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

주진우 기자 입력 2014. 7. 21. 11:28 수정 2014. 7. 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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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 세월호가 잊혀가려 할 때, 방송인 김제동씨(40)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그는 지난 대선 이후 트위터를 중단하고 일절 사회참여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7월8일, 무엇이 그를 세월호의 중심으로 이끌었는지 물었다.

어떻게 지냈나?

얼마 전 영국에서 강연을 하고 왔다. 강연장에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영국 노병 두 분이 오셨다. 가슴에 훈장을 단 멋진 정복 차림이셨는데 이런 말을 해주셨다. "이번에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정말로 가슴이 아팠고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려 했던 이유가 바로 아이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게 돼 정말 미안했다." 그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어른의 역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본다. 국가 유공자들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데 학생들만 챙기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국가를 위해서 목숨 바쳤던 수많은 어르신들은 당연히 국가에서 당사자를 비롯해 후손까지 충분한 대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땅에 사는 우리 아이들, 죄 없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는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시사IN 윤무영 김제동씨(위)는 단원고에서 강연을 하고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 등 생존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체육관에서 자던 유가족들이 아직도 거리에 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가족들이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고, 이런 것들을 하라고 국가가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국가에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첫 번째 기회는 놓쳐버렸다. 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기회는 국가가 놓치지 말아야 국민한테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 이 의무를 저버려선 안 된다.

세월호 사고를 어떻게 접했는가.

그날 아침에 운동하러 갔다. 승객들을 다 구했다고 하기에 아무 일도 없는 줄만 알았다. 돌아올 줄 알았다. 정말로. 닷새, 엿새가 지날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 며칠 있다가 애들이 등교하는 거 보고 많이 울었다. 지금도 길거리 지나가다 애들이 보이면 괜히 시비를 건다. "시험 쳤냐?" "시험이 뭔 의미 있냐?" 그렇게. 집에 가다가 애들 보이면 태워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아무것도 못 해본 아이들인데, 뭐든지 해봐야 하는데, 연애도 하고….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는 거다. 어른들의 죽음도 물론 안타깝지만, 애들이지 않은가.

한동안 사회참여 때문에 불이익을 많이 보지 않았나? 이번 일로 하던 프로그램이 또 어떻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주변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진짜 외면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근데 그렇더라. 한참 낄낄거리고 놀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집에 들어가면, 내가 사람인가 싶은 거다. 그러다 보면 진짜 외면하고 싶다가도 다가가는 거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못 살 것 같으니까. 좀 조용히 살고 싶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희생된 아이들 중에 나를 좋아하는 아이, 그중에는 나한테 사인받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었을 거고. 그런 거 생각하면 괴롭다. 그 애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단원고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조용히 갔다 왔다. 생존 학생들을 만나러.

생존 학생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김제동씨가 가장 큰 위안을 주었다고 하더라.

그 학생들은 일단 위로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살아온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있더라. 무섭더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복도에서 한 번씩 안아주고 그랬다. 까르르 하고 웃다가 어떤 친구가 묻더라. "순간순간 너무 무섭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잊고 싶은 기억을 잊으려면 어떡해야 하느냐?" 나도 모르겠더라.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무서운 기억들이 잊히지 않을 때는 내가 꼭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다. 또 가려고 한다. 애들하고 축구도 하고. 남자애들 축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 때도 강연 마치고 애들하고 축구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줬다니, 정말 고맙다. 사실은 지금 생존 학생들도 물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걔들도 건져야 된다. 근데 유족들도 지금 경황이 없으니….

ⓒ시사IN 신선영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국을 돌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제 그만 세월호 사건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도 나온다.

뭘 하자는 게 아니라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말아달라는 거다. 사정한다. 정부나 정치권에. 진상을 규명하는 마지막 기회는 놓치지 말아달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심 어린 사과를 정부에 바라는 거다. 어른으로서. 그게 '너희들이 굴복해라'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은가. 그게 제일 필요하다고 본다. 국회의원들 밤잠 설치면서 일해서 낮에 존다고 하는데, 밤에는 주무시고 낮에 일해야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하지만 이 사회는 세월호 문제를 자꾸 외면하도록 만든다.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놀면서 기억해야 한다. 유가족 분들도 어디 가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상갓집에 가도 상주들이 같이 담배 피우고 웃고 하지 않는가. 웃다가도 집에 들어가서 미친 듯이 울기도 하고. 그게 정상이지. 웃는 게 죄를 짓는 건 아니다. 적어도 상갓집에서 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면 못 슬퍼한다. 어떻게 슬퍼하겠나. 그러니까 웃으면서 견뎌야 한다. 밥 맛있게 잘 먹고, 산행 한 번 하고,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특별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우리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어려울 때도 멀어지지 않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게 진짜 심리적 복지다. 나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이미 잊혀가는 것 같다.

이건 좀 길게 가야 한다. 우리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일이고. 상갓집에 가보면 양복 차려입고 와서 금방 인사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구석에서 밤새도록 술 먹고 화투 치고 놀면서 오래 함께 있어주는 사람도 있다. 후자로 가야 한다.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잊지 않고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외면하고 싶은 아이들로 만들면 안 된다. 그래야 면목이 있지. 사실 지금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다 물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 죽겠다고들 하지 않는가. 어른들이 그런 문제를 고민해줘야 한다. 이런 얘기 하면서도,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자고 하면 이념적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념 쪽으로 가면 단순해진다. 지금껏 그랬듯이. 하지만 이건 대한민국 아이들의 이야기다. 시스템을 잘 만들자고 하는 것뿐이다. 대통령 의무 가운데 제일 먼저 있는 게 뭐냐.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지 않나. 이건 이념하고 관계가 없다.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 골자는 독립기구를 신설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돈 문제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야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기가 죽어 있다. 그래서 유족들은 보상 문제를 특별법에서 빼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돈 때문에 그런 사람 아무도 없다. 바다에 돈을 띄워놓고 아이와 바꾸겠냐고 하면 바꿀 사람 없다. 적어도 내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주면 우리는 슬퍼하는 데만 집중하겠다는 것 아닌가. 적어도 내 아이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지금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니까 용서를 못 해주는 거다. 보상금 문제는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이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념을 가지고 죽은 아이가 몇이나 있나 대체.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뭘 하자는데, 여기에 이념을 갖다 붙이면 안 된다. 지금 목숨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념은 목숨의 하위 개념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

.(여야는 7월16일까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양당 모두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이라는 골격은 같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조사위원회에 특별사법경찰관에 준하는 수사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지만 새누리당은 반대한다. 야당은 조사위원회가 피해자 지원 대책까지 책임지게 하자고 하는데, 정부·여당은 별도 위원회를 구성하자고 한다. 또 야당은 세월호 피해자를 의사자로 예우하자는 의견이지만, 여당은 이에 반대한다. 세월호 특별법 진행이 지지부진하자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자체 법안을 제출하고 나섰다.)

아이들을 위한 서명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많은 분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고, 기도해주시길 부탁한다. '서명이 실질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모아주는 일이다. 함께 공감하고, 절대 그들에게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명으로써 표현하는 일이다. 그것이 이 땅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많은 어르신, 많은 아버님, 어머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함께 서명해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시사IN 주진우 김제동씨는 단골집에 서명지를 비치하는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제안했다.

김제동씨가 서명운동에 나서자 반응이 뜨겁다.

아직 힘이 많이 모자란다. 그래서 '노란 리본' 달기 운동에 나서려고 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단골집에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용지를 비치하고, 서명을 받는 거다. 서명 용지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단골집에 노란 리본이 늘어나면 세월호 유족들에게 힘이 되고, 정치인들도 열심히 하고, 참사의 진상도 규명된다. 아이들의 죽음이 미래에 대한 고귀한 희생으로 승화되어 대한민국도 달라진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단골집 매상이 오르면 경제도 자연히 좋아진다. 내가 자주 들르는 서래마을 카페 '스퀘어 가든' 사장님(사진 왼쪽)도 흔쾌히 노란 리본을 달아주셨다. 양평 용문산 카페 '제로제'의 명재석씨도 참여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도 반드시 우리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누군가가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지금이 우리가 세월호 유족들에게서 멀어지지 않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멀어지지 않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달라.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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