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이 새겨 쓴 옥중 '은박지 시' 두 편 첫 공개
'단식이 시작되었다/ 겨울에서 솜옷을 빼갔기 때문이다/ 얼음장 같은 바닥 위 등짝 밑에서/ 담요를 빼갔기 때문이다/ 주먹밥이 작아지더니/ 주먹밥에 박힌 콩알 수가 적어지더니/ 한 주에 한 번씩 나오던 엄지발가락만 한/ 돼지고기가 안 나왔기 때문이다'(김남주의 시 '단식' 중).
날카로운 저항정신을 담은 시를 통해 한국 문단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시인 김남주(1945~1994·얼굴 사진)가 옥중에서 쓴 시(사진)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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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시인인 고형렬씨는 최근 펴낸 자전적 에세이 <등대와 뿔>(도서출판b)에 김남주 시인이 수감 중 쓴 시 '단식'과 '일제히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 두 편을 공개했다. 두 편의 시 모두 편지봉투 크기만 한 은박지 위에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어 새긴 것이다.
'은박지 시'들은 김 시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고씨가 일하던 출판사에 찾아와 주고 간 것이다. 고씨는 "특별한 이유도 부탁도 없었다. 이층으로 내려가는 삼층 복도 끝에서 뒤돌아보던 바바리코트의 뒷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197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 시인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0년 가까이 투옥생활을 하고 49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저항의식이 뚜렷한 작품을 남겼다.
고씨는 김 시인이 처음 옥중에서 나왔을 때 시인들이 그를 성자라고 불렀다며 "남주 시인과 같은 초탈의 얼굴을 다른 문인들의 얼굴에서 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누구도 김남주 시인의 고통과 꿈과 인식을 따라갈 순 없을 것"이라며 "그가 참 서럽다는 생각이 스쳐간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번 에세이에서 자신의 고향이자 시의 원천인 속초에 대한 추억과 가족 이야기 등 지난 삶과 문학을 돌아본다. 그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마음도, 언어도, 중심도 너무 많이 망가졌는데 근원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아무리 빨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 아버지들의 역사, 바른 줄기를 기억하고 잘 간직하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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