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의 축소 관행부터 막아야"

김태훈 기자 2014. 8. 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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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인권피해 당사자·가족이 말하는 대책, "사소한 사건이라도 공개규정 필요"

현영이네 가족의 시간은 아직도 4년 전인 2010년에 머물러 있다. 그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현영 이병(가명)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아직도 알 수 없다. 수사 결과는 자살이었고, 자살을 유발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도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더 많았다. 군 사망자 유가족은 그런 의문점들까지도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김 이병의 어머니 남모씨(51)는 배웠다. 그러나 "갓 자대에 배치받은 이등병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결론만으로 현영이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마치는 군 당국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위로도 설명도 대책도 불필요한 건조한 사망사실만 있었을 뿐이다.

진상 밝혀지지 않아 유가족들 고통

"그나마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걸 밝혔고, 그걸 누가 했는지도 밝혀져서 처벌을 받은 것만도 대단한 거래요. 누가 괴롭혔는지, 윗사람들 책임은 없는지 정도도 제대로 밝혀지는 경우가 드물다고요." 남씨와 같이 군복무 중 불의의 사건·사고로 목숨을 잃은 자녀를 둔 유가족들이 사고 후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들은 헌병대 수사관들이나 상급부대의 대민 담당 장교다. 대부분의 경우 자녀의 동료나 직속상관에게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를 들어볼 기회는 없다. "윤 일병 가족도 재판에서 (제보자를) 증인 요청했는데 안 됐다잖아요. 다른 가족들 얘기도 들어보니 대개가 그래요. 재판에서 뭐라는지도 모르고 그냥 끝나버린다고."

억울한 죽음에 대해 순직 신청을 하면 더 길고 어려운 싸움이 남아 있다. "윤 일병도 사고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순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을 수 있다. 군 당국 입장에서는 업무 중의 일이 아니라 단순 폭행사건의 피해자가 된 것뿐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했던 고상만 보좌관(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은 현재까지도 군 내부에서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죽음 때문에 유가족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순직을 인정받기 위한 업무상의 연계성을 당국이 아니라 가족들이 입증해야 하며, 그마저도 자살일 경우에는 폐쇄적인 순직 심사과정을 통과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또다시 2차적인 피해가 돌아가는 것은 사망사건이 아닐 경우에도 똑같다. 구타나 폭언, 가혹행위로 인한 피해를 입어도 오히려 '사적 제재'를 일으킬 수 있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수 있다. "부대원 전체가 100명도 안 되는 독립중대 생활을 했는데, 이유도 모르고 맞는 게 화가 나서 중대장한테 가니까 '군인복무규율'을 보여줬다. 구타도 안 되지만 구타 유발을 해서도 안 된다는 조항이었다." 2009년 전역한 직장인 황인영씨(26)는 군인복무규율의 '사적 제재 금지' 조항이 무고한 피해 병사들을 위협하는 근거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맞아도 그냥 잠자코 있으라는 얘기에 한참을 고민한 뒤 사단 헌병대에 찔렀지만 구타한 선임 한 명만 영창 갔다 전출되는 걸로 끝났다. 그 뒤로 나는 왕따로 남은 1년을 보냈다."

병영 내 인권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우선 숨기거나 축소하고 보는 지휘관들의 관행부터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황인영씨는 "장교건 부사관이건, 단기(복무)건 장기건 똑같다. 아무 일 없이 제대하거나 진급하고 싶은데 일이 커지면 안 되니까 상급자라는 것을 이용해서 무조건 입 닫고 있으라고만 한다"며 "사소한 사건이라도 누구나 공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규정을 만들지 않으면 군 조직의 특성상 은폐 시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사망자 유가족들의 진실규명 요구는 더 클 수밖에 없다. 8월 6일 '의무복무 중 사망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유가족협의회' 소속 유가족들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까지도 군 병원 냉동고에 안치돼 있는 191기의 군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이들 시신 가운데는 1998년 사망한 군인의 시신 2구를 비롯해 십수 년째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억울한 죽음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군 사망사고 피해자 유가족들이 8월 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서 병영폭력을 규탄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 사망한 피해자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젊은 목숨에 아무런 예우가 없다"

"이유도 모르고 군에서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둘째아들의 입대 전날 아들을 붙잡고 '정 견디기 힘들면 죽지 말고 차라리 탈영하라'고 말한 심정을 알겠나. 매년 150명씩 군대에서 죽어가는 젊은 목숨들에 대해서 이 나라는 아무런 예우도 해주지 않는다." 그 역시 7년 전 막내아들을 잃은 유족 김홍희씨(59)는 그저 아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현충원 굳이 갈 필요도 없고, 이제는 재수사를 해도 더 나올 게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 건 포기했지만 그래도 나라 지키러 갔다가 그렇게 됐는데 죽은 건 자기 책임이라고 뿌리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이지." 이날 의무복무 중 사망자들에 대한 순직처리를 골자로 하는 군인사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던 유족들은 국방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들을 닮은 위병들 뒤로 서 있는 국방부 청사엔 발을 들일 수 없었다.

8월 8일 국방부는 전군 특별인권교육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국의 각급부대는 모든 훈련 및 일과를 중지하고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은 외모나 특정 행동거지를 이유로 이뤄지는 놀림이나 얼차려는 물론, 성적인 추행이나 업무와 무관한 사적 지시까지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진행됐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병영내 인권실태를 개선하려면 병사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인권교육도 중요하지만 보다 체계적인 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군에 대한 민간·시민사회의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고, 거기에 군인권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법학)도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책임범위를 명확히 해서 양측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한국군의 경우 내무생활마저도 공적인 시선을 피할 수 없어 사생활이 없는데, 상급자에겐 권한과 함께 책임을 명확히 해서 병사들의 기본적인 사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일병 사건에서 폭행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이모 병장 역시 현재의 부대로 전입되기 전 부대에서 구타 피해를 당한 뒤 상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 전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악순환이 부대를 이동해서도 근절되지 않은 셈이다. 과거 병영 내 인권침해 악습을 경험한 당사자들이 여전히 바뀌지 않은 현실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육군 후방 교육부대에서 복무한 유진건씨(32)는 같은 보직을 받았다는 동생의 군생활에서 자신이 당한 '내무부조리'가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연찮게 내가 있던 부대에 중대는 달랐지만 같은 대대로 동생이 배치를 받았다. 내가 제대한 지 3년 뒤에 배치받은 거라 나와 같이 군생활한 사람은 몇 명 안 되는 간부뿐이고 사람은 다 바뀌었는데도 신병기간에 작업용 목장갑을 못끼게 해서 손바닥이 온통 까지게 하는 악·폐습이 그대로 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이렇게 대물림되는 '군기'가 진짜 군기일까."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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