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를 '블랙 딜'이라고 하는 이유, 섬뜩하다

2014. 8. 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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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한욱 기자]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주목할 만한(혹은 주목해야 할) 시사기록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7월 3일 개봉한 이훈규 감독의 < 블랙 딜 > 은 최근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민영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역작이다. < 블랙 딜 > 은 영국, 일본, 칠레,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 등 6개 민영화 선진국(?)들의 참담한 현실을 통해 민영화가 초래하게 될 파국적 상황을 미리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오래된 미래

7월 3일 개봉한 < 블랙 딜 > 은 안타깝게도 현재 극장에서 만날 수 없다. 다만 9월까지 공동체 상영이 가능하다.

ⓒ 인디플러그

< 블랙 딜 > 이 미리 본 민영화의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993년 대처리즘의 광풍 속에서 민영화된 영국 철도는 유럽에서도 악명이 높다.철도 요금은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서비스는 오히려 악화했다. 열차는 연착과 정차를 반복한다. 심지어 터널 안에서 수분 동안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이 정차하기도 한다. 하지만 승객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철도 민영화 이후 이런 풍경은 영국인에게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철도 민영화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일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도쿄의 신주쿠 역을 포함하고 있는 동일본철도는 연간 수조 원의 이익을 남기지만, 홋카이도의 게이호쿠 역과 같이 이익이 남지 않는 역은 가차 없이 폐쇄된다. 기차역의 폐쇄로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지역사회는 파괴된다.

철도 민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전성이다. 영국에서는 철도 민영화 이후 5년 동안 4차례의 대형열차사고가 발생했다. 1997년에는 사우스올 역을 지나던 여객열차가 정차해 있던 화물열차와 충돌해 7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했다. 철도회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로의 안전장치를 꺼버렸다.

일본에서도 민영화 이후 대형열차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05년 4월 일본철도 후쿠지야마 선의 쾌속 열차는 116km 속도로 아마가사키 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열차는 이전 역에서 이미 90초를 지연시켰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문책성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관사는 곡선 주로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했다. 결국, 열차가 탈선해 50명이 사망하고 417명 부상 당하는 일본 철도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아르헨티나는 한마디로 민영화의 '종결자'라고 할 수 있다.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국영기업이었던 그 어느 것도 국가의 소유로 남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의 모든 것을 민영화했다. 이에 따라 전기, 수도, 철도 등 거의 모든 공공재가 민영화됐다. 그로부터 20년 후. 반복되는 단전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은 거리에 뛰쳐나와 불을 지르고 냄비를 두드린다.

민간이 운영하는 아르헨티나 지하철은 쓰레기장과 다름없다

ⓒ 인디플러그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지하철은 쓰레기장과 다름없다. 온갖 낙서로 디자인된 아르헨티나의 지하철은 승객과 쓰레기가 뒤엉켜 마치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을씨년스럽다. 출퇴근 시간마다 콩나물시루가 되는 지하철은 심지어 문을 열어 놓은 채 운행한다. 이윤만을 좇는 민간지하철회사는 승객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온세 역에 도착하던 열차가 타는 곳 끝의 완충기에 충돌해 51명의 승객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열차사고로 희생된 지역밴드의 가수 루까스의 노랫말처럼 민영화 20년 후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은 모두 '짐승'이 되어 버렸다.

자본과 권력의 검은 거래

"민영화가 누구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한국 정부 관계자는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용감하게(?) 답한다. 하지만 민영화를 추진한 어느 나라에도 국민을 위한 민영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민영화를 추진한 것일까?

아르헨티나의 메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영석유회사와 통신회사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메넴과 함께 민영화 계획을 추진했던 마리아 훌리아 환경장관의 부정부패가 드러났다. 예컨대 1989년 부에노스아이레스항공은 스페인의 이베리아 사로 매각됐는데 매각 직후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공의 계좌에서 7500만 달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발견됐다. 이외에도 국영기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검은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 이훈규 감독은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은밀한 거래를 '블랙 딜'이라고 말한다.

자본과 권력의 유착은 프랑스 그르노블 시의 수도 민영화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89년 그르노블의 까리뇽 시장은 시민들의 반대에도 민간수도사업체인 수에즈 사에 수도사업을 넘겼다. 그 대가로 수에즈 사의 고위간부는 까리뇽 시장에게 200만 유로의 뇌물을 제공했다.

이훈규 감독은 민영화의 목적이 자본과 권력의 블랙 딜이라고 말한다.

ⓒ 인디플러그

지난해 11월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인들 앞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비공개 연설을 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수에즈 사를 포함한 프랑스 기업인들에게 공공부문의 개방, 즉 민영화를 언급하며 프랑스 기업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약속했다. 이 연설로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 기업인들에게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훈규 감독은 민영화의 목적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블랙 딜', 즉 자본과 권력의 부당거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민영화로 자신의 삶이 파괴되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들은 '블랙 딜'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 블랙 딜 > 은 한국의 '오래된 미래'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는 자본과 권력의 부당거래, 즉 민영화가 초래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민영화가 초래한 유럽과 남미의 묵시록적 상황은 머지 많아 우리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 블랙 딜 > 이 보여주는 미래는 더욱 충격적이다. 담담한 어조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언하는 정태춘의 낮은 목소리는 그 불길한 정조를 더욱 증폭시킨다.

< 블랙 딜 > 은 잘 만들어진 기록영화다. 1년여의 짧은 제작 기간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상당히 완성도 높은 작품을 빚어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저널리즘적 방식에 의존한 것이다. 저널리즘적 화법은 메시지 전달에는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영화적 즐거움이 희생된다.

대한민국을 팔아라

이훈규 감독은 정부가 국민의 반대에도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자본과의 부당거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자본에 매수된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국가 자산의 매각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하기 위해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놈 촘스키도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블랙 딜'도 민영화의 원인 중에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민영화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보수정부의 재등장 이전부터 민영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 민영화의 기원은 1997년 IMF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사태 직후인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24개 공기업 가운데 11개를 임기 안에 민영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민의 정부'는 임기 중 모회사 8개를 민영화하고 자회사 66개를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했다. 민영화 지지자들은 김대중 정부를 '역대 정부와 비교해 볼 때 민영화 실적이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역대 정부에는 이명박 정부도 포함된다.

참여정부에서는 단 1건의 민영화 실적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민영화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도 민영화의 흐름을 완전히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참여정부는 민영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다만 속도를 늦췄을 뿐이다. 한미FTA 타결로 전면적인 민영화로 가는 직항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는 가장 결정적인 민영화 실적을 올렸는지도 모른다. 물론 민주정부가 (철도)민영화를 시작했다는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의 정치공세는 흑색선전에 가깝다. 하지만 민주정부들도 민영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보수정부와 민주정부를 가리지 않고 민영화를 추진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IMF사태다. 당시 IMF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파산 위기에 놓여 있던 정부는 IMF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IMF개혁의 핵심은 자유화, 개방화였다. IMF가 요구한 금융시장의 개방화, 무역자유화 폭의 확대, 기업경영 투명성 재고,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조치로 한국 경제의 담벼락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 결과 해외투자가 증대되고 지표상의 경기는 회복됐지만,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극적으로 치솟았다. 2012년 현재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무려 96.6%에 달한다.

한국에서의 민영화는 정책적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이다. 보수정부이건, 진보정부이건 대외의존적인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세계화의 덫'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전면적인 민영화로 떠밀려가게 될 것이다. 단지 선거만으로는 민영화의 물길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처럼 오직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우리의 불길한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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