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에도 침묵한 '망각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이했지만, 일절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하루 종일 '경제살리기'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진도를 방문해 유가족을 위로했지만 대통령의 '경제행보'에 묻혔다. 이를 두고 정부가 경기부양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면서 '세월호 참사'의 아픈 기억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망각 대통령' '망각 정부'라는 비판도 야권에서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세월호 100일'을 외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실종자 10명이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있고,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대통령 차원의 유감 표명이나 메시지 전달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과거와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만인 지난 5월19일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유 전 회장 검거를 5차례나 공개 독촉하면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대신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00일인 이날 하루 종일 '경제활성화'만 부각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20여분이나 모두발언을 했다.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동여매고 경제부흥을 위해 한마음으로 매진해달라" "여기서 다시 주저앉게 되면 우리 경제는 긴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 수 있다" 등 독려의 말이 이어졌다. "국민이 하루 휴가를 더 가게 되면 지출액이 1조4000억원 는다고 한다. 정부 부처부터 직원 하계휴가를 적극 권장해주시고, 각 부처 장관들도 솔선수범해주기 바란다"고 여름휴가를 권장하기도 했다.
오후엔 미국 상공회의소 임원단을 접견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 등 여권 주류가 '경제활성화' 아젠다를 전면에 부각시켜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 무능이 잊혀지는 효과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야권에서 제기된다. 여권에서 '일상복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 사망 사실을 모른 채 5차례나 유 전 회장 검거를 공개 독려한 대통령의 머쓱한 상황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박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나 김진태 검찰총장, 이성한 경찰청장 등 수사당국 수뇌부 경질 문제를 의식해 말을 아끼는 것이란 관측도 있다.
박 대통령은 대신 정 총리를 '정치적 대리인'이자 '방패막이'로 삼았다. 정 총리는 이날 진도를 다시 찾았다. 정 총리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만나 "세월호 참사를 세상을 바꾸는 계기로 삼고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면서 "최악의 사고에 위로조차 어려워 곰곰이 위로할 말을 생각했다. 내 자녀, 가족이 몸을 바쳐서 세상을 바꿨다고 위안을 삼아달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진도군청에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이낙연 전남지사, 이동진 진도군수 등과 함께 사고 이후 위축된 진도 지역 경제활성화 대책을 논의하고 "우선 정부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한 노력들을 모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용욱·이지선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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