한 사회 누구나 피부로노동현실 대중의 '공감' 끌어내주류문화 다양성 확대 측면도

이런 흐름이 가장 도드라지는 장르는 웹툰. 지난해 말부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중인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 대표적이다. '나는 세상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고 말하는 이수인과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이 주인공이다. 프랑스계 대형마트 중간관리자인 이수인이 구 소장과 힘을 합쳐 비정규직 직원을 해고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맞서 노조를 조직하고, 대응해 나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냈다. 1·2부를 거쳐 이달 초 3부 연재를 시작한 <송곳>은 회마다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반향이 크다. 최규석 작가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부당해고나 임금체불 등 노동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학습만화로 기획한 측면도 있다"며 "젊은층이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에 네이버에 연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곳>처럼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웹툰은 또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은근슬쩍 짚어내고, <와라 편의점>은 스스로를 '44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다음달 13일 개봉 예정인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 역시 우리 사회 약자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상업영화에서 노동문제를 다룬 것은 <카트>가 처음이다. 염정아·문정희·천우희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 등 캐스팅 면면도 화려하다. <카트>는 "회사가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줄 알았던" 마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갑작스런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대항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개인사를 통해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는 물론 88만원 세대, 10대 아르바이트생 임금 착취, 감정노동 등 다양한 노동의 문제도 함께 짚는다. <카트>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그동안 노동문제는 주로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주제의식은 명확할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기는 쉽지 않았다"며 "상업영화로서 <카트>는 휴먼드라마로 공감의 미덕을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방송에선 이미 지난해 드라마 <직장의 신>이 화제가 됐다. 코믹함이 강하고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긴 하나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 김이 겪는 에피소드엔 한국 비정규직의 일상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회식은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고 생계를 나누는 곳" 등의 돌직구 대사가 회자되기도 했다.

연극에서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반도체 소녀>가 10월10일부터 11월30일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펼친다. 황씨 문제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서글픈 현실 앞에서 과로사를 당하기도 하고, 노조에도 가입하지 못하면서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두루 담았다.

대중문화가 '노동문제'를 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는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을 전제로 한다. 무려 9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 1%를 위한 사회, 양극화 심화 등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실 문제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황 평론가는 "한국방송 2텔레비전 <개그콘서트>의 '렛 잇 비'처럼 직장인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코너도 결은 조금 다르지만 대중문화가 노동, 즉 '돈벌이의 문제'를 끌어안은 사례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흐름들은 계속될 것이고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류 대중문화의 시장이 다양화된 것이 또다른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명필름은 이전에도 <부러진 화살>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제작한 바 있고, 최규석 작가 역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등의 전작을 통해 날 선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며 "영화·웹툰 시장 등 대중문화 시장이 규모가 커지고 성격도 다양해지면서 이런 작품들도 시장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신호로 읽히지만, 아직까지는 전반적인 대세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래도 변화는 시작됐다. 대중문화는 앞으로 이 '땀 냄새 나는 현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변주해 나갈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노동운동 '학습만화' 〈송곳〉 최규석 [잉여싸롱 #31]

<한겨레 인기기사>■ 백화점 여직원, 화장실에서 본 적 있나요?"개가 다쳐도 이럴까…" 경비원 분신 압구정동 아파트"또 사고쳤어요 ㅠㅠ"…'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화제[화보] 손연재의 변신…요정에서 줄리엣으로[화보] 색을 입고 다시 태어난 '요정' 오드리 햅번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