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머라이어, 슬픔을 삭여요 홀리데이가 그랬듯이..

2014. 10.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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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맑음. 쉿, 머라이어.
#127. Billie Holiday 'Don't Explain' (1946년)

[동아일보]

비운의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빌리 홀리데이 홈페이지

빌리 홀리데이(1915∼1959)의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를 처음 들은 순간을 어떻게 잊을까. 혹사된 성대에서 나오듯 서걱대는 음색과 과도한 비브라토. '난 바보처럼 당신을 사랑해요'라 고백하는 고문 같은 노래를. 홀리데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의 소유자'라 불렸다. 열한 살 때 성폭행을 당하고 열세 살 때 성매매에 나섰으며 여러 남편과 연인을 만났지만 하나같이 폭력적이었고 그들과 마약에 집착해 여러 차례 감옥을 드나들다 요절한 여가수.

지난주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가 보여준 최악의 내한공연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가사는 잊어버리고 음정은 엇나갔으며 미리 녹음된 노래에도 의존한 그 콘서트는 모욕적이었다.

이틀 뒤, 재즈 전문지 편집장 H에게 전화가 왔다. "캐리가 공연 때 빌리 홀리데이 노래 불렀던 거 기억해요? 혹시 약물에 취했거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 아닐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 겨우 마흔넷인 가수가 저 정도로…."

캐리는 그날 '돈트 익스플레인'을 불렀다. 트롬본 연주자인 남편이 옷깃에 낯선 여자의 립스틱 자국을 묻히고 귀가한 날 홀리데이가 비탄에 빠져 쓴 곡이다. '쉿, 설명하지 마요./곁에 있겠다고만 해줘요. …사람들이 속닥이는 걸 울면서 들어요. …상관없어요./당신이 내 곁에 있다면.'

캐리는 2008년 결혼한 열 살 연하의 두 번째 남편인 배우 닉 캐넌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1998년,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컬럼비아 레코드 사장 토미 모톨라와 결별했으니 두 번째 이혼이다. 내한공연을 이틀 앞둔 5일, 미국 언론에는 등에 새긴 '머라이어' 문신을 최근 더 큰 문신으로 덮어버린 캐넌의 모습이 일제히 공개됐다.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은 2010년 올림픽공원에서 형편없는 목소리로 최악의 내한공연을 한 뒤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자 래퍼인 바비 브라운과 약물의 세계에 빠진 후 디바는 몰락했다. H 편집장은 "동종 업계 사람과 결혼해 감정적으로 의존하다 결별해 크게 흔들린 여가수가 적잖다"고 했다. 셀린 디옹은 매니저 르네 앙젤릴과 평탄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꾸준한 가창력을 보여왔다.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인종차별을 겪으며 자란 캐리에게도 노래는 아마 나비날개였겠지. 그가 상처를 울음 같은 노래로 승화시킨다면 어떨까, 홀리데이처럼.

쉿, 머라이어. 울지 마요, 오늘밤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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