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의 주적은 간부'라는 농담 아닌 농담

2014. 7. 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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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군사 / 최전방의 병영

▶ 강원도 고성 22사단 일반전초(GOP) 총기 사건을 벌인 임 병장은 도주 중에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는 게 죽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괴로울 테니까"라고 메모를 썼습니다. 한창나이에 징집돼 누구도 원하지 않는 최전방 부대로 '끌려간' 젊은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장병의 기본권과 일상이 박탈된 상황에서 조직의 스트레스까지 겹치면 인간이 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6월21일 벌어진 22사단의 일반전초(GOP) 총기사건은 2005년 6월19일의 연천 530GP 총기난사 사건, 2011년 7월4일의 해병 2사단과 마찬가지로 내무반(생활관) 부조리에서 시작된 사건이다. 가장 강력한 총기사건이 6월말에서 7월초라는 시기에 몰려 있는 것도 특이하지만 임무가 과중하고 생활여건이 열악한 오지에서 상호 존중과 배려의 공동체 의식이 붕괴되었다는 배경도 거의 흡사하다. 무언가 같은 문제점이 사건을 통해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재영 병영인권연대 대표에 따르면 "놀랍게도 군 강력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유족들이 가해자를 이해하고 감싼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자식을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에게 적대와 원한을 드러내야 하는데 유독 군 총기사건의 경우에는 그 반대라는 이야기다. 530GP 사건의 경우에도 유가족들이 가해자인 김동민 일병에 대해 "그애도 피해자"라며 두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번 22사단 사건에서도 유족들이 가해자인 임 병장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7월9일의 현장검증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임 병장의 범죄 재현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저렇게 작은 체구의 여린 애가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렀느냐"며 동정심까지 보인다. 왜 가족들은 가해자에 대해 이런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임 병장 등 관심병사 사건에서피해자 부모들은 가해자에게동정을 보이며 두둔하기도 한다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징병된아들 또래에 대한 연민일 터노무현 때 추진한 기본권 대책이명박 때 백지화 뒤 상황 악화무능 간부가 생활 힘들게 한다최전선 병사들의 생명가치 경시이런 징병제 언제까지 갈까

저렇게 여린 애가 어떻게…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 역시 피해자 유족의 이런 현상은 "군 사건의 독특한 일면"이라고 말한다. 일반 강력사건의 경우는 가족들이 가해자에게서 악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치를 떨지만 군 사건의 경우는 이와 양상이 다르다. 어쩌면 가족들은 사망한 자식과 같은 또래의 가해자에게서 자식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징병되어 오지의 열악한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근무를 해야 했던 그 처지만큼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다르지 않다. 즉 같은 처지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은 가해자에게 좀체 미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에서 유족들은 군대라는 존재 그 자체, 징병제라는 제도 그 자체가 주범이며, 책임을 따진다면 관리를 소홀히 한 군 당국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해자는 원래 문제가 있었던 비정상인이라고 단정하는 당사자는 피해자 가족이 아니라 군 당국이다. 입대 이전에 원래 성격에 문제가 있었고 입대 후에도 군에 적응하지 못했던 관심병사였다는 점이 그 근거다. 그래서 총기사건이라는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사이코패스인 것처럼 묘사한다. 군대라는 조직과 구조의 책임을 완화시키려니까 임 병장 사건은 "개인의 문제"라고 재빨리 정리해 버린다. 사건이 일어나자 김관진 국방장관이 보인 행태가 바로 그러했다. 심지어 필자가 만난 대다수의 육군 장교들은 사회와 학교, 가정으로부터 나약하고 비뚤어진 인성의 인력 자원을 제공받은 자신들이야말로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마치 불량자재를 납품받은 건설업자와 같이 시공을 잘못한 건 아니라는 변명이다. 이 때문에 진정한 문제의 해결은 군대의 장병 기본권 증진이나 선진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관이 투철한 우수 자원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나간다. 문제의 원인이 군대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육군은 군 정신교육의 목적을 "사회의 오염된 사상에 물든 장병들에게 반복적으로 국가관을 주입하는 것"(2008년 육군 업무보고서)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군에서만 장병을 교화하고 징벌하면 때가 늦으므로 일선 학교에 직접 나가서 전교조로부터 오염된 학생들에게 안보교육을 한다는 선까지 그들의 행동반경을 꾸준히 넓혀왔다.

북한과 한국군 모두 '인권' 싫어해

적어도 이 점에서 '인권'이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하기로는 북한이나 우리 군대나 별 차이가 없다. 군의 본연의 임무인 전투수행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주적의식, 그리고 과감히 기본권을 양보할 수 있는 전투원이 있어야 한다. 2005년 530GP 사건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착수한 병영문화 개선 대책과 장병 기본권 증진 대책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육군 장성들의 반발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 때문에 장병 고충 상담 및 처리 대책도 부실해졌고 장병 기본권 강령 제정, 군 인권기본법 제정 등 제반 대책들도 몽땅 어디론가 사라졌다. 심리상담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군 상담요원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는 "군대 현실을 잘 아는" 예비역들이 들어왔다. 이런 예비역에게 상담을 하러 가면 오히려 "인내심이 없다"고 혼나기 십상이어서 이미 그 효력을 상실했다. A, B, C로 분류된 관심병사는 그에 합당한 존중과 배려가 아니라 비정상인으로 사실상 낙인찍혀 수치심을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보수 정권의 군 인권에 대한 퇴행적 움직임을 보이자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연간 군 내 자살자가 다시 세자릿수로 늘어났고, 군 지휘권의 남용으로도 지목되는 영창 입소자 수가 예전에 비해 300명 정도 늘어난 1100명으로 증가했다. 좌익 장병을 색출한다며 감시, 사찰, 처벌하는 사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투형 군대'를 강조하면서 지휘관의 중점이 '사고 예방'보다 '전투 발전'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도 증가했다.

그런데 여기서 군 당국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실 하나가 있다. 전투를 잘하는 게 군 조직의 존재 목적이라는 점이야 백번 맞는 말이지만 한국의 군인은 전투를 하려는 프로 군인, 직업 간부들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징병된 청년들이라는 점이다. 제대 후에도 별다른 보상도 없이 월 10여만원의 월급만으로 목숨을 걸고 과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 군대에서는 병사들이 오지에서 근무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서럽고 억울해한다. 그런 정서는 심지어 초급 간부들에게까지 확산되어 우리 지상군의 하부조직 전체가 피해의식과 고립감에 빠져 있다. 이것을 위로하고 보상하지 않으며, 윽박지르고 조여붙이고 체벌하는 것으로 관리하려는 권위주의적 인식이 애국심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 여기에서 군 수뇌부가 장병들에 대해 갖는 인간관은 '나약하고 불완전하고 공포에 취약하기 때문에 조직의 힘으로, 규율로 교정해야 하는 개인'이 됐다.

이번 총기사건으로 구속된 소초장은 27살로 전역을 3개월 앞두고 있었고, 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은 22살로 역시 제대를 3개월 남겨놓은 새파란 청춘들이다. 2009년 민간인 월북 사태나 2012년 '노크 귀순' 사건이 벌어진 22사단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항상 모든 잘못은 가장 경험이 없는 소초장에게 책임을 부과하여 혼자 십자가를 지도록 했다. 정작 군을 좀먹는 허위보고와 은폐·왜곡, 관리 소홀의 책임자인 상급 지휘관들의 책임이 축소됨으로써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병영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 이미 이 소초에서는 부대원들끼리 다투다가 고가의 야간투시경을 파손하는 심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소초장이 보직 해임되고 직무대리로 새로운 소초장이 부임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심상치 않은 조짐은 또 있다.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사단 소속의 한 병사가 속초에 휴가 나왔다가 간부 3명과 마주치자 도주하던 중 추락사했다. 이로 인해 사단 전체가 외출, 외박, 음주, 회식이 금지되고 2인 이상 영외에서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면회까지 중지되었다. 윽박지르고 조여붙이고 잔소리하는 통제와 규율의 연속이었다. 장병의 기본권과 일상이 박탈된 상황에서 조직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면 인간의 심성에는 예기치 않은 변화가 나타난다. 좁은 공간에 갇혀 반복적인 일상을 강요받는 가운데 관심의 사각지대였던 임 병장에게서도 통제 불능의 증오와 적대감이 분출되는 야수의 본성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경험 없는 자가 지키는 최전방의 일상

바로 여기서 가장 경험이 없는 초급 간부가 역시 경험이 없는 전투원들을 지휘하는 우리 병영의 구조적인 모순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전방은 가장 경험이 없고 상황대처 능력이 미숙한 청년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수시로 우리를 건드리는 북한군, 단조롭기 짝이 없는 경계근무, 고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전방일수록 먹고 자는 문제에서부터 부실한 장비와 보급에 이르기까지 소모전을 지향하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는 불가사의하게도 변함이 없다. 경계근무를 하면서 북한군을 주시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순찰을 도는 간부를 감시하는 행태가 일반화되어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농담이 일반화되어 있다. 여기에다 순찰을 돌기보다는 생활관에서 티브이를 시청하면서 순찰표만 조작하는 간부, 부하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진급에만 몰입하는 지휘관 등 갖가지 불합리한 행태들이 거의 병사들에 의해 목격되고 관찰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1작전범위(페바 알파·FEBA A) 방어에 최전방 병력의 약 40%가 손실되는 것으로 군 당국은 예상한다. 이에 대해 작년에 국방장관 후보자로서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낙마한 김병관 예비역 대장에 따르면 첨단무기와 화력이 증강된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병력을 최전방에 배치하는 건 비합리적이다. 그 대신 병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면 그 손실률은 17%로 줄어들게 된다. 좋은 무기로 더 잘 싸우는 군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일컬어 그는 "인본주의형 국방개혁"이라고 부르며 군의 대수술을 예고하였으나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장관직에서 낙마했다. 그러나 일선의 우리 전투원들의 생명가치가 총체적으로 경시되는 전근대적인 군대가 국민소득 2만달러의 나라에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군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징집병을 위주로 전방에 15개의 사단, 6개의 군단, 2개의 군사령부에 30만명 정도 배치하고 있다. 한국군은 똑같은 유니폼을 입혀 외형적으로는 단일 집단의 구성원으로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학별 갈등, 성별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도 있지만 가장 큰 갈등은 빈부 갈등이다. 이를 관리해야 할 부사관이나 소대장도 병사들과 같은 또래의 경험 없는 20대로 그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군대 내 약자나 부적응자를 상대로 하는 신종 '왕따 놀이'가 판을 친다. 관심병사가 발생하는 것은 조직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과업을 수행할 수 없는 비정상인으로 취급받는다는 뜻이다. 임 병장 사건은 한국군의 병영의 갈등구조가 조직 전체를 붕괴시키는 시한폭탄이 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하나의 비상벨일 뿐이다. 전방에서 소대장과 중대장을 역임한 한 예비역 장교는 "솔직히 요즘 병사들이 무섭다고 느낄 때가 많다"며 심적 고충을 토로한다.

만일 10명의 병사가 있다면 8~9명은 조직의 목적에 부응하며 임무를 잘 수행한다. 1~2명의 문제만 갖고 군을 너무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곤란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1~2명 때문에 조직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평시에도 관심병사 1명 때문에 소대의 임무 전체가 차질을 빚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직 구성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군대에서는 사소한 문제가 있는 병사라도 조직 전체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 대안은 역시 최전방의 경계와 작전을 과학화하고 전문화하면서 징병제의 근원적 모순을 제거해나가는 길밖에 없다. 사기충천한 직업군인의 비율을 더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만 나오면 우리 지상군의 최고위 간부들은 마치 안보가 무너지는 것처럼 펄쩍 뛴다. 전방에서 부대 수와 병력을 감축하고 현대적으로 군을 개선하려고 하면 시도도 해보기도 전에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 결과 더 위태로운 최전방의 일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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