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례 암수술이 무색한 팔십 노인의 '수박치기'

2014. 9. 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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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건강과 삶] 전통무술 '수박' 전수 송창렬씨

들판의 학이 춤추듯 유연하고황소 뿔을 움켜쥐듯 늠름해석달전 대장암 수술 받았지만어릴 때부터 수련한 수박 덕에매일 산책하며 병마 이겨내

일제강점기 개성의 일본인 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일본 학생들에게 항상 '조센진'이라며 놀림을 받았다. 그 학교엔 조선인 학생은 두명 뿐. 덩치도 크지 않아 일본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개성에서 큰 주물공장을 했다. 그 공장엔 천 서방(천일룡)으로 불리는 공장장이 있었다. 그 공장장은 무술에 뛰어났다. 천 서방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몸싸움으로 유명한 개성 보부상을 했다. 보부상들은 산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술을 익혔다. 천 서방은 그런 '송도(개성) 수박'의 고수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술을 가르쳐주라고 천 서방에게 부탁했다. 개성 숲 속에서 무술을 익힌 소년은 자신을 괴롭혔던 일본인 학생들을 혼내줄 수 있었다. 소년이 배운 송도 수박(手拍)은 바로 고려시대 무인들이 무과시험을 치러야 했던 무술. 손으로 치고, 발로 차고, 머리로 박치기하며 전쟁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익혔던 맨손 무술이다. 해방이 되고 서울로 이사를 온 소년은 한국전쟁이 날 때까지 개성을 오가며 스승에게 무술을 배웠다.

이제는 팔십이 넘은 소년은 아직도 그 무술을 몸으로 보여준다. 송창렬(82)씨는 어릴 때 자신이 배운 수박을 꼼꼼히 공책에 적어 이제는 나이 50이 된 자신의 아들에게 수박을 가르친다. 문헌으로만 남아 있던 수박이 아직 생생히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부산 광복동에서 만난 송씨는 불과 석달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상태. 이미 두차례 암 수술을 받았고, 척추 수술도 받았다. 평생 네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송씨는 매일 산책을 하며 병마를 이겨내고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수박을 했기에 이렇게 걸어다닐 수 있어."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초리가 고향인 송씨가 1940년대 초에 개성에서 배운 수박은 한민족 전통무술 가운데 몇 안 되는, 문헌에 남아 있는 귀중한 무술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인 무용총엔 두 남자가 마주서서 수박의 견주기 동작을 취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삼실총 벽화에도 수박의 기본자세인 제몸치기 동작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상은 수박의 주먹질 막기와 견주기 자세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고려시대의 '고려사'에는 수박(手搏)이나 수박희(手搏戱)라 기록하였고, 당시 장군인 이의민과 두경승이 임금 앞에서 수박으로 맞붙는 구체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조선에서도 수박을 무인 등용의 과목으로 법률로 정했다. 세조 때는 노비들도 수박을 잘하면 관리로 등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수박은 잘만 하면 벼슬길도 열리는 무예였으며, 무인의 특기였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평양의 날파람, 박치기, 함경도의 주먹치기와 개성의 수박치기, 제비치기, 서울 택견 등이 맨손 무술로 이름을 떨쳤다. 1921년에 간행된 <해동죽지>에는 '수벽치기'라 하여, 무술 수박이 아이들의 놀이로 변한 손뼉치기를 소개하고 있다. 손뼉치기가 원래는 장사들의 무예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언하고 있다.

송씨는 자신이 배울 당시, 스승이었던 천일룡이 '수박타'라고도 했다고 한다.

송씨는 자신이 평생 간직하고 있던 수박을 온전히 보여주었다. 우선 몸풀기. 수박에서는 이를 '제몸치기'라고 한다. 그 시작은 절구질. 팔짱을 끼거나 허벅지에 두 손을 올려두고 무릎과 상체를 숙였다 폈다 한다. 허리의 기운을 강하게 하는 동작이다. 두 손으로 발목과 무릎을 쓰다듬으며 혈액순환을 도와준다. 이어지는 운동은 '학춤'. 온몸을 유연하게 한다. 마치 들판의 학이 춤추듯 좌우로 오가며 두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쓴다. 언뜻 보면 춤을 추는 동작이다. 어깨를 들썩이고, 오금을 폈다 굽혔다 한다

다음은 본격적인 무술이다. 그런데 수박에는 다른 무술처럼 정형화된 품새(투로)가 없다. 전쟁에서 적군과 몸으로 맞붙었을 경우 그대로 실전용으로 쓰는 동작이 투박하게 이어진다. '소뿔잡기'는 늠름하게 서서 양손으로 마치 큼직한 황소의 두 뿔을 움켜쥔 형세이다.

"이것은 마주친 상대에게 겁을 주는 모습이야." 송씨는 30여년 전부터 써 온 수박 공책에는 '손등치기' '한 손으로 걸고 차기' '칼싸움 겁주기' '박치기' '돌려치기' '어깨로 넘어치기' '안다리 차기' 등 우리말로 된 용어들이 빼곡히 쓰여 있다.

"길거리 싸움에는 무조건 이겨야 해. 그러니 손으로 치고, 발로 차고, 목을 휘감고, 어깨를 감싸고, 그리고 박치기도 해." 송씨는 맞선 아들의 고개를 휘어 감은 뒤, 공중으로 차올라 팔꿈치로 내리찍는 시범을 보여준다.

"전쟁 통에 부산에 왔어. 가족들과 헤어지고 거지처럼 살았어. 하지만 누구도 나를 건들지 못했어. 부산 국제시장에서 한가락했지. 다 수박 덕분이야."

송씨는 "당시 개성 사람들은 서울이었던 한양도 '내려간다'고 표현할 만큼 자존심이 있었고, '개성상인 건드리면 죽는다'는 속어도 개성상인들이 수박을 배워서 강했기 때문이야"라고 어릴 적을 추억한다.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은 송씨는 골목길에서 두 아들에게 수박을 가르쳤다. 막내가 아버지를 이어 수박의 전수자가 됐다. 아들 준호씨는 아버지가 몸에 익히고 있는 수박을 고스란히 배웠다. 그리고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를 만들었고, 수박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송씨는 2001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전통무예제'에서 수박을 공개적으로 선보이며 수박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려 때 기록을 보면 맨손으로 돌을 깨기도 하고, 호랑이를 때려잡기도 했다고 해. 그러니 수박은 매우 위력적이고 위험한 무술인 셈이지."

"내 소원은 하나야. 수박이 교과서에 실리는 거야."

송씨는 11년 전 중국 연변에서 온 한 무술인을 만났다. 그는 조선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수박춤을 송씨에게 보여줬다. "어릴 때 북청 물장수들이 추던 수박춤이었어. 물동이 위에 바가지를 올려놓고 박자를 쳐주면 물장수들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쳐가며 춤을 추곤 했어. 평소 무술을 춤으로 만들어 수련한 것이지."

부산/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영상 이규호 피디 pd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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