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추적 수사'에 등 터지는 사람들

김태훈 기자 2014. 7. 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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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적 묘연한 유 회장, 관계사들의 얽히고설킨 자금 관계에 수사기관ㆍ금융기관 등 전방위 압박. 돈줄 막힌 관계사들 경영위기에 신도 아닌 직원들도 날벼락. 세월호 수사가 구조과정 등 국가기관의 잘못은 묵인한 채 유씨 일가 체포에만 몰두해 사건 본질 흐려지고 인권 경시되는 측면 크다는 지적 나와

"경찰이 택배회사들한테 공문을 보냈어요. '구원파' 회사에서 보낸 상품 배송내역을 달라고. 그거 받아서 경찰이 고객들한테 전화를 하는데 고객들은 기분이 나쁘죠. 회사에 항의도 하고, 앞으로 안 산다고 그러고, 그래서 매출이 이전에 비해 절반도 안 돼요."

세칭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관계사들을 향한 정부의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행적을 쫓는 수사기관의 노력은 구원파 관계사가 보낸 물건을 뒤쫓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채권 만기 연장은커녕 만기가 오기 전에 대출자금을 상환하라고 요구하는 금융권의 자금 동결도 풀릴 기미가 없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중간에서 등 터지는 이들은 구원파 관계사 직원들과 평범한 신도들뿐이다.

가라앉은 것은 세월호뿐만이 아니었다. "금융권 대출 상환 요구만 아니라 세무서에서도 분납 가능하던 세금을 일시에 내라고 하고, 돈줄이 막히는 게 꼭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목이 조여오는 느낌이죠." 매출이 반토막 났다는 구원파 관계사 '다판다'의 이모 부장이 보는 회사의 자금사정도 물속처럼 시야가 흐릿하다. 이미 7곳의 대리점은 폐업했고 그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구원파 회사'란 낙인 때문에 한 대리점 유리창이 돌을 맞아 깨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 부장은 매장 유리창에 직접 방탄필름을 붙였다.

세월호 사고 이후 자금 경색과 매출 감소로 폐업한 구원파 관계사 노른자쇼핑의 직영 슈퍼마켓에 셔터가 내려진 채 휴업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구원파에게 날아오는 돌은 구원파 신도가 아니라도 피할 수 없다. 구원파 관계자는 구원파 관계사에 다니고 있는 직원 가운데 신도의 비율은 많아야 20%를 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사 전체 직원수가 2000명 내외인데,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해지'(약 1300명)와 '정석케미칼'(약 200명)이 제조업 사업장이라 직원의 90% 이상이 구원파와는 무관한 일반인들이라는 것이다. 2만명 가까이 되는 구원파 신도 중에서도 관계사에 다니는 직원은 5% 정도라 일반 직장에 다니거나 구원파 관계사와는 관련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신도 수가 훨씬 많다.

"구원파 회사 직원 중 신도는 5% 정도"

구원파에 대한 수사와 금융압박이 예상 외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특히 이들 제조업 사업장이 가동 중단에 들어가는 등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구원파와 무관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구원파 관계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처지에 몰렸다. 컨테이너선 건조가 주력인 천해지와 차량용 도료 제조가 주력인 정석케미칼 두 업체 모두 세월호 사고 수사 직후부터 채권 만기 전 상환을 요구한 금융권의 조치 때문에 법정관리가 이미 시작됐거나 임박한 상태다. 또 다른 제조업 사업장인 '세모' 역시 현재 가동률이 50%를 밑돌아 직원들이 순환휴직에 들어가 있다.

"회사에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순식간에 문닫을 지경이 된 거 보면서 이게 뭔가 싶다가, 불안하다가, 그랬죠. (경영진에) 종교색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별 생각 없이 회사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공장이 멈추다시피 하다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으로 가까스로 가동이 재개된 천해지의 직원 박모씨는 구원파 신도가 아니다. 지난 14일 창원지법이 '파산 시 대규모 임직원 실직 우려' 및 '거래처 포함 300개 이상 협력업체에 심각한 피해 예상'이라는 이유를 들며 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리고 나서야 박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직도 회사 앞날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건 그대로지만, 그래도 진짜 망하나 싶던 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나아졌어요."

이전까지 재무상태가 건실했던 천해지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은 세월호 사고 이후 몰아친 금융권의 자금 압박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유 전 회장의 사진 등 작품을 약 280억원 상당의 현금으로 매입하면서 나빠진 재무상태에 직격탄이 날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천해지는 영업을 계속해 채무 변제가 가능하다고 법원이 판단할 정도로 사업 실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평균 3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왔다. 반면 이미 폐업상태인 '온나라'와 '노른자쇼핑', 매각협상 중인 '온지구' 등 다른 구원파 관계사 소속 직원들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구원파 관계자는 "폐업한 곳의 직원들에다 일반 직장에서도 구원파란 이유로 쫓겨난 신도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관계사도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검·경 수사관들 때문에 업무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에 밀집해 있는 구원파 관계사 주변에서는 순찰 중인 경찰차를 비롯해 수시로 찾아오는 수사관들이 직원들을 조사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관계사 직원 ㄴ씨는 17일 사무실로 찾아온 검찰 수사관에게 또다시 조사를 받았다. "이번이 네 번째 아님 다섯 번째는 될 겁니다. 살고 있는 동네 관할서에서 집으로 찾아오지, 검찰은 전에 한 번 사무실로 왔다가 오늘은 수사관을 새로 투입됐다고 또 왔지, 광역수사대에서도 왔지." 자주 오지만 수사에도 뚜렷한 소득은 없다. "물어보는 건 거의 비슷해요. '유 회장 언제 본 적 없냐'부터 해서 '오늘은 무슨 업무를 했냐' 등등 매번 같은 소리를 해주는 게 지겹지."

경찰이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집행으로 금수원에 진입한 6월 11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금수원 정문 앞에 구원파 신도들이 집결해 있다. 정지윤기자

휴대폰 압수 사생활 노출 "기분 더러워"

어떤 면에서 구원파 관계사에 다니고 있는 신도들이 더 나은 점도 있다. 수사기관의 호출을 받아도 직원들이 모두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별다른 위화감이 없어서다. 반면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는 구원파 신도들은 수사기관에 출두하는 일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믿고 있는 종교가 일방적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자신의 신앙이 그대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사건과의 관련성을 의심하는 주변의 시선도 피할 수 없다. "이전까지 교회 다닌다는 말도 안 했어요. 기성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교회 다니냐고 물어볼 거고, 그 사람들 말대로 '구원파'인 게 알려지면 선입견부터 갖고 볼 테니까." 구원파 신도임을 드러내지 않던 김모씨의 종교적 정체성이 드러난 것은 수사기관의 출두 요청 때문이다. "떳떳하니까 나가는 건 문제가 안 돼요. 근데 가려면 회사에 말할 수밖에 없고, 안 좋은 소문은 금세 퍼지니까…."

집으로 찾아온 수사관들에게 붙잡히듯 따라가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충격을 남긴다. 대부분 혐의도 증거도 없이 형식적인 조사만 마치고 돌아오긴 하지만 어린 자녀들에게 이미 새겨진 기억은 되돌릴 수 없다. 미처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임의동행했다가 조사가 길어져 1~2박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조사를 받고 온 신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불편은 수사관들이 만나자마자 유 전 회장 도피를 위한 연락의 흔적을 찾는다며 휴대전화부터 가져가는 데 있다. 일시적이나마 바깥에 연락할 길이 끊긴 데다 가장 사적인 기록들까지 노출되는 기분은 "정말 더럽다"고 김씨는 말했다.

"경찰이 왔는데 사복 입었으니 경찰인 줄도 모르겠고, 여자 혼자 있다 보니 무섭기도 해서 문을 안 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다리 타고 유리창 깨고 들어오더라고요. 영장도 먼저 제시 안 하고…." 추모씨가 겪은 일처럼 때로 수사과정에서 과도한 조치가 있기도 했지만 법적 대응은 못하고 있다. 변호사를 찾기 어려워서다. 구원파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라 접촉하는 변호사마다 수임을 고사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연락처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신도수만 1000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구원파가 신도의 기본적인 시민권 보호를 위해 뾰족한 대응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씨 모르는 신도 무차별 소환 인권침해"

수사기관과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데는 나름의 사정도 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종교단체와 일반 기업인 구원파 관계사들 사이의 자금관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문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구원파 교회나 교회가 출자해 설립한 영농조합법인의 소유로 돼 있는 토지 등 부동산이 관계사들의 담보현황에 들어가 있는가 하면, 교회 소유 재산이 사실상 유 전 회장 일가의 지분과 구분되지 않고 그동안 기업 영업을 위해 제공되기도 했다. 명목상 교회에 소속된 종교인 신분인 일부 피의자들이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것도 교회 재산을 기업 운영과 분리하지 않은 관행을 조장한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구원파 관계사들 간의 지배구조 역시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정점으로 각 관계사들 간에 서로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순환적인 출자구조 모양새를 띠고 있다. 교회 재산과 유 전 회장 일가 재산에 더해 각 기업들의 보유분 주식까지 어지럽게 얽혀 있어 특정 기업이나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압박을 가할 순 없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입장이다. 관계사들로 들어오는 자금이 자칫하면 유 전 회장 도피자금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관계사들의 자금사정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신도들에 대한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점처럼 퍼져 있는 신도들이 어떤 경로로 유 전 회장 일가의 도피를 돕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 전 회장과 일면식도 없었음에도 구원파 신도라는 점 하나 때문에 임의동행이나 출두 요청이 남발되는 것은 종교 차별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해석이다. 영장 없는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출두 요청 자체가 직장·가정생활에서는 범죄 혐의와 연루된다고 받아들여지는 등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상임활동가는 "사건과의 관련성도 수사기관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서 단지 특정 종교의 신도라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소환을 남발하는 등의 조치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세월호 수사가 구조과정 등 국가기관의 잘못은 묵인한 채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체포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는 반면 신도들의 인권은 경시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사고 책임이 청해진해운에 있고, 유병언 전 회장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수사를 하겠다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납득합니다. 그런데 '구원파'는 무조건 나쁜 집단이란 낙인을 찍고 사고와 관련 없는 기업들까지 끌고 들어가는 건 안 되는 거죠." 구원파 관계사 중 한 곳인 '많은물소리' 출판사에 소속된 조계웅씨는 17일 또다시 동료 직원이 출두 요청을 받고 인천지검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태어난 지 11개월 된 자식에게도 앞으로 크면 신앙을 물려주고는 싶지만, 이 신앙을 가졌다는 걸로 이런 큰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고민도 됩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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