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손실 현대중공업 들여다보니..조선은 중국에 밀리고 해양은 적자늪

2014. 8. 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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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원이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난 7월 말 2분기 실적이 나온 이후, 이재성 현대중공업 회장이 울산 본사에서 임원 180여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내놓은 발언이다.

CEO가 직접 나서 와신상담을 얘기할 만큼 현대중공업의 사정은 좋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2분기에 1조10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애초 시장에선 최대 수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됐으나 이를 뛰어넘는 말 그대로 '어닝쇼크' 수준이다. 올 1분기 영업손실 1889억원에 비해서도 적자 규모가 대폭 늘어났다. 이 같은 실적은 2분기 262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물론 1000억원대의 이익이 예상되는 대우조선해양과 비교해보면 더 충격적이다.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현대중공업 실적이 이처럼 급락한 배경에는 해양플랜트가 있다.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한 국내 조선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선의 발주가 줄어들자,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렸다. 각 회사마다 대규모 수주를 자랑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생각보다 돈이 안 됐다. 현대중공업이 노르웨이에서 수주한 세계 최대 해양설비 골리앗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잠깐용어 참조)가 대표적이다. 2010년 계약 당시 현대중공업은 생산 비용을 12억달러(약 1조2300억원)로 계산했지만, 최근 들어 비용 추정치는 22억달러(약 2조5000억원)로 급증했다. 건조가 시작된 이후 두 차례 설계가 바뀌면서 인도 시기가 지난해 7월에서 올해 하반기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자랑하던 호주 고르곤 FPSO 프로젝트의 공사 기간 역시 늘어났다. 육상플랜트에서는 사우디 제다사우스·슈퀘이크 프로젝트의 비용 상승으로 손실을 보고 있다. 급기야 현대중공업은 플랜트 부문의 공사 지연 등을 이유로 2분기에만 약 5000억원 규모의 손실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황금알 낳는다던 해양플랜트

기술·경험 부족으로 대규모 적자

한때 쾌거로 불리던 대규모 수주가 속 빈 강정이 된 이유는 저가 수주와 경험 부족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양플랜트는 '맞춤형'이기 때문에 설계·생산 방식이 정형화된 상선보다 원가 상승 요소가 많다. 특히 세계 최초·최대 등의 이름이 붙은 프로젝트들은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선례가 없는 만큼 시행착오가 발생할 여지가 큰 사업들이었는데, 국내 조선사들이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 이상을 수주했고, 기술과 노동력이 부족해 제때 인도하지 못하면서 큰 손실을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해양플랜트 설계를 대부분 유럽 업체에 맡길 수밖에 없고, 적정 수주 가격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의 한 간부 역시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업체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저가 수주에 나서 비용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수억달러씩 손실을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추진했던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조선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 부문에서도 현대중공업 그룹은 2분기 총 5500억원(현대중공업 2000억원, 현대미포조선 2500억원, 현대삼호중공업 1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봤다. 2~3년 전에 수주했던 저가 물량의 손실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돈 되던 조선마저

경쟁 심화로 저가 수주

고부가 선종으로 분류되던 해양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가 나타나고, 상선 시장도 최근 급격히 둔화하면서 초우량으로 통하던 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마저 강등 위기에 처했다. NICE신용평가는 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AA+)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등록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도 등급 전망을 각각 '부정적' '부정적 검토 대상'으로 변경했다. 등급 전망에 대한 조치는 제각각이지만, 신용평가 3사 모두 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현대중공업의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802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0년 5조5318억원을 기록한 것에 비해 3년 만에 실적 규모가 7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차입금 규모는 2010년 8조3106억원에서 2013년 12조9534억원으로 5조원 가까이 늘었다. 신용평가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연말까지 현대중공업에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CP) 규모는 총 1조1500억원에 달한다. 신용등급 강등이 당장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수백억원의 추가 이자비용 부담은 물론 초우량기업이라는 이미지에도 금이 갈 처지"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마저 파업 움직임을 보이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단협을 통해 기본급 13만2013원 인상과 성과금 250% 이상 인상 등 통상임금 확대안을 제시했지만, 2분기 큰 손실을 기록한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한 직원은 "19년 동안 파업이 없었지만 올해에는 통상임금 문제가 겹쳐 있어 예년과 사정이 다르다. 더구나 실적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 얘기도 나오고 있어 노사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내년에는 좋아지나

차별화된 기술 접목이 관건

내우외환에 시달리다 보니 현대중공업의 실적 회복 역시 기대난이다. 증권사들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3분기에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3분기 예상 영업손실은 각각 232억원, 482억원으로 집계됐다.

성기종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손실이 예상되는 부분을 2분기에 미리 반영했기 때문에 적자 폭은 3분기에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해양플랜트는 기존 공사 계획이 그대로 진행되고, 고가 물량의 수주가 반영되는 시점이 아니기에 내용상 2분기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해양플랜트에서의 손실과 해운 불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대중공업의 미래 경쟁력에 대한 의문도 높아지고 있다. 당장 중국은 조선뿐 아니라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도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중국은 2012년과 2013년 연속해서 선박 수주량, 건조량, 수주 잔량 등 3대 지표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수주량 35%, 건조량 30.7%, 수주 잔량 33.5%였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점유율은 수주량 30.8%, 건조량 29.7%, 수주 잔량 27.9%로 모두 중국에 밀렸다. 중국의 선박 건조 능력은 2013년 약 2140만CGT(표준화물선 환산t)로 전 세계 건조 능력의 39.4%를 차지하며 한국(29.5%)을 앞섰다.

특히 중국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도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해양플랜트 수주 잔액은 한국이 587억달러로 중국(498억달러)보다 많다. 그러나 2013년 한국의 신규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은 188억달러로 중국(245억달러)에 못 미쳤다. 올 1분기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도 중국이 56억달러로 한국의 14억달러를 웃돌았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조선해양 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완료하면 질적으로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조선과 해양플랜트, 기자재 시장에서 더욱 차별화되고 고부가가치 기술이 접목된 고품질 제품을 개발해 대응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잠깐용어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 Offloading Unit·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선박 모양의 하부와 원유 생산, 정제 처리를 갖춘 상부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깊은 바닷속 유전 개발에 이용된다. 가격은 약 1조∼2조원대.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 사진 :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0호(08.13~08.19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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