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과 PX가 좋아지니, 군대 좋아졌다고 착각"

입력 2014. 8. 7. 10:27 수정 2014. 8. 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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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남소연,김도균 기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우리 병영인권의 현주소는 한 마디로 '진단불가 상태'"라고 단언한다. 불치병 수준으로 가고 있으면서도 병증을 정확히 진단 못해 무슨 약을 처방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한부 환자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군의 인권현실이라는 것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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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정아무개(21) 훈련병이 자살했다. 신병교육을 받다가 중이염에 걸린 정 훈련병은 부대 지휘관에게 "귀가 아프니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군의관들은 "증상이 민간 병원에 갈 수준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치료를 애원하는 그를 쫓아냈고, 고통에 시달리던 정 훈련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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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현역 1급 판정을 받고 건강한 상태로 입대한 노아무개 훈련병은 논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에 걸렸지만 고열상태에서 무리하게 야간 행군 훈련에 투입되었다가 급성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군 당국은 사전 진단은커녕 고열과 통증을 호소하는 노 훈련병에게 타이레놀 2정을 준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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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강원도 화천 육군 15사단 소속 여군 오아무개 대위가 직속상관인 노아무개 소령으로부터 10여 개월에 걸쳐 반복적인 성희롱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육군은 지속적으로 오 대위를 괴롭힌 노 소령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요즘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하루하루가 두렵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혹시 '내 자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하고 가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는 부모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국군 민낯 드러낸 갖가지 군대 내 사건들

군 관련 사건·사고들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분노에 떨었지만, 잊을만하면 이런 일들은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22사단 GOP 총기난사사건,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등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군 관련 사건들에서 조금만 되돌아보면 진료권 침해로 인한 병사 사망사건, 성추행 자살사건 등 한국군의 민낯을 드러낸 갖가지 사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비극이 생길 때마다 갖가지 처방이 남발된다. 총기난사사건, 훈련소 인분사건, 집단구타 사망사건 같이 굵직한 사건이 나올 때마다 병영문화 관련 위원회가 급조되어 개선대책을 쏟아내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우리 병영인권의 현주소는 한 마디로 '진단불가 상태'"라고 단언한다. 불치병 수준으로 가고 있으면서도 병증을 정확히 진단 못해 무슨 약을 처방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한부 환자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군의 인권현실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군 자체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 지금처럼 군이 주도하는 예방대책은 마치 환자에게 칼을 쥐어주고는 알아서 수술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임 소장은 "'예전보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는 인식도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제시하는 수치를 보면 군대는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임 소장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 < 군 인권 실태 연구 보고서 > 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병사 305명 중 '군대에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8.5%에 달했다. 이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 조사 때보다 2.5% 늘어난 수치다.

'남이 구타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병사도 17.7%로 2005년(8.6%)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구타를 당했을 때 탈영 또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병사는 34.6%였다. 가혹행위를 당한 후 '그냥 참았다'고 한 병사도 86.8% 였다.

"군, 군기 확립돼야 잘 싸울 수 있단 망상 빠져 있어"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예전보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는 인식도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제시하는 수치를 보면 군대는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 남소연

< 오마이뉴스 > 는 지난 6일 오후 임 소장을 만나 최근 병영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재발방지 대책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임 소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 지난 6월 강원도 고성 22사단 총기난사사건, 최근에는 지난 4월 경기도 연천 28사단에서 발생했던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가 충격에 빠져있다. 현재 병영의 인권상황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한 마디로 '진단불가 상태'다. 앓고 있는 병증에 대한 원인을 모른다는 얘기는 불치병 수준으로 가고 있는데 무슨 약을 처방해야 될지도 모르는 시한부 환자같은 것이다. 점수로 따져서 몇 점 정도 된다, 이런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사건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우왕좌왕' 난리도 아니다."

- 그런데, 군 복무를 마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얘기한다.

"'착시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껍데기만 보고 있는 것이다. 생활관 시설이 좋아졌고, 군복이 좋아졌고, 피엑스(PX)의 음식이 좋아졌을 뿐 후진적인 병영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 병영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우리 군은 군기가 확립되어야 지휘권이 확립되고 그런 군대가 잘 싸울 수 있다는 망상 속에 빠져 있다. 그렇게 때문에 강한 군기 확립을 위해서는 폭력과 구타, 가혹행위는 '최소한도로 허용해도 된다', '필요악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메커니즘 안에서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보는 것이다. 마치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처럼. 그러니 병사들의 월급도 오르지 않고, 몸이 아파도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군인들에게 민간병원 이용을 금지하고 무조건 군 병원만 이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면 과연 우리 군 병원이 이 모양 이 꼴로 남아 있겠나.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본다. 간부들은 민간병원을 맘대로 이용할 수 있으니 군 병원이 어떤 수준이든 상관이 없는 거다. 그러면서 병사들에게는 '참으라'고 말한다. 마치 참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소원수리를 내면 배신자로 취급하고, 우리 같은 시민단체에 알리면 '군을 팔아먹은 놈'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이런 풍토에서 뭐가 변할 수 있겠는가."

"군 인권문제 개선, 과감히 외부에 맡겨야 한다"

- 오늘(6일) 출범한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5년 28사단 GP 총기난사 사건, 2011년 해병대 2사단 해안소초 총기사건 등 큰 사건이 나고 나면 의례히 '병영문화'가 들어가는 비슷한 이름의 위원회가 생겼고, 나름대로의 처방들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유사사건이 재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분석이 이루어진 후에 처방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다', '저것도 고쳐보자' 하는 식으로 처방전이 마구 남발된다. 근원적인 병증도 모르면서 이 약, 저 약 마구 투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야전부대에서는 이런 처방이 거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현장에서는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계속 내려오는 지침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데, 꼭 필요한 약은 없는 격이다."

- 이번에 만들어진 위원회에는 임 소장이나 김종대 < 디펜스21 플러스 > 편집장 같은 군 입장에선 좀 껄끄럽게 느껴질 수 있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과거의 다른 위원회들과는 다른 결론들을 도출해 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경우 들러리 서는 역할만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같은 자문위원으로 묶여 있는데, 사실 나 같은 사람에게 전문위원을 맡겨서 매스를 쥘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런 수술은 과감하게 외부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다. 인권문제 개선작업을 군 주도하에 하겠다는 얘기는 환자가 스스로를 수술하겠다는 말이나 똑같다. 인권문제 개선을 외부 도움을 받지 않고 군이 계속 안고 있는 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혼자서 끌어안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병영문화 개선작업에 군이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군은 변화하면 죽는 줄 안다. 이 막연한 두려움이 결국은 병영문화를 개선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 병영문화를 바꾸겠다는 대책은 지난 1999년 3월 제2건국위원회에서 국방부가 한국형 병영문화 창출을 미래 과제로 내놓은 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당시 발생했던 논산 훈련소 인분(人糞)사건, 28사단 GP총기 사건을 거치면서 여러 개혁안들이 나왔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개혁정책들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이전 정부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병영문화 개선안들이 보수정부 집권 후 사문화되어 버리거나 많이 망가져 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인권에는 좌우가 없다. 인권은 좌우 모두에게 다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좌우 모두에게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또 좌우를 모두 두들겨 패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 인권은 유엔이 정하고 있는 국제 인권 스탠더드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 군인권센터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우리가 항상 주장해오고 있는 입법들을 반드시 이번 기회에 관철 시켜야 한다. 독일식의 국방 옴부즈만 설치법, 군 인권법,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법 등 인권관련 법안들을 모두 통과시키는데 전력을 다 하는 것이 목표다. 센터에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과 국제인권규약의 가치를 반영한 법안통과를 위해 이미 입법준비팀을 가동하고 있다."

- 윤 일병 사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안보실장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김 실장은 장관 재직시 구타사망 사실에 대해서는 보고받았지만 이렇게 심각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보고 받지 못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

"나는 그 해명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책임져야 할 문제다. 이렇게 대답하든 저렇게 대답하든 안보실장으로선 자격이 없다. 이 얘기는 적과 전쟁을 하는데 '아, 제가 보고를 잘못 받아서 포천이 함락되었네요' '의정부까지 적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제가 보고를 안 받아서 제 책임은 아닙니다'라고 국민들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한 마디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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