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26년 거주자 "교황님 저를 밟고 꽃동네에 가세요"

2014. 8. 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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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 "장애인 수용 시설은 장애인권리협약 위반"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수녀님이 바뀌고 나서 나한테 놀러 나가볼래? 그렇게 물어봐줘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갔어요. 그때 바다를 처음 봤어요. 저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사람 중에 하나였어요. 바다를 봐서 정말 행복했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싫었어요. 시설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살고 싶었어요."(꽃동네 26년 거주 유명자씨)

오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은 4박 5일 일정 중 16일 음성 꽃동네를 방문하기로 했다.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가 지난해 8월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꽃동네 방문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꽃동네에서 지내다 지금은 자립한 이들은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비판하고 있다. 유명자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올해 마흔인 유씨는 성인이 돼서야 처음 바다를 봤다. 유씨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뇌병변은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뇌졸증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 장애이다. 그는 무려 26년을 꽃동네에서 생활했다. 꽃동네 주변은 모두 산이었다. 슈퍼 한 번을 가려고 해도 멀리 나가야만 했다. 가족이 오는 날 등 특별한 때에만 공원 산책 정도가 허락됐다.

유씨는 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꽃동네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자유는 없었다고 했다.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도 유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유씨는 "시설에서 바자회 같은 걸 했는데 티 하나 살 때도, 컵 하나 살 때도 비장애인 도우미를 통해서 해야 돼요"라고 말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그는 6년 전에 꽃동네를 나왔다. 이제는 마트도 가고 머리염색도 하고 스스로를 꾸밀 수 있다. 지금 유씨의 머리칼은 노란색이다. 심지어 '비'조차도 그에게는 낯설었다. 그는 시설에 있으면서 직접 비를 맞아본 적도 거의 없었다. "시설을 안 나왔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아마 답답하게 살다 죽었을 거에요. (지금은) 좋은 활동보조인도 만나고 (장애인 야학) 대표님도 만났어요. 안 나왔으면 어떻게 만났겠어요."

그래서 유씨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한다. 그는 3시간에 걸쳐 교황에게 직접 편지도 썼다. 그는 편지에서 "교황님 (꽃동네가 아니라) 광화문 농성장에 있으면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집회를 왜 하는지. 우리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유씨를 포함한 장애인들은 광화문 지하도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2년째 농성중이다.

유씨만의 요구가 아니다. 꽃동네에서 9년을 거주한 최종훈씨, 6년을 거주한 배덕민씨, 16년을 거주한 박현씨, 14년 거주한 이병기씨도 같은 말을 한다. 배덕민씨는 "최근 꽃동네에서 나온 지인이 하는 말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한다"며 "한방에 8명에서 12명까지 몰아넣고 방문객들이 오면 신기하게 창경궁 원숭이 구경하듯 보고,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고,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없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꽃동네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한다"며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설 밖으로 나오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이며 유엔이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유엔이 제정한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의 동참을 규정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꽃동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수용 시설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모두 이런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꽃동네는 '사유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다. 국내 최대 규모 장애인 수용 시설인 꽃동네는 연간 380억 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과 80만 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받는데, 이것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는 2003년에는 부동산실명제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고, 지난해에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끝낸 다음 염수정 추기경에게 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경찰에 막혀 한동안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박경석 장애인노들야학 교장선생님은 "명동성당으로 가서 제발 교황님이 법을 위반하지 말라는 서한을 전달하려고 한다"며 "우리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이 취소될 때까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이곳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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