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 전 신라시대 큰절 '창림사' 실체 드러났다

2014. 7. 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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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200여년전 세워진 신라의 큰절이었으며, 19세기 대학자 추사 김정희와도 인연이 있는 경주 남산 기슭의 옛 절터 창림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발굴기관인 계림문화재연구원(원장 남시진)은 최근 이 절터를 1차 발굴조사하다 금당과 회랑, 종각 등 주요 시설터를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창림사터는 상, 중, 하 3권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발굴조사는 두마리의 쌍거북이 비석받침돌(쌍두귀부·雙頭龜趺)이 있는 중간 권역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발굴 결과 금당지와 회랑지, 쌍귀부의 비석을 덮은 전각지, 종각지, 축대, 담장 등의 유구들이 세 차례 이상 중복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유적이 확인됐다고 한다.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연대가 추정되는 연꽃무늬ㆍ여러 이파리들이 화려하게 펼쳐진 장식무늬인 보상화문(寶相華文)ㆍ신상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천문(飛天文)ㆍ귀신 눈 같은 귀목문(鬼目文) 등의 다양한 기와막새(와당·瓦當)와 1291년의 연호가 새겨진 명문 기왓장 등이 출토됐다. 발굴단 쪽은 "발굴유물과 유적의 연대로 보아 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사찰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창림사는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신라 고찰로, <삼국유사>에 신라의 첫 궁궐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해 고려시대 존속하다가 조선 초에 폐사된 뒤 3층 석탑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3층 석탑은 창림사지를 상징하는 뛰어난 신라 탑이다. 상층기단에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상인 팔부신중상이 조각되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824년 탑 안의 사리장엄구를 훔쳐내려는 도굴꾼에 의해 탑이 무너진 적이 있는데, 이 당시 탑 안에서 신라 문성왕 17년인 855년 세웠다는 사실이 기록된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가 발견됐으며, 그 필체와 내용을 당대의 대학자 추사 김정희가 그대로 옮겨 쓴 모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계림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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