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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림동 새우젓 입력 2014. 10. 2. 10:02 수정 2014. 10. 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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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BASIC과 M으로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수많은 내 또래 친구들과 달리, 나의 첫 데스크톱은 애플의 매킨토시였다. 몸이 불편해서 집에만 있어야 했던 누나는 미술 쪽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모색하던 부모님은 큰맘 먹고 그 시절엔 이름도 생소했던 매킨토시를 마련해주었다. 포토숍과 익스프레스를 배우던 누나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애플의 화려함이 주는 충격이란, 아직 열 살도 안 된 꼬마에겐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라니! 세상에, 화면이 총천연색이야!

아이보리색의 단정하고도 섹시한 하드웨어 디자인은 또 어떤가? 모니터와 본체, 스피커가 모두 일체형이어서 군더더기가 없었던 매킨토시는, 거대한 모니터와 쓸데없이 큰 본체, 스피커가 따로 놀던 PC와의 비교 자체가 결례일 정도로 잘빠진 놈이었다. 다들 386이니 486이니 하며 좋은 하드웨어로 갈아타는 동안 나는 "그래 봐야 그걸로 <프린세스 메이커 2>에서 dd 파일 지워서 딸내미 나신 보는 거밖에 더 해?"라며 고고하게 비웃었다. 말하자면 난 '앱등이(애플과 꼽등이의 합성어로 애플 제품 추종자를 말함) 영재'였던 셈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세월이 늘 내 편인 것은 아니었다. 잡스를 쫓아낸 이후 애플은 이해할 수 없는 제품들을 발표하다가 서서히 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PC 진영은 맥OS의 후안무치한 모사품인 윈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힘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발표 수업을 OHP 영사기가 아닌 파워포인트로 하는 게 당연해질 무렵 난 울며 겨자 먹기로 PC 진영에 합류했고, 금방 애플을 잊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윈도 자체가 맥OS를 베낀 모사품이었으니, 자존심을 조금만 꺾으면 넘어오는 것도 쉬웠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잊었는지 나중에 잡스가 돌아와서 아이맥과 아이북을 발표했을 때 다시 맥OS에 익숙해지기까지 몇 주가 걸릴 지경이었다.

부푼 마음으로 장만한 내 첫 랩톱인 아이북은 낯설기 짝이 없었고, 오리지널 앱등이였던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 내가 천박한 윈도에 너무 오래 오염되었나 봐, 맥OS가 낯설다니. 물론 애플의 제품은 몇 주를 투자해서 다시 익숙해질 만큼 가치가 있었다. 번잡함을 지우고 매킨토시 고유의 색인 아이보리로 전체를 마감한 아이북은 숨 막히게 아름다웠고, 맥OS는 몇 년 사이 더 직관적이 되었다. 이미 완벽했는데 거기에서 더 완벽해지다니, 역시 애플엔 잡스가 있어야 해. 애플의 모든 혁신을 잡스 혼자 이룩한 게 전혀 아니라는 걸 알 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애송이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요직에 앉힌 것도 잡스였고, 번잡한 제품 라인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도 잡스였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애플이 발표하는 제품의 테크놀로지 중 상당수는 이미 발표된 것들이란 사실을. MP3 플레이어는 새한이 처음이었고, 풀터치폰은 LG가 먼저였으며, 스마트폰 시장을 처음 개척하기 시작한 건 블랙베리라는 것을. 심지어 직관적인 UI(사용자 인터페이스)의 OS 또한 제록스가 먼저 개발했다는 것까지, 난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잡스가 있던 시절의 애플은 그 모든 걸 세상에서 처음 보는 것처럼 근사하게 최적화해서 발표하곤 했다. 애플이 클릭휠을 개발해 아이팟에 탑재했을 때 나는 전율했고, 잡스가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아이팟 나노를 꺼낼 때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튠스 스토어와 앱스토어는 혁명적이었고, 앱등이로서 애플이 세상을 바꾸는 걸 지켜보는 일은 흥분되었다. 아이폰4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수신율이 달라진다거나, 그런 항의 메일에 대해 잡스가 "그렇게 잡지 말라"고 퉁명스레 답했다는 등의 문제는 내게는 사소한 것이었다.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잖아. 행복한 나날이었다. 잡스가 살아 있던 시절은.

잡스의 췌장암이 다시 도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잡스가 없던 시절, 애플이 다른 PC 제작사 흉내와 골수 팬 빨아먹기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회사 간판 내리기 5분 전 상황까지 몰렸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난 조용히 서랍 속의 아이팟 미니와 터치, 아이북을 만지작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국내 정식 발매가 안 된 아이패드(iPad) 1세대는 해외여행을 떠난 가족에게 부탁해둔 상태였고, 조만간 휴대전화 24개월 약정이 끝나면 아이폰으로 갈아탈 요량이었다. 건강해줘야 해요, 잡스 씨. 아직까지는 당신이 부하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당신 것인 양 갈취하고, 뻔뻔스레 다른 회사의 제품들을 베껴가면서 열어젖히는 미래가 더 보고 싶단 말이에요.

하지만 '듣보잡 호갱'의 기도 따위가 먹힐 리 없었다. 잡스는 끝내 세상을 떠났고, 눈물을 훔치던 나는 가까운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가 스티브 잡스의 유작인 아이폰4S를 구매했다. 알아요. 당신은 워즈니악을 등쳐먹었고, 혼외정사로 얻은 딸이 찾아왔을 땐 "난 무정자증이다" 운운하며 부양 의무를 지지 않으려 발악했으며, 당신네 회사는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폭스콘에 하청을 맡겼죠. 하아, 그렇게 못돼 처먹었으면 오래라도 살아주지 그랬어요. 아이폰4S의 포장을 개봉하며, 난 조용히 중얼거렸다. 명성은 여기서 넘치게 쌓았으니, 거기선 누구 등쳐먹지 말고 착하게 지내요.

애도가 끝날 무렵 팀 쿡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뭘 팔아도 특유의 언변으로 황금을 파는 것처럼 포장하곤 했던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애플이 개발한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에 비하자면, 새 CEO 팀 쿡의 키노트는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 조회처럼 지루했다. 그렇게 지루한 인간이, 잡스가 그렇게 고집하던 3.5인치 화면을 버리고 4인치 화면을 탑재한 아이폰5를 발표할 때 내 분노는 화산처럼 폭발했다. 우리라고 큰 화면에 더 많은 콘텐츠를 담을 수 있다는 걸 몰라서 잡스 생전에 '스마트폰은 한 손 안에 들어와야 함' 운운했는 줄 아냐. 잡스가 없다고 자존심 다 버리고 이럴 수 있냐. 밉기는 조너선 아이브도 매한가지였다. 잡스의 성공을 도운 일등공신이었던 아이브는, 잡스 사후에는 스큐어모픽(실제 사물과 비슷하게 보이는) 디자인을 다 폐기하고 iOS를 플랫 디자인으로 갈아엎었다. 경쟁자로 쳐주지도 않았던 윈도 모바일 진영에선 '윈도8 따라하는 거냐'라며 비아냥거렸다.

잡스라면 감언이설로 '사이즈 변경'을 납득시켰겠지

물론 스마트폰의 기술 혁신이야 이미 발전할 만큼 발전한 상태이고, 예전처럼 '전에 없던 혁신'을 보여주며 사소한 기능 따위는 후발 주자들의 잔재주라면서 무시하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삼성과 샤오미는 시장을 위협하고, 그 와중에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사이즈와 가격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동안 무시했던 NFC도 탑재하고, 시장의 대세가 된 플랫 디자인도 따라가야 했겠지. 잡스였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도 맥에 자사의 프로세서 대신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했던 적이 있지 않나. 물론 잡스였다면 아마 "새 아이폰을 만들면서 우린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손은 두 개라는 것을 말이죠" 따위의 감언이설로 사이즈 변경조차 납득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천재 장사꾼 잡스의 그림자 아래 마냥 머물러 있고 싶었던 나와 같은 앱등이는, 앞으로의 애플은 내가 알던 애플일 순 없다는 사실을 아이폰6 키노트를 보며 천천히 받아들여야 했다. 마치 아이돌 그룹이나 왕년의 미남 배우가 그런 것처럼, 세상 어떤 것도 천년만년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애플 또한 조금은 시시해진 채, 썩 나쁘지 않은 신제품을 발매하는 회사 정도로 존속하겠지. 그래도 왕년의 오빠들을 향해 변치 않는 마음으로 열광하는 올드 팬들처럼, 나 또한 아픈 가슴을 붙잡고 신제품 발표를 기다리겠지. 그러니 이 글은, 20여 년간 앱등이로 살아온 자가 비로소 잡스의 부재를 인정하고 그의 빈자리에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인 셈이다. 안녕, 잡스. 당신이 없는 애플은 조금은 시시하지만, 어떻게든 사랑하려 노력해볼게요. 내 첫 데스크톱과 첫 랩톱, 첫 스마트폰과 첫 태블릿을 만들었던, 나의 애플이니까.

나의 iPad에서 보냄

중림동 새우젓 (팀명)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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