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페이, 역시 '물건'인가

정용인 기자 입력 2014. 9. 20. 14:43 수정 2014. 9. 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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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잡스 이후' 애플의 전략… 삼성은 2007년 아이폰 충격에서 교훈 얻었나

애플은 9월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플린트 센터에서 열린 키노트 행사에서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 그리고 애플페이, 애플워치를 발표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애플을 이끌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것은 2011년 10월. 3년이 흘렀다. "혁신은 없었다"는 것이 한국 내 대부분 언론의 반응이었다. 평균적으로 찬사 일색인 외국 언론의 반응과 달랐다. 왜였을까. 애플이 이번에 내놓은 새로운 기기와 서비스는 애플이 매번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insanely great'(미치도록 훌륭한) 것일까.

"저도 한국 언론들이 왜 그런 반응이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김○○ 기자에게 만나서 한 번 계급장 떼고 이야기해보자고 했어요. 그래도 명색이 IT전문매체의 기자인데, 왜 그렇게 썼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공개적으로 포스팅 했습니다. 반응이 없더군요."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기자는 애플의 키노트가 생중계됐던 9월 10일 새벽, 갖고 있던 애플기기로 키노트 행사를 봤다. 행사를 시작한 지 1시간이 되도록 행사는 제대로 중계되지 않았다. 중국어 더빙 때문에 팀 쿡의 연설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일본이나 유럽, 심지어는 행사가 열렸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잡스가 살아 있을 때는 이런 일은 없었다.'

찬사 일색인 외국과 상반된 한국 반응

올해 6월 한국에서 발매된 미국 와이어드의 객원기자 프레드 보겔슈타인의 책 <도그파이트>에는 아이폰이 처음 공개될 당시 무대 뒤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비화가 실려 있다. 키노트에 발표될 아이폰은 문제점 투성이였다. 노래나 동영상은 일부분만 재생될 뿐 전체를 재생하려면 무조건 충돌이 일어났다. 임시방편들이 동원됐다. 와이파이 송수신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발표를 맡은 팀들은 시연 제품에 안테나선을 납땜해 무대 뒤 영상송출장치에 연결된 선으로 운영했다. 무선신호알림이 약해지는 것을 못보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져 아이폰 화면상의 무선신호 막대를 무조건 5개 풀로 차 있는 것처럼 조작했다 등등. 그래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애플 키노트는?

"IT업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 아닙니까. 삼성도 갤럭시 기어 등을 공개할 때 바로 판매에 들어가진 않았어요.(편집자 주: 물론 사람들이 기다려야 하는 기간은 차이가 있다) 애플의 메시지는 이겁니다. '제대로 된 것이 나오니 허접한 거 살 생각 말고 기다리라'." 한 소장의 말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을 이끄는 사람은 팀 쿡이다. 그의 리더십은 분명 스티브 잡스와 다르다. 잡스 사후, 그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관계로 거론되었던 스콧 포스톨은 애플에서 퇴사했다. <포춘>지 선임기자 아담 라신스키가 낸 책 <인사이드 애플>이 밝히고 있는 애플 사내 정치 또는 대립은 생각 외로 심각했다. 디자인을 담당하던 조너선 아이브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보브 맨스필드는 팀 쿡의 중재가 없으면 스콧 포스톨과 한 자리에서 회의를 하는 것 자체도 거부했다. "이번 키노트 행사로 팀 쿡의 리더십은 대체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본다." 강정수 박사(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원 전문위원)의 말이다.

이번 키노트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애플워치의 공개였다. 애플워치를 소개하면서 팀 쿡도 스티브 잡스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원 모어 싱"(One more thing)을 말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 4년 만에 애플 키노트 행사에서 나온 말이다. 애플워치의 외형상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 크라운의 도입이다. 흔히 용두(龍頭)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계에 밥을 주는 장치의 재활용이다. 한 소장은 "처음 나온 아이팟이 휠로 곡을 선택하게 했을 때 받았던 충격 같은 것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팀 쿡도 키노트에서 이 디지털 크라운이 "맥 컴퓨터에서 마우스의 도입, 아이팟에서 퀵 휠, 아이폰에서 멀티터치의 뒤를 잇는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 나온 이른바 '스마트워치'에서 이 부품의 기능과 활용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업체는 없었다. 익명을 요청한 IT업계의 한 저명인사는 자신이 본 애플워치의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애플워치를 소개하는 애플 홈페이지를 면밀하게 봤는데, 어디에도 자신들이 내놓은 시계가 스마트워치라는 표현은 없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애플워치는 애플이 만든 '시계'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애플이 내놓은 시계라는 것은 시계 전문제조사 '태그호이어가 내놓은 시계', '스와치가 내놓은 시계'라는 것과 똑같다."

아이폰6와 6플러스의 발매가 시작된 9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새 제품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매장으로 입장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왜 아이워치가 아니고 애플워치인가

애플이 내놓은 시계가 왜 종전의 이름 부여처럼 '아이워치'가 아니고 '애플워치'인가를 두고 외국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몇 가지 유력한 설로 떠오른 것은 과거 아이폰, ios라는 이름을 두고 시스코시스템스와 겪었던 분쟁이다. 그런 분쟁을 피하는 동시에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놓은 'i'에서 탈출해 '애플'이라는 집단 정체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이폰 등의 'i'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확하게 정리된 게 없다. 다만 1998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을 소개하면서 아이맥의 'i'와 관련해 '인터넷'(internet), '개인'(individual), '가르치다'(instruct), '알리다'(inform), '영감을 주다'(inspire) 등의 단어가 적힌 슬라이드를 배경에 깔았었다.

강정수 박사는 애플워치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애플페이라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이제 애플은 OS에 페이먼트 즉 지불을 결합한 시스템을 내놓은 것이다." 애플이 이날 공개한 휴대폰 영상을 보면 지문인식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하고 바로 결제가 이뤄지는 식으로 간편하게 작동한다. 페이먼트, 즉 돈거래 또는 지불에서 핵심은 보안사고 없이 거쳐야 하는 단계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핵심이 있다.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조제스의 자서전은 아예 '원클릭'이라는 제목으로 아마존의 온라인거래에서 차별화된 혁신을 담아냈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IT전문가들은 "아이폰5S가 발표될 당시 추가되었던 '지문인식'이 페이먼트, 곧 지불과 결합될지는 몰랐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강 박사는 "이번에 발표된 애플페이는 시작에 불과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금까지 있어 왔던 파이낸스 시스템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 박사의 말. "한국은 아이폰의 점유율이 10%밖에 안 되지만 미국은 30~40%가 된다. 지금 10대가 자라나면 어쩌면 신용카드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고 애플의 패블릿, 워치로도 지불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기기 아무거나 그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만 인식되면 지불하는 데 장애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아직 남았다. 이번에 선보인 애플의 혁신은 한국에서는 어떻게 될까. 스마트기기 관련 커뮤니티는 '한국 정부와 시장에서의 규제' 때문에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규제수단은 다 없앴다. 10월 말이면 카드정보 저장 이슈를 담고 있는 여신금융협회 표준약관 개정도 완료된다. 이론적으로 애플페이를 막는 규제는 없다. 애플이 PG사로 등록을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금융위원회 담당부서 관계자의 말이다. "규제 때문에 진출 못할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애플페이는 한국에서는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 소장은 단언했다. 시장규모 등을 볼 때 굳이 한국에서 해야 할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다. "뭐 하러 복잡한 PG사 등록을 할 필요가 있나. 조그마한 한국 시장을 보고." 여기에 이미 통신사별로 모바일 페이먼트 수단을 개발해 놓은 데다가 카드사들은 카드사대로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또는 삼성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럴까. 예를 들어 LGU+는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폰을 발매한다. 통신시장 3위 업체인 LGU+는 이 '기회'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계열사인 LGCNS가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m페이'의 마켓셰어를 갉아먹더라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전격 도입을 선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음에는 카드사들과 협상이라는 난관을 거쳐야 한다. 내 결론은 여전히 한국에서는 애플페이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의문은 또 있다. 이번에는 애플워치다. 디지털 크라운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것이었더라도 삼성은 정말 생각하지 못했을까. 삼성의 정보력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애플이 특허로 선점해놨기 때문에 못 만든 것은 아닐까. 앞서 인용한 IT업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의 특기는 처음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뛰어들면서 시장을 재정의하고 규모를 바꾸는 것이다. 이번에 내놓은 애플워치의 특징은 지난 15~20년간 시계를 차지 않던 사람들에게 '애플워치를 차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최소한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팔린다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1000만명이 사면 10조원이다. 스위스 시계회사의 전체 매출이 26조원이라는 기사를 봤다. 애플이 시계를 1년 팔면 스위스의 반 정도를 파는 것이다." 삼성은 어떤 계산을 했을까. 계속되는 그의 말. "삼성은 아무리 계산해도 지금까지 이 시장의 규모는 500만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도 한 회사가 아니라 다 합친 숫자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갤럭시 기어는 '시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기어S는 '팔찌 모양의 커뮤니케이터'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애플은 자신은 시계라고 선언했다. 만약 삼성이 입장을 바꿔 다시 기어는 시계라고 이야기한다면…. 삼성으로선 이미 지는 게임이다."

"삼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2007년 아이폰 충격 이후에 휴대폰 업계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애플의 이번 키노트는 지금까지의 게임의 장과 전혀 다른 장으로의 진입을 선언했다. 관련 업계는 2007년의 휴대폰 업계의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얻었을까. 서종훈 연세대 미디어시스템연구실 연구원은 "돌이켜보면 아이폰의 대두를 보면서도 종전 스마트폰 업계에서는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위험하다는 인식도 없는 상태에서 치고 나왔으니 '파괴적 혁신'이 가능했다"며 "애플워치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몇 년 전부터 나왔고, 삼성 같은 회사도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예측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의 IT업계 인사의 말. "시장에서 패스트팔로어냐 혁신가냐는 의미가 없다. 삼성은 기어를 발표해보니 어느 틈에 혼자가 되었다. 이번 발표로 삼성도 안심했을 것이다. 삼성은 기어를 발표하면서 관련 업체에 열려 있다고만 했을 뿐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거론은 없었다. 반면 이번 애플워치의 키노트를 보라. 헬스기기 등 관련 업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같이 만들어갈 새로운 혁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또 하나의 차이. 팀 쿡은 에디 큐 등 개발책임자들에게 설명을 맡겼다. 한 소장의 말. "애플은 어떤 분야의 혁신을 이끄는 사람들,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삼성은? 통역을 담당하는 외국사람을 제외하곤 신종균 사장뿐이다. 누가 갤럭시폰을 만들었고, 혁신을 주도한 사람은 어떤 팀의 누구였는지가 없다. 그게 차이다." 쉽게 말해서 삼성에는 아직 '사람'과 '이야기'가 없다. 팀 쿡은 미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애플워치를 거론하며 '아이워치'라는 말을 썼다. 다시 수많은 '설'들이 나왔다. 하지만 삼성 갤럭시에는 주목할 만한 '스토리'가 없다. 단지 팬덤의 충성도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의 운명을 가를 핵심일지도 모른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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