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자명종-스스로 울 수 있는 능력

2014. 8. 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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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종(自鳴鐘)은 '스스로 우는 종'이라는 뜻이다. 특정한 시각을 알리려는 이유에서 만들었으므로 실제로는 '자명 시계'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지만 '자명종'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종처럼 쇳소리를 내서이기도 하지만, 오래전에는 그 기능을 종이 수행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옛날에도 시각을 알리는 자명종은 필요했다. 매일 저녁 2경에 종각 종을 28번 쳐서 야간통행을 금지하는 일이나, 5경에 33번을 쳐서 통금을 해제하는 파루 등이 일종의 자명종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이것은 사람에 의한 타종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울리는 태엽장치나 전동장치 시계는 아니다. 그러나 일정한 주기가 만드는 규칙성이 자동성 기능을 했고,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생체리듬을 사회 규율에 맞추게 했다.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자명종은 산사의 아침을 깨우는 종이다.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는 깊고 넓으며 맑고 엄격하다. 종각의 인경이나 파루보다 오래되었을 저 종소리의 주기성은 사찰의 공동 시간을 알리는 규율을 담지하고 있지만, 사회적 시간을 알리는 보신각 종과는 조선시대에도 다르게 들렸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반대 기능을 수행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매일 새벽 또는 저녁 시간을 알리는 산사의 종소리는 '금지'나 '해제'의 종소리가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타율성이나 억압과 달리 일정한 주기로 수행자와 중생의 '자발적 각성'을 촉구한다. '각성(覺醒)'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깨어나라는 뜻이다. 종교적ㆍ성찰적 의미에서 사회의 일상성은 오히려 술에 취한 상태, 미망(迷妄)인 상태다. '지금, 시간에 깨어 있어라'고 외쳤던 사도 바울 역시 율법이라 불리는 당대적 일상성과 제도적 삶을 각성의 대상으로 여겼다.

오늘날에는 침대 머리맡에, 휴대폰 속에 자명종을 개인들이 소유한다. 자명종은 사회의 공동 시간이 아니라 개인 스케줄에 맞춰져 있다. 자명종은 통행금지 사이렌처럼 사회가 직접 부과하는 억압이 아니고 자기가 맞추는 시계라는 점에서 정말 '자명종'이 됐다. 그러나 산사의 종 같은 어떤 정신적ㆍ도덕적 각성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다만 '놀라게 하다'는 뜻인 '알람(alarm)'일 뿐, 알람 앱에 우리가 놀라는 것은 출근시각, 등교시각뿐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 울 수' 있을까? [함돈균 문학평론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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