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단식일기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2014. 7. 3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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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 단식 18일째 "10만 촛불 기도합니다"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시작한 지 18일째다. 애초 15명으로 시작한 단식농성단은 단 두 명만 남았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과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47)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후송됐다. 김씨는 광화문 광장에 유 대변인은 국회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한뎃잠을 자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후 10시면 쓰러지듯 잠들고 오전 5시께에 일어난다. 광화문에서 생활하지만 집안 걱정도 끊이질 않는다. 그는 단식 11일째 일기에서 '멋 부리기 좋아하는 둘째 딸'에 대해 썼다. "둘째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애에요. 그것밖에 몰라. 옷 예쁘게 입고 꾸미고. 그런데 유민이 사고 나고 나서는 잠만 자요."

사실 김씨는 이렇게 단식이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단식 9일째인 지난 22일자 일기에서 "단식을 하며 싸우면 여당 의원님들과 대통령이 특별법을 수용할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부가 무섭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가슴이 없는 철면피들만 있더라"고 썼다.

단식을 이어갈 수 있는 큰 힘은 국민들에 대한 '기대'다. 세월호 100일 촛불집회 이튿날 그는 "국민들이 이토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정성을 봐서라도 꼭 특별법을 제정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썼고, 지난 29일 일기에는 "촛불이 하나 둘 모여 8월 15일에는 10만이 넘는 촛불이 밝혀지지라 기도 해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7·30재보궐선거 결과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 했다. 유가족들에게 이번 재보선은 특별법 통과가 될 수 있는 마중물이었다. 김씨는 31일 일기에서 "이것이 국민들의 심판일까요. 일부 주장처럼 우리 유가족이 너무하는 걸까요.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김씨가 단식을 이어가며 쓴 '단식 일기' 일부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다.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2일

오늘은 단식 9일째 입니다. 보통은 새벽 5시면 눈에 떠져요. 밤 10시가 되면 쓰러져서 자고요. 아침에 갑자기 빗발이 날려 일어나자마자 텐트 위에 비닐 덮니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비닐 덮고 나니 어지럽더라고요. 한 시간 정도 다시 잠들었네요.

배고프다는 건 못 느끼겠고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굳이 먹고 싶다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다만 이가 너무 아파서 소금으로 양치질을 못 할 정도고요. 어깨가 아파서 힘듭니다. 의사는 약이 없다네요. 단식 멈추고 밥을 먹어서 몸에 영양분을 줘야 한대요.

단식하기 전에는 단식을 하면서 싸우면 여당 의원님들과 대통령이 특별법을 수용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부가 무섭네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아요. 가슴이 없는 철면피들만 있더라고요. 단식하다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겁니다.

7월 23일

오늘은 단식 10일째 입니다. 유민이에게 편지를 썼어요. 유민아 유민아. 아빠가 정부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우리 유민이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 못 했구나. 벌써 내일이면 100일이 되네. 우리 이쁜 딸 지금은 행복하고 편하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지?

지난 몇 년 동안 여름 휴가 한번 못 가서 마음이 항상 아팠어. 그래도 작년 가을에 아빠가 좋은 회사 취직해서 올해는 유민이랑 유나랑 꼭 여름휴가 가려고 계획까지 세워놨는데.

왜 아빠가 마음이 더 아프고 슬픈지. 왜 이렇게 단식까지 하면서 싸우는 지 알겠지? 우리 유민이 살아 있을 때 해준 게 너무 없네. 앞으로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더 아프다. 아빠가 너무 많은 죄를 지었구나. 아빠가 힘들게 살아서 미안해.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4일

오늘은 단식 11일째 입니다. 단식 전에는 밥을 하루에 한 끼, 많이 먹으면 두 끼를 먹었어요. 이제 단식 끝나면 무조건 하루 세 끼 먹고 싶은 걸로 꼬박 꼬박 먹을 겁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광화문 검정 봉지 들고 다니는 사람만 봐도 죽겠어요.

둘째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애에요. 그것밖에 몰라. 옷 예쁘게 입고 꾸미고. 그런데 유민이 사고 나고 나서는 잠만 자요. 학교도 잘 못 다니고. 애 엄마가 깨워도 애가 일어나질 못 한대요. 애 엄마가 전에 밤새 너무 슬프게 울었어요. 그래도 그 이후로는 학교 잘 다니고 있대요.

7월 25일

세월호 100일 집회 끝나고 새벽 네 시에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하네요. 여기 광화문 광장에 사람이 꽉 찼어요. 국민들이 이토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정성을 봐서라도 꼭 특별법을 제정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7월 28일

오늘은 단식 15일째 입니다. 아침부터 야당 의원들이 분주하게 이순신 동상 앞으로 모였어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라고. 기자회견이 끝나고 전해철 의원과 몇몇 의원들이 내 몸 상태를 걱정하시며 단식을 중단하라고 하셨어요. 나는 단식을 안 멈출거에요. 그러니 야당 의원들도 약한 모습 보이지 마시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좋겠네요.

날씨가 덥네요. 김병권 위원장은 어제 총회 참석했다가 바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제 광화문 단식은 예지 아빠와 나, 둘만 남았네요. 두 시가 넘으면 한 낮의 폭염이 시작됩니다. 예지 아빠 혈압이 3일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70/50으로 떨어졌어요. 위험 수치라고 하네요. 예지 아빠도 오늘 병원으로 갔습니다.

솔직히 나도 두렵네요. 이제 광화문에 혼자 있어야 하는데. 언제 쓰러질지. 그래도 우리 유민이를 생각하면. 공포에 질리고 두려움에 몸서리 치며 엄마, 아빠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그 생각 하면서 참고 버티고 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이 억울하게 생매장 당했는지 꼭 밝혀 내려면 나라도 광화문을 지켜야지요.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9일

오늘은 단식 16일째 입니다. 대전에서 한 시민이 오셨습니다. 큰 쇼핑백을 건네 주셨어요. 힘내라고만 하고 몇 마디 하지도 않고 펑펑 우시며 가버리셨어요. 쇼핑백을 열어보니 노란 종이배 304개랑 편지 한 장이 있었어요. 편지를 펼쳐봤는데 아무런 글도 없는 백지편지.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3일 전부터 광화문 국민 문화 촛불 행사를 하고 있어요. 그래도 첫날보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네요. 촛불이 하나 둘 모여 8월 15일에는 10만이 넘는 촛불이 밝혀지리라 기도 해봅니다.

7월 31일

오늘은 단식 18일째 입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심판인가요. 여당 11곳 야당 4곳의 결과가 나왔네요. 일부 주장처럼 우리 유가족이 너무하는 걸까요. 더 많은 보상, 배상을 받으려고 단식까지 하며 싸우고 있는걸까요.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여기서 단식을 중단하고 주는대로 먹고 떨어져야 할까요.

너무도 허탈합니다. 국민들의 심판이. 야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처 때문인 거 같습니다.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보면 야당은 강하게 어필하지도, 밀어붙이지도 않았어요. 도대체 유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네요. 무능한 당 지도부의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일기마저 쓰기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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