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문제는 세금이다]영세 고물상 세금 늘고, 대기업 비과세 연장.. 박 정부 '비과세·감면제 폐지' 부유층에 유리

이재덕 기자 2014. 9. 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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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공평부담 원칙 따라 세금 방어·회피 능력 있는 대기업엔 혜택 줄이고
세금 방어 힘든 서민에겐 비과세·감면 혜택 많이 가야

폐지·고철 등을 수집하는 영세 고물상들은 올해부터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난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재활용폐자원 의제매입세액공제율'이 하향조정됐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고물상이 폐지·고철 등 재활용폐자원을 사들인 비용의 5.66%가 세금에서 공제됐지만 올해부터 세액공제율이 4.76%로 낮아지고 2016년부터는 2.91%로 대폭 줄어든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간 1000만원의 재활용품을 구입하던 고물상은 지난해 57만원의 세액을 공제받았지만 올해에는 공제액이 약 47만원으로 줄고, 2016년에는 29만원 선으로 떨어진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고물상을 찾은 한 남성이 폐지를 내려놓고 있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폐지·고철을 수집하는 영세 고물상의 세부담이 올해부터 크게 늘어났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기 수원에서 고물상을 하는 김모씨(58)는 "우리 같은 동네 고물상에게는 (공제율 축소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 업계가 리더나 구심점이 없고 힘없는 영세 고물상이 대부분이다보니 정부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에 한마디 항의도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담이 늘어나 골목에서 폐지 등을 주워오시는 어르신들께 대접하는 커피도 보다 싼 것으로 바꾸고 가져오는 파지도 가격을 더 낮게 쳐드리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폐지 1㎏당 80원을 주고 구입하고 있다. 향후 폐지 가격 하락, 공제율 축소 등으로 폐지 매입가격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과세·감면제도의 일종인 재활용폐자원 의제매입세액공제율 하향조정이 영세 고물상은 물론,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부담을 안긴 셈이다.

반면 대기업들을 위한 비과세·감면제도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내년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시행으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기업들은 그동안 무시해온 안전시설들을 대거 설치해야 할 상황에 놓였지만 최근 투자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재벌들을 위한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화학물질 취급시설에 투자한 비용만큼 법인세에서 공제해달라"며 정부에 제안한 내용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지난 7월 기재부에 "내년부터 시행되는 화관법에 따른 관리기준 강화로 투자부담이 증가한다"며 "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안전설비투자 세액공제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안전설비투자 세액공제'의 기한을 3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안전설비투자 세액공제란 기업들이 산업재해예방시설·가스안전관리시설 등을 설치할 때 비용의 3%를 세액공제해주는 한시적 감면제도를 말한다. 기재부는 2014년 세법개정안에 안전설비투자 세액공제에 대한 전경련의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했다.

올해 일몰 예정이던 '생산성향상시설투자 세액공제'도 전경련의 요청에 따라 3년 연장됐다. 생산성향상시설투자 세액공제란 기업들이 자동화·정보화시설, 첨단기술설비를 새로 설치하면 비용의 3%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이다. 벤처캐피털 회사가 취득한 벤처기업 주식의 양도차익·배당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당초 올해 말까지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대한상공회의소의 건의에 따라 3년 연장됐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인 '비과세·감면제도 폐지'는 이처럼 철저히 기득권층과 부유층에 유리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조세특례제도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기업 등 이익집단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업 관련 비과세·감면제도가 연장되거나 혜택이 확대되는 추세다. 반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의견을 반영하기 어려운 서민·중산층에게 주로 적용되던 비과세·감면제도는 일몰이 도래하는 대로 예정대로 폐지를 추진하거나 혜택을 크게 줄였다. 재활용폐자원 의제매입세액공제율 하향조정 외에도 세금우대종합저축에 대한 과세특례 폐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당사자의 반발이 적을 것 같으면 비과세·감면을 폐지·축소하고 대기업에 집중된 공제는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하에 그대로 놔두거나 확대하고 있다"며 "비과세·감면 폐지가 (정부 주장대로)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것인지, 대기업을 위한 것인지, 경제살리기를 위한 것인지 도대체 뚜렷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조세 공평부담의 원칙에 따라 절세 능력, 세금에 대한 방어 능력, 조세 회피 능력이 있는 대기업에는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이고 세금 납부 방어 능력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비과세·감면 혜택이 많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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