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체조] 손연재, 그도 감수성 여린 소녀였다

2014. 10. 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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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강심장' 손연재(20, 연세대)가 드디어 아시아 정상에 섰다. 하지만 무대 뒤 소녀로 돌아간 그는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4일 성대한 막을 내렸다. 한국은 금메달 79개, 은메달 71개, 동메달 84개의 성적으로 중국에 이어 5개 대회 연속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수많은 종목의 여러 태극전사들이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은 단연 손연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하나씩 수확한 손연재는 폐막식 기수로 나서 한국을 밝게 빛냈다.

아시안게임서 손연재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1일 치러진 팀경기에서 손연재(20, 연세대), 김윤희(23, 세종대), 이다애(20, 세종대), 이나경(16, 세종고)으로 구성된 리듬체조 대표팀은 총점 164.046점을 받아 한국에 사상 첫 은메달을 안겼다. 다음날 손연재는 개인종합에서 총점 71.699점을 획득해 라이벌 덩썬웨(70.332)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 가장 높은 곳에서 애국가를 듣던 손연재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경기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할 때도 손연재는 벅찬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손연재는 "시상식에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나오니까 나름 열심히 했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준비했던 과정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십대시절 손연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 러시아 유학을 선택했다. 어린 나이에 홀로 타국에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손연재는 "시니어에 올라가면서 거의 한국에 머물지 않았다. 가장 힘든 점은 외로움이었다. 올해부터 엄마와 (러시아에서) 생활하고 있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목표가 있어서 버텨왔다"며 눈물을 닦았다.

당연히 금메달을 따리라는 기대감도 손연재에게 부담이었다. 터키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돌아와 불과 삼일 만에 대회에 출전한 것도 육체적으로 어려운 점이었다. 손연재는 "경기 전이라 표현은 안했지만 매트 뒤에서 너무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 것들을 하고자 하는 의지로 다 이겨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겉모습은 여린 소녀였지만 악바리 정신으로 무장한 손연재였다.

그간 손연재는 '외모만 예쁘고 실력은 없는 선수'라는 혹평에 시달렸다. '김연아의 빈자리 덕분에 자연스럽게 스타가 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인터넷 기사에도 악플이 끊이지 않았다. 손연재는 "나도 사람이라 악플을 보게 되고 속상하고 힘 빠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몫이다. 앞으로 꿋꿋이 열심히 하겠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손연재가 금메달을 따내면서 그를 향한 부정적 시선도 많이 줄어든 모양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성장한 손연재는 더 이상 가녀린 십대소녀가 아니었다. 이제 손연재는 한국체조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아시아의 자랑이 됐다.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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