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비타민D 유도체, 췌장암 치료 효과 높여

이상엽 기자 2014. 9. 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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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접근 막는 종양 보호막 걷어내 생존율 대폭 상승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사망률이 높은 암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5년간 생존율이 7~8%에 불과합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악성 췌장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췌장암의 특징은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약물 저항성 때문에 다른 암에 비해 생존률이 크게 떨어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는 아직까지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솔크 연구소(Salk Institue) 로널드 에반스(Ronald Evans) 박사팀이 학술지 'Cell'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췌장암 조직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세포 장애물, 즉 일종의 보호막을 비타민D의 유도체가 붕괴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타민D 얘기는 잠시 뒤에 하고, 우선 이 보호막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연구팀은 췌장암 조직이 증식하기 위해서 주변의 세포들로 하여금 염증을 유발시키고 촘촘한 보호막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보호막은 종양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반면 면역세포나 항암제는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이 보호막이 췌장암의 치료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췌장암 치료의 돌파구도 여기서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먼저 종양 조직 주변의 염증성 환경을 정상으로 복구하고, 나아가 종양 주변의 보호막을 없애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죠.

그래서 에반스 박사팀은 이 방어벽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를 공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췌장 성상세포(pancreatic astrocyte)입니다. 평소 이 세포는 손상에 쉽게 반응해서 활성화돼 새로운 세포의 증식을 촉진시킵니다. 그런데 종양이 있을 때는 활성화 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비정상적인 '과열' 모드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과열된' 성상세포는 오히려 종양세포가 증식하고 보호막을 쌓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성상세포의 활성화를 막아야만 합니다.

연구팀은 지난해 화학적으로 변형을 가한 비타민D의 합성 유도체를 이용하면 간세포에서 성상세포가 불활성화 되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췌장에서도 이 변형 비타민D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었지요. 특히나 종양 주변의 활성화된 성상세포에 비타민D와 결합하는 수용체가 과다 발현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층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연구팀은 실제로 비타민D 유도체를 성상세포에 투여하자, '과열된' 성상세포가 재빨리 활성을 잃고 그 결과 염증과 종양 증식이 둔화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감이 '팍'하고 왔습니다.

이번엔 곧바로 생쥐를 대상으로 비타민 D 유도체가 췌장암의 성장을 막는지를 시험했습니다. 그러자 기존 항암제와 비타민D 유도체를 함께 사용했을 경우엔 항암제만 투여한 경우에 비해 생쥐의 수명이 50%나 증가했습니다.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 가능성에 빛이 비춰진 순간입니다.

에반스 박사는 "비타민 D는 이미 여러 번 췌장암에 임상시험을 실시했지만 그동안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결과는 아주 놀랍다"고 밝혔습니다. 비타민D 대신 그 유도체를 사용한 차이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존 비타민D는 빠르게 분해됐기 때문에 효과를 내지 못했는데, 변형된 비타민D 유도체는 구조가 조금 다르기 때문에 분해되지 않고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겁니다.

비타민D 유도체는 종양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 종양 주변의 보호막을 걷어내 항암제나 작용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식으로 작용합니다. 또 최근 연구에서는 혈중 비타민D 수치가 낮은 사람들의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다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연구팀은 비타민D 수치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경우 성상세포에서 비타민D 수용체의 신호전달도 정상적으로 유지돼 암 증식을 차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 방식으로 췌장암을 치료하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종양 주변의 염증 환경을 원 상태로 복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 조직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종양에 더 많은 항암제를 도달시킬 수 있고, 동시에 주변의 성상세포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연구팀은 췌장암 다음으로 치료가 어려운 신장암이나 폐암, 간암 등에도 비타민D 유도체를 이용한 치료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의료진과 함께 이 비타민D 유도체의 항암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에도 착수할 전망입니다.

췌장암이 아니더라도 비타민D는 여러모로 우리 몸에 유익한 물질입니다. 비타민D는 칼슘 흡수에 도움을 주고, 대장암이나 유방암 등을 예방하는데도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유나 등푸른 생선, 표고버섯 등의 식품에도 많지만 가장 확실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일광욕입니다. 하루 20~30분 정도 햇볕을 쬐며 피부에서 비타민D가 합성되도록 하면 기분도 좋고, 암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이상엽 기자 scien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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