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주류 사회 가치에 균열을 내다

이은선│매거진 2014. 10. 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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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사회를 바꾼다? 어쩌면 그 자체가 이상적인 소망 혹은 영화 같은 발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난 일련의 흐름을 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대단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변화의 단초라도 마련하는 것. 세상을 향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견고한 사회적 가치에 균열을 내고 파장을 만드는 것. 이른바 '무비 저널리즘'이 탄생한 이유이자 목적이다.

지난 5월 개봉한 <슬기로운 해법>을 예로 들어보자. 이 다큐멘터리는 보수 언론으로 대표되는 매체의 기사가 어떻게 탄생하고 또 그 기사를 싣는 언론은 어떻게 스스로 정치권력이 됐는지를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조직체인지가 까발려진다.

최근 막을 내린 DMZ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김재환 감독의 <쿼바디스>가 공개됐다. 김재환은 <트루맛쇼>(2011년)를 통해 TV 프로그램이 맛집을 선정하고 방송을 내보내는 과정에 얽힌 비리를 통쾌하게 고발했던 연출가다. 이번에 그의 칼끝이 향한 대상은 종교, 그중에서도 한국 교회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모어(이종윤)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그가 교회의 현실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요소를 버무려 극적 재미를 더하는 동시에 탈세와 배임·횡령 혐의를 받은 유명 교회 목사를 비추며 오늘날 기업화된 교회의 풍경을 꼬집는다.

↑영화 <탐욕의 제국> ⓒ 시네마달

사회 바꾸고 싶다는 열망 표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이후 풀리지 않은 의문을 추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부산시의 외압설까지 거론되며 영화제 개막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앞서 거론한 세 편의 영화는 소재와 만듦새 면에서 전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관해 주류 언론이 주요하게 다루지 않은 정보를 취재해 영상으로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만든 사람의 입장과 시선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들은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자처한다. 스스로 기꺼이 사회적 담론의 출발점이 되고자 한다.

무비 저널리즘을 만든 것은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다.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도 주요한 배경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비 저널리즘의 탄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대표적 사회고발 프로그램이었던 <시사360>(전 <시사투나잇>) <pd첩> <추적60분> 등의 프로그램이 사라지거나 축소됐고, 주요 방송사는 시사 프로그램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상 언론의 기능은 자연스럽게 영화로 옮아왔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줄줄이 개봉한 영화가 그 증거다. 김재환 감독의 <mb 추억>을 비롯해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인천대교와 인천공항 및 각종 한국 공공재를 집어삼킨 자산운용회사 맥쿼리에 얽힌 진실을 고발한 <맥코리아>, 박정희 정권을 돌아보는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와 같은 영화가 쏟아졌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은 이러한 분위기에 정점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용산 참사를 둘러싼 상황을 재구성한 이 다큐멘터리는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단순한 고발이 아닌, 기존 언론을 보완하는 기능도 해냈다. 2009년 당시 언론은 용산 참사를 보도했지만 기록은 부분적으로 공개됐다.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 모두가 놓친 틈이 생겼다. <두 개의 문>은 이렇게 해서 생긴 궁금증과 풀리지 않은 의혹에 접근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인터넷 방송과 재판 기록 등을 충실하게 뒤져 만든 재구성이다. 그럼에도 남겨진 이야기와 궁금증에 대한 성실한 접근을 보여줬다. 이러한 형식 역시 무비 저널리즘의 좋은 형태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인 것이다. 물론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는 최근 몇 년 사이가 아니라 언제고 꾸준히 만들어졌었다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영화를 무비 저널리즘의 훌륭한 사례로 언급할 수 있는 건 관객이 직접 극장 상영을 요구할 정도의 파장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무비 저널리즘의 가능성은 중요하다.

다큐멘터리만 무비 저널리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 <부러진 화살>(2011년), 장애인 사학재단의 흉악한 비리를 폭로한 <도가니>(2011년) 같은 극영화도 있다. <도가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사회 고발의 목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후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영화 <두 개의 문> ⓒ 시네마달

만듦새 깊게 고민하지 않은 작품도

지난 5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각종 난치병에 걸린 노동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사과와 보상의 뜻을 밝혔다. 기흥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고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의 첫 공식 사과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직업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이 조금이나마 '이슈 파이팅'에 보탬이 됐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회 비판적 이슈가 있는 실화를 소재로 삼아 대중적으로 흥미롭게 만든 극영화는 미처 되짚고 지나가지 못했던 지나간 사건에 대해 반추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을 한다. 최근 개봉한 <제보자> 역시 실화를 소재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사회 고발 성격을 띤다. 아주 폭넓게 본다면 이 영화 역시 무비 저널리즘의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보자>는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둘러싸고 진실을 가리기 바빴던 언론의 역할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고 있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시사 프로그램 PD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상황을 두고 '국익이냐, 진실이냐'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렇다면 무비 저널리즘은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단계인가. 대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왔던 영화는 정권 교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개봉 직전 반짝 화제를 모았지만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지는 양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흥행작으로 등극할 만큼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다. 물론 대형 멀티플렉스로부터 일방적인 단체 관람 상영 취소를 당했다는 후기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중심으로 퍼지며 '외압설'에 시달린 작품도 있지만 동시에 영화적 만듦새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은 듯 보이는 작품도 있다.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을 극장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로서는 영화 안에 질문만 있을 뿐 뚜렷한 해답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느끼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스스로 질문한 문제점에 대한 해법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어떤 문제를 인정하는 것,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하나의 해법이라면 무비 저널리즘은 지금 그 역할을 스스로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은선│매거진M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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