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충 등 비방 글·헛소문이 비수처럼.. 눈물도 말랐어요"

박소영 2014. 7. 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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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성호군 누나 보나씨

하루 6시간 모니터링 악성댓글 고발 "생각 없이 썼을 뿐" 변명에 더 상심

갈수록 대량으로 반복 게재… 요즘엔 유가족 면전서 험한 말까지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은 박보나씨가 23일 세월호 유족들이 단식 농성 중인 여의도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세월호 관련 언론 보도 내용을 모니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안산, 쓰레기 동네에서 어차피 쓰레기 될 거 잘 죽었다.' 페이스북을 뒤적이던 박보나(21)씨의 손이 떨렸다. 세월호 사고로 안산 단원고에 다니던 셋째 동생 성호를 잃은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5월 중순의 일이었다. 동생은 참사 일주일째인 4월 23일 배 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씨는 기사에 달린 익명의 댓글에서, 더러는 실명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서 매일 피해자들에 대한 비방과 마주해야 했다. 욕설부터 헛소문까지 비수가 돼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은 막아야 했다. 그는 동생 장례를 치르고는 줄곧 비방글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국문학도 박씨의 평범한 대학 생활은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박씨를 22일 늦은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세월호 사고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의 단식 농성장에서 만났다. 박씨의 가는 팔과 다리는 햇볕에 그을려 더 말라 보였고, 피곤에 절어 눈 밑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박씨는 매일 안산 합동분향소 옆 가족대책위 사무실에 출근해 모니터링을 한다고 했다. 하루 6시간씩 세월호 피해자와 가족을 모욕하는 댓글을 하나하나 살피고 비방 수위가 높은 것을 따로 정리해 경찰에 고소하는 게 박씨의 일이다. 안산 단원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게 두 달여 만에 벌써 10여 차례나 된다.

"비방 댓글을 비판한 제 글에 대해 '유가족도 댓글 알바(아르바이트) 쓰냐'라고 조롱하거나 유가족을 '유족충'이라고 부르며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댓글이 심한 욕설보다 더 아팠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할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정치권이 제안한 단원고 학생들의 의사자 지정이나 특례 입학 등을 유가족이 요구한 것처럼 쓴 기사도 상처를 후벼 팠다. 최근 비방 댓글은 같은 아이디로 여러 개의 글을 쓰고, 똑같은 글이 대량으로 반복 게재되는 등 초기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달리고 있어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가 더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매일 수천 개씩 들여다보게 되는 '험한 말'은 박씨를 지치고 멍하게 만들지만 정작 그런 글을 쓴 이들이 무신경하게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박씨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댓글을 단 것을 보고 나도 생각 없이 썼을 뿐'이라는 변명을 접할 때, 매일 퇴근길 동생의 영정사진을 보러 분향소에 갈 때마다 '떠나간 아이들을 모욕하는 글들을 모두 없애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가슴을 후벼 파는 댓글들을 석 달째 보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박씨이지만 최근에는 우는 날이 잦아졌다. 피해자 가족들이 전국 각지로 서명운동을 나갔다가 면전에서 "시체장사 한다" "자식을 팔아먹는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후부터다.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세상에 우리만 남은 기분이었다. 서러웠다"고 말하는 박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21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서명을 받고 있는 책상을 뒤엎는 등 난동을 피웠고, 18일에는 엄마부대 봉사단 회원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유가족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참사로 피붙이를 잃은 유가족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박씨는 세월호 참사 100일(24일)을 앞두고 사진전 준비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동영상 제작을 돕느라 잠도 설쳐가며 일하고 있다. "제 동생은 국가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떠났지만 다른 아이들은 안전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살도록 해야죠." 전화를 받은 박씨는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또 어디론가 달려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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