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의 노동여지도]천안·아산 중소기업의 살맛나는 일터

2014. 7. 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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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대한칼소닉과 함께 천안과 아산에 있는 금속노조 소속 갑을오토텍, 위니아, 세정, 대원강업, 나스테크, 다스, 대림프라코, 케이엠피, 세영테크 등의 중소기업이 모두 생산현장에 사내하청이 없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다.

평택을 지난 열차가 충남 천안에 가까워 오자 너른 평야가 이어진다.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천안아산역을 지나자 다시 평야가 나타난다. 오랜 가뭄으로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반가운 장맛비가 들녘을 적신다. 하지만 오랜만의 단비가 쌀시장 전면개방에 성난 농심까지 달랠 수는 없다.

조그마한 충남지역노조 사무실, 말 건네기가 미안할 정도로 분주하다. 조합원이 4명인 회사를 비롯해 40여개의 사업장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200명으로 출범한 조합원이 지금 1800명, 제조업에서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환경미화원, 택시기사, 휴게소 노동자까지 업종도 20여개에 이른다. 오늘은 4명의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 멀리 태안의 농협 하나로마트까지 집회를 하러 간다. 민주노총 충남본부에서 마련한 집회 전용 무대차도 출동이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전날 남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집회를 준비한다.

충남지역노조 김봉진 위원장은 전국 350개 맥도날드 매장에 햄버거를 납품하는 KFSC(코리아푸드시스템) 소속이다. 법인 분리와 공장 이전으로 고용문제가 닥쳐오지만, 더 작고 어려운 사업장의 조합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는 "충남지역노조는 365일 투쟁, 365일 교섭, 365일 천막"이라며 환히 웃는다. 노조 설립 상담이 줄을 잇는다. 대부분 하청노동자다.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져 연대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지역노조가 고맙다.

대한칼소닉 공장 내부 | 박점규

아산시 탕정면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지난다. 매출액이 2012년 21조원에서 지난해 29조원으로 급증했지만 정규직은 173명만 늘었다. 비밀은 사내하청에 있었다. 7월 1일 정부가 공개한 고용공시제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천안·기흥공장에 5882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18.28%로 동종 업종인 LG디스플레이(7.66%)의 2.3배에 이르렀다.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거치며 삼성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박창식 전 지부장은 "삼성코닝, 삼성에스디아이 등 여러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닌 삼성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맛비가 퍼붓는다. 아산산업단지 끝자락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코리아웨코스타. 공장 식당에서 시원한 냉면을 먹고 노조사무실로 향했다. 2000년 40명이 노조를 만들었다가 회사의 탄압으로 모두 탈퇴하고 남은 '독수리 5형제' 5명이 4년을 싸워 지킨 노조다. 식당과 경비를 빼고 109명 모두 정규직이다. 지역에서 조직력이 으뜸으로 인정받는 비결은 조합원과의 소통이다. 축구, 볼링, 낚시 등 5개의 동아리와 띠모임에 조합원 80%가 참여한다. 조반장, 사무직과의 소통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노조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며 리본을 만들어 전 조합원에게 나눠주고 공장 식당에서 세월호 영상을 상영했다. 간부들이 조합원들을 일대 일로 만나 촛불집회에 가야 하는 이유를 얘기했더니 조합원들이 잔업까지 마치고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왔다. 세월호 천안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귀진 지부장은 "만날 술 먹고 노래방 가는 녀석들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민주노총이 사업장별로 인원을 할당해 지침을 내리려고 하지 말고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을 나와 좁은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성환과 둔포를 잇는 길 양쪽에 배나무밭이 펼쳐져 있다. 나주배와 함께 유명한 성환배 생산지다. 배밭 사이로 드문드문 작은 공장들이 보인다. 공장과 농촌이 뒤섞인 풍경이 이채롭다.

'7월 24일 14:00 2011년 75차 임금교섭, 15:00 2014년 2차 임금교섭.'

아산시 둔포면에 있는 유성기업 아산공장 노조사무실 칠판에 적힌 내용이다. 신의와 성실의 노사관계 시계는 2011년 멈췄다. 이명박이 쌍용차노조를 특공대로 진압한 이후 시작된 노조 파괴 전쟁의 살생부에 유성기업 민주노조가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유성기업은 현대차가 성과급과 주식에 매달릴 때 매년 현대보다 높은 기본급을 인상했다. 불법파견의 대명사 현대차와 달리 생산현장에 단 한 명의 사내하청도 없는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지켜왔다. 심야노동을 없애는 주간 2교대제를 현대차보다 먼저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현대차에 눈엣가시가 된 이유였다. 2011년 5월 18일 현대차 총괄이사의 차량에서 발견된 '현대차/기아차 시행 전 선(先) 시행 노사 합의 방지' 문건대로 '불법파업 유도→직장폐쇄→용역경비 동원 공장 출입 봉쇄→공권력 투입→노조 파괴'가 이루어졌고, 친기업노조가 만들어졌다.

실패한 민주노조 살해사건

회사는 임금교섭을 마무리한 친기업노조 조합원들에게 7월 18일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넸다. 봄에 준 성과급까지 합치면 600만원. 전기충격기와 CCTV 사건으로 6월 17일부터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7월 10일 받은 월급은 100만원 안팎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조 조합원은 319명으로 어용노조보다 40명가량 많다. 7월 17일 서울고등법원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유성기업 홍종인 지회장은 "돈 많이 받는 어용노조 조합원들은 고개 푹 숙이고 다니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돈은 없지만 부서, 동기, 고향별로 모임을 하면서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차 각본, 창조컨설팅 연출, 이명박 후원의 '유성기업 민주노조 살해사건'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비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둔포에서 30분을 달려 천안 입장의 외진 공단에 있는 대한칼소닉을 찾았다. 칼소닉도 생산현장에 사내하청이 한 명도 없는 회사다. 노사협의회를 마친 교섭위원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완성차 물량을 글로벌기업에 빼앗겨 2006년 140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지난해 880억원으로 떨어졌다.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자 회사는 복지 축소와 생산직 희망퇴직을 요구했다. 노조가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금속노조가 함께하자 회사는 그만 물러섰다. "회사가 금속노조를 두려워해요. 사업장을 넘어 연대파업을 하고 끝까지 싸우는 걸 봤기 때문이죠. 저희 조합원들도 금속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조봉국 지회장의 말이다. 대한칼소닉지회는 7월 22일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주야 4시간 파업을 했다.

최근 완성차 물량이 확보돼 회사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옆에 있던 14년차 대의원이 잔업 없어도 4500만원 정도라고 얘기해준다. 노조 상근자 3명 빼고 조합원들 대부분이 천안의 아파트를 샀단다. 작업복을 입고 시내에 나가면 좋은 회사 다닌다고 부러워한다. 노동조합의 힘이다. 대한칼소닉 주변 공장들은 월급도 낮고 일도 힘들다. 조 지회장은 "저희도 충남지역노조처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며 미안해한다.

유성기업, 대한칼소닉과 함께 천안과 아산에 있는 금속노조 소속 갑을오토텍, 위니아, 세정, 대원강업, 나스테크, 다스, 대림프라코, 케이엠피, 세영테크 등의 중소기업이 모두 생산현장에 사내하청이 없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다. 최대 재벌 삼성과 현대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늘리고, 중소기업 민주노조가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빗방울이 가늘어졌다. 민주노총 사무실은 늦은 밤에도 바쁘다. 1993년 천안에 내려온 최만정 민주노총 충남본부장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농촌마을이었던 천안·아산은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도 겪지 못한 노동운동의 불모지였다. 유성기업, 센추리, 대흥기계, 동양엘리베이터 등 87년 투쟁을 겪었던 부천의 회사들이 내려오고, 삼성전자, 현대차 공장과 부품업체가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천안·아산에서 현대차노조의 역할은 거의 없었죠. 부품사 노조를 중심으로 지역 연대파업을 하면서 노동운동이 성장했고, 당진과 서산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이제 노동운동이 시·군 단위의 지역운동으로 뿌리를 박고, 공장의 친환경 급식운동과 같은 사업으로 지역 농민회와 연대의 폭을 넓히면 좋지 않을까요?"

작은 노조들이 만들어가는 살맛 나는 노동도시, 노동여지도를 그리며 모처럼 우울하지 않은 밤이다.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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