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정보 양극화, 무력해지는 부모들

박송이 기자 입력 2014. 9. 20. 14:50 수정 2014. 9. 20. 14: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강남권 엄마들의 정보력 목동·대치동과 큰 격차… 대학 수시전형 "불공정한 게임이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고3 학부모 강석우씨(가명)는 두 아들을 키우며 큰 욕심은 없었다. 두 아들 모두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강씨도 강씨의 아내도 아이들에게 성적으로 잔소리를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이 뭘 하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제 몫의 노동을 하고 사회에 잘 섞여 살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큰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달라졌다. 고1이 되면서 큰아들은 그렇게 가기 싫다던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동네에 있는 영·수학원을 알아보니 학원비가 한 달에 50만원이었다. 강씨는 중소업체 공장에서 근무하고, 강씨의 아내는 빌딩 청소일을 하며 최저임금을 받는다. 두 사람의 급여를 더하면 한 달에 300만원이 안 된다. 월 50만원은 가계에 적잖은 부담이었지만, 학원에서는 대치동이나 목동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아들이 공부하겠다는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들이 원하는 것을 지원해주고, 아들은 저 할 만큼의 노력을 하면 대학 입시는 그걸로 충분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얼마 전, 강씨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지난 8월, 수시전형이 다가오면서 아들은 지원할 대학들과 학과를 정했다. 수시전형은 6개까지 원서를 쓸 수 있었다. 아들은 지원할 6개의 학교 중 수도권 소재 한 대학의 관광학과를 제일 가고 싶어했다. 강씨는 지원 대학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일반전형, 학교생활기록부, 추천서, 자기소개서, 학교 소개자료…. 전형별·단계별로 짜여진 복잡한 입시요강과 용어들이 간단치 않아 보였다. 막막한 마음에 지인들의 인맥을 수소문해 회사 동료가 잘 안다는 입시학원 강사와 연락이 닿았다. 강씨는 입시학원 강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전형들을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 끝에 강씨가 내린 결론은 지난 2년 반 동안 해온 입시 준비의 절반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노력·부모의 뒷받침만으론 부족

지금의 대학입시는 학생의 '노력'과 부모의 '뒷받침'만으로는 크게 부족했다. 중요한 것은 '정보'였고, '정보'에 기반한 '관리'였다. 아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대학의 학과는 내신 반영 비율이 낮았다. 수시·정시를 통틀어 수학 점수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고3 여름방학까지 매일 학원을 드나들며 수학 공부를 한 것이 헛수고였던 셈이다. 대신 중요한 것은 영어였다. 영어로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면접 비중이 높았고 면접에서도 영어 질문이 있었다. 아들은 독해 위주의 입시 영어만 공부해 회화나 작문은 약했다. 자기소개서에는 동아리 활동과 지망학과의 연관성을 연결시켜 써야 그럴싸해 보인다고 하던데 내세울 만한 동아리 활동도 없었다. "그렇다고 없는 얘기를 억지로 꾸며쓸 수도 없고…." 강씨는 답답했다.

막막함을 토로하자 학원 강사는 강씨에게 "진작에 관리를 하지 않고 뭐했냐. 몇 달 만이라도 일찍 찾아오지 그랬냐"고 타박했다. 강씨는 입시가 이렇게 복잡하고, '관리'가 필요한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씨에게 '관리'란 아이들의 등·하교를 확인하고 학교에서 별탈 없이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를 체크하는 정도였다. 청소일을 하는 아내가 새벽에 출근을 하면, 강씨는 아침을 먹여 아이들을 등교시켰다. 야근이 잦았던 강씨 대신 저녁에 아이들을 돌본 건 아내였다. 아내 또한 새벽 출근 때문에 밤늦게까지 아이들과 학교나 진로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관리'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고 해도 강씨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공장에 취직한 강씨가 아이들의 고등학교 공부나 대학 입시에 대해 해줄 수 있는 말은 적었다. 대치동이나 목동에서는 '관리'를 위해 고가의 입시컨설팅을 받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강씨는 "미리 알았다고 해도 그런 걸 할 만한 형편도 안 됐고, 생각의 수준도 지금의 입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니 딱히 방안이 없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주요대학들이 수시모집을 시작한 9월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국대학교 입학정보관에서 학생들이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권 엄마들은 고교 1학년부터 '관리'

대학 수시전형을 앞두고 강씨처럼 막막함을 토로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입시 정보 때문이다. 강씨처럼 정보가 없어 막막해 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정보를 먼저 독차지하기 위해 정보전쟁을 벌이는 학부모들이 있다. 정보전쟁이 일어나는 쪽은 대치동·목동, 소위 말하는 교육특구다. 정보가 부족한 곳은 목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강남권 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입시 결과 차이는 정보 격차를 짐작케 한다. 2014학년도 서울대 진학 상위 고교 1~25위를 살펴보면 외고, 과학고, 자사고를 제외한 일반고는 경기고(23명·강남구)가 유일하다. 광역단위 자사고도 안산동산고를 제외하고 세화고(27명·서초구)와 휘문고(25명·강남구)뿐이다. 보통 50명 이상을 서울대에 보내는 외고나 과학고, 또는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민사고에는 못 미치는 숫자지만, 서울대에 1~2명 입학시키기도 힘든 대개의 일반고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교육공동체 나눔학원의 김유진 부원장은 학원 아이들의 대학입시를 상담하면서 지역별 입시 정보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나눔학원은 영리보다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사교육 대안교육공동체다. 나눔학원이 학원의 위치를 금천구로 정한 이유도 금천이 서울시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김 부원장은 정보 격차가 입시를 시작부터 불공정한 경쟁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과 목동의 엄마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관리'를 한다. 어디 나가서 무슨 상을 받아 와라, 내신은 얼마만큼 받아 와야 한다 등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때깔 나게 채울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컨설팅은 비싼 경우 1회에 몇십만원이 넘는다. 대치동에서는 적어도 중3 겨울방학이나 고1부터 관리를 시작한다. 그래야 학생부를 만들어갈 수 있다. 늦어도 고2 겨울방학부터는 한다. 이때는 학생부는 못 만들어도 여러 교과목들 중 선택해서 집중해야 할 과목, 빼야 할 과목들을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금천구 아이들 대부분은 고3 때까지 전 과목을 붙잡고 있다. 동아리도 경제학과를 지망하겠다는 애가 배드민턴부에 들고 있다. 자소서에 장래희망과 동아리 활동을 어떻게 연결해 쓸 수 있겠나. 정보가 없고 관리가 안 되기 때문에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최근 입시 정책의 핵심은 '다양성'과 '자기주도 학습'이라는데, 그렇다면 아이들 스스로 목표를 확실히 정해서 '자기주도'를 하면 되지 않을까. 김 부원장은 현실을 모르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돈 있는 애들은 부모가 관리하고, 학원이 관리한다. 아주 독하고 특출난 애가 아니면 학생부, 자소서에 쓸 스펙들을 알아서 찾아가면서 쌓아가기 어렵다. 아무리 똘똘한 애라도 애는 애다. 정보도 부족하고 정보 선별능력도 없다. 지금 말하는 자기주도학습이란 100% 부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학습이다."

'부모의 입김'이 다른 어디보다 센 대치동과 목동의 풍경은 금천구나 구로구 강씨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지역의 '정보력'을 경험한 학부모들은 이들 지역이 타 지역과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3년 전, 남편의 이직으로 목동에서 성남으로 옮긴 학부모 심혜진씨(가명)는 요즘 이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고3 아들의 입시를 앞두고서다. 입시정보를 공유하고자 같은 학교 고3 엄마들 모임에 몇 번 나갔지만, 목동 엄마들의 모임과는 성격이 달랐다. 고3 엄마로서 정서적 공감대만 나눌 뿐 서로 나눌 만한 정보가 없었다. 반면 목동 엄마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예닐곱명씩 소그룹 단위로 모여 입시정보를 공유한다. 주로 입시에 성공한 엄마들의 정보를 전수받아 잘 가르치는 학원, 개인과외 선생, 입시컨설팅을 소개받는다. 대치동도 마찬가지다. 수시전형을 앞두고 대치동 학원가 카페에서는 '브런치 컨설팅'이 한창이다. 학부모 서너명이 모여서 대학을 잘 보냈다는 소문난 대입컨설턴트로부터 컨설팅을 받는다. 이렇게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끼리는 40년지기보다 더 유대관계가 끈끈하다. 말 그대로 이익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이를 서울대에 보낸 엄마가 이웃집 고3 학생의 입시컨설턴트가 되기도 하고, 형이 서울대에 갔다면 동생은 공부를 못하더라도 상위권 학생들의 과외모임에 낄 수가 있다. 다 '정보' 때문이다.

'정보'가 입시에 중요한 변수가 되면서 유명 입시컨설턴트의 컨설팅 가격은 100만원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유명 입시컨설턴트를 둘러싸고는 전설 같은 풍문이 대치동 바닥에 떠돈다. '모 입시컨설턴트가 작년에 내신 4등급을 명문대에 보냈다더라, 누구는 학교에서 '인서울은 어림없다'고 했는데 누구한테 상담받더니 '인서울'은 물론 상위권 대학을 들어갔다더라'는 소문이다. 유명 입시컨설턴트들은 대학입시 전략 설명회에서 호기롭게 말한다. "ㄱ대를 가고 싶은데 점수가 안 된다고요. 점수가 안 되면 방법을 찾아야지 왜 대학을 낮추시나요. 어떻게 그 점수로 ㄱ대를 갈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빨리 찾아와서 상담을 받으십시오."

학원가로 유명한 서울 대치동에서 한 남학생이 책가방을 멘 채 학원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김기남 기자

상담 받는데 100만원 받는 입시 컨설팅

하재철 뿌나교육협동조합 준비위원장은 입시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일부가 독점한 상황이 컨설팅 비용의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의 입시컨설팅은 너무 부풀려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입시컨설턴트들은 희망을 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ㄱ대를 가기에는 힘들다고 하지만, 입시컨설턴트들은 설명회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작년에 그 점수로 들어간 아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무조건 자식문제에 있어서는 현실보다는 이상에 빨려들어가게 돼 있다." 뿌나교육협동조합에서는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블로그에 입시 정보와 합격생의 자기소개서 예시 등을 공개했다. 하 위원장은 "입시 다양화는 긍정적인 방향이기는 하나 입시 다양화가 공정하게 정착되려면 무엇보다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은 정보 격차 상황은 없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지역에 따라, 경제적 능력에 따라 벌어지는 입시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균형추가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학교다. 김유진 부원장은 "입시가 너무 다양해지다보니 부모의 경제력이 입시의 경쟁력이 되었다. 아이들의 다양한 적성을 살린다는 맥락에서 입시가 다양해지는 것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입시제도가 맞는 방향이 되려면 부모가 모두 정보에 능통한 고학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정보를 선별하고 취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의지를 만들어주는 건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또한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서열화되면서 균형추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학교 또한 정보 격차의 양극화 구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한 특목고 교사는 적어도 수시전형에서는 특목고와 일반고가 "게임이 안 된다"고 말했다. 수시는 교내 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관건은 학교가 얼마나 양질의 대회를 많이 만들었는지, 학생이 교내활동을 얼마나 밀도 있게 했는지다. 특목고는 동아리 활동을 해도 학생부, 자소서에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염두에 두고 활동을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밀착관리를 한다. 고1 때부터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혹은 부족하다면 네 번 다섯 번까지 일대 일 상담을 하며 이력을 만들어간다.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교사의 열정이 없으면 안 되고, 교사의 열정이 있어도 학교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안 된다. 특목고는 이게 유기적으로 잘 연결돼 있다.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학교-교사-학생-학부모라는 학교 구성원의 협조체제가 잘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차이에서 학교 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수시에서 특목고는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목고는 학생부만 해도 기본이 30장이 넘어간다. 정보를 바탕으로 관리가 잘돼 그만큼 쓸 게 많다는 것이다. 최근 자사고는 특목고를 좀 따라오는 것 같은데, 일반고는 여러 가지 여건상 불리해 보인다."

고등학교 서열화가 굳어지면서 일반고 공동화 현상은 입시정보 격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입시정보 또한 특목고나 자사고로 쏠릴 수밖에 없다. '좋은 대학'에 간 학생들의 데이터는 그 학교의 정보 자산이다. 어떤 활동, 어떤 기록에 대학이 반응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을수록 다음해 입시에 전략적 대응이 가능하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특목고, 자사고로 쏠리면서 정보 또한 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다른 특목고 교사의 말이다. "수시전형은 점점 확대되고 있고 대학은 학교 활동을 충실히 한 학생을 뽑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일반고가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나. 솔직히 입시 성과 압박이 강한 특목고나 자사고 교사보다 일반고 교사의 열정이나 의지는 덜하기가 쉽다. 물론 일반고에서도 열정이나 의지가 높은 선생님들이 있다. 그러나 열정과 의지가 있어도 일반고에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대학을 잘 보낸 누적된 데이터가 있어야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교사도 노력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고등학교 구조에서 일반고에서는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목고·자사고와 일반고도 정보격차

한 일반고 교사는 고등학교 서열화가 암암리에 대학들의 고교등급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학교 학생과 다른 학교 학생 케이스를 비교하면서 고교등급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고교등급제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일반고의 정보 소외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애들 원서를 쓰면서 느끼는 것은 일반고에서 3.5등급, 자사고에서 3.5등급, 특목고에서 3.5등급의 정보는 완전히 다른 정보라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 학교에서 내신 1.2등급 받은 최상위권 학생이 명문 모대학 1차 전형에서 떨어졌다. 학교에서도 많이 신경을 썼고 집에서도 관리를 많이 한 학생이다. 학생부나 자소서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반면 특목고에서 3.9등급 받은 학생은 같은 학교 1차에서 붙었다고 하더라. 이런 케이스를 접할 때마다 대학에서 고교등급제가 작동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서울 상위권 대학의 입학처 담당자들은 소위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특목고·자사고에 입학설명회를 가서 '우리 학교가 ??고 좋아하는 거 아시죠?'라고 넌지시 말한다고 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학교별로 고교등급제가 적용되고 있다면 학교별 정보도 공유해봤자 소용이 없다. 자기 학교 정보만을 계속 활용할 수밖에 없고, 일반고로서는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소수의 특목고를 빼고 모두 평준화한다면 각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학교 간 정보 불균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따라, 지역에 따라, 부모 경제력에 따라 입시정보 격차가 심해지면서 입시는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됐다. 김유진 부원장은 "대부분 저소득층 부모는 아이가 그저 아무 대학이나 가면 되는 줄 안다. 정보력이 없어 얼마 안 되는 노후비용까지 다 쏟아부어서 (입시에) 쓸 데 없는 공부를 시킨다. 지금 아이들 곁에는 진지하게 그들의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줄 어른이 없다"고 말했다. 하재철 위원장은 이러한 정보 격차 상황에서는 더 이상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영웅이었는데, 지금 세대에게는 영웅이 아니라고 하더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분 수직상승의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신분상승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영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