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거스르는 '신연좌제 망령'

이가영 2014. 9. 1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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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진영 싸움에 내편 아니면 친일·빨갱이 낙인 찍어이인호 항일 외조부 두고 친일 조부만 부각 공격"정치적 부관참시 .. 국가 에너지 낭비 막아야"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의 '연좌제 금지' 조항이다. 개인의 범죄를 가족·친척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연좌제는 근대 인권 사상이 확립된 뒤 문명 사회에선 자취를 감춘 야만적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도 1894년(조선 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연좌제가 폐지됐다.

 그러나 연좌제가 사라진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엔 연좌제의 망령이 떠돌아 다닌다. 지난 5일 선임된 이인호(78·여) 신임 KBS 이사장의 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 이사장의 임명을 반대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는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의 창립발기인으로 친일 거두였다"며 이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 최초로 4강(러시아) 대사를 지냈고, 10여 년간 공개활동을 해온 이 이사장에 대해 조부의 행적을 빌미로 공격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연좌제 금지'가 명문화된 1980년 개헌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서울대 김철수(헌법학) 명예교수는 11일 "개헌 당시엔 친일보다는 친인척의 월북 등으로 차별받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이 도입됐다"며 "요즘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처럼 반국가활동(민혁당 사건)으로 처벌받고도 사면복권 돼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는데 자신과 무관한 조부의 일까지 끌어내는 건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권에도 피해자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장인), 김근태 전 의원(형제) 등 가족·친척의 좌익 경력 때문에 연좌제 공격을 당한 경우다.

 보수·진보 간 진영 싸움이 격렬할 때 연좌제는 특히 기승을 부린다. 보수에겐 친일파, 진보에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영 논리에 따른 21세기판 '신연좌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익을 파괴한다.

120년 전 폐지된 연좌제가 대중의 정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 대해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연좌제로 인해 피해를 본 진보세력이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다른 연좌제를 들이대는 건 '정치적 부관참시(剖棺斬屍)'"라며 "국가 에너지의 낭비를 막고 미래로 나가기 위해선 이런 케케묵은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연좌제 논란의 폐해 중 하나는 쓸 수 있는 인재 풀을 좁힌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행정학) 교수는 "연좌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탕평인사"라며 "적합한 비전과 철학을 가진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도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친인척의 일이나 과거 전력으로 피해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2012년 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뇌물 요구 혐의로 지미멩 전 주 하원의원을 체포하자 딸 그레이스 멩은 "나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성명을 냈고 그는 그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가영·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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