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67)씨는 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다음 고민이 생겼다. 아직 초기라 완치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았지만, 수술을 할지 방사선 치료를 할지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과 교수는 수술을 권유했으나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방사선 치료가 더 적합하다고 했다. 다른 병원에도 가봤지만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다학제 통합진료’를 의뢰했다. 소화기내과와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핵의학과 등 서로 다른 진료과 의료진 5명이 한 자리에 모여 김씨의 상태를 상담했다. 의료진은 10~20분간 논의 끝에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최적의 치료방법이라고 결정했다. 김씨는 그제서야 마음 편히 치료계획을 따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국립암센터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부터 지방병원까지 암 환자 '다학제 통합진료'가 확산되고 있다.

다른 진료과 5~6명 의료진 협업…환자만족도 높아

다학제 통합진료란 환자의 진단·치료에 관련된 여러 진료과 의료진 4~5명이 한 자리에 모여 환자 상태를 상담하고 논의하도록 한 제도다. 다양한 환자 상태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치료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한 자리에서 해결해 환자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

이런 방식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국립암센터다. ‘암’치료를 전담하는 병원의 특수성으로 개원 당시부터 진료과를 없애고 센터 단위로 운영하면서 협진(協診)을 도입했다. 경쟁적으로 암센터를 확충한 대형병원들도 환자를 위한 협진을 차별화로 내걸기 시작했다. 이강현 국립암센터 원장은 “센터별로 의사·간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암 환자를 진료한다”며 “협진에 의해 치료계획이 결정되면 환자들에 한층 신뢰감을 더한다”고 말했다.

다학제 통합진료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4~5명의 연관 진료과 의료진이 한 자리에 모여 치료계획을 논의하는 제도다.

최근 들어 계명대 동산병원과 화순전남대병원, 단국대병원 등 지방병원으로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암 환자가 서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환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세엽 계명대 동산병원장은 “다학제 통합진료는 의료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치료결과를 얻게 하는 선진시스템”이라고 밝혔다. 안성자 화순전남대병원 폐식도종양클리닉부장(방사선종양학과)은 “의료가 전문화될수록 최선의 치료방침을 정하기 위해서는 협진이 최선책”이라며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환자 진료에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 빅5 병원은 유리하지만 지방병원 중소병원은 불리

다학제 진료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것은 환자 중심의 치료문화가 확산된 측면도 작용하지만 별도의 진료비가 신설된 요인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8월 선택진료비 단계적 폐지 대신 ‘다학제 통합진료료’를 신설했다. 통합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은 상급종합병원과 국립암센터,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지역암센터, 한국원자력의학원 등이다.상시 근무하는 다른 진료과 의료진이 동시에 진료해야 하는 조건이다. 암 환자 1명 당 외래진료 3회 이내이며 중환자는 추가 산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4명의 의료진이 협진하면 11만 3210원, 5명이 협진하면 14만 1510원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한다. 환자 본인은 암 환자 산정특례 규정에 따라 5%만 내면 된다.

의료계는 다학제 진료가 현실적인 여건에서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암센터장은 “서로 외래 진료 일정이 다른데 교수 5인이 같은 시각, 한 공간에 모이기 쉽지 않다”며 “환자 1명을 대상으로 20분씩 진료하는 것보다 각자 진료실에서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했다.

환자를 위한 서비스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진료과가 세분화되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일단 다른 진료과로 환자를 보내는 데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협진이 꼭 필요한 암 환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진단 기준이 분명한 환자들조차 다학제 통합진료를 요구하면 오히려 치료가 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핵의학과처럼 병원 내 인력이 적은 진료과나 지방 병원은 업무 과부하가 걸릴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 암센터장은 “환자를 위한 서비스라고는 하지만 협진을 통해 환자들에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할 지 아직 잘 모른다”며 “모든 암 환자들이 다학제 진료를 요구하면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다학제센터장은 “환자들에는 분명히 좋은 서비스지만 의료진이 자주 모이면 모일수록 적자”라며 “인원에 여력이 있는 빅5병원 위주로 확대되고 환자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