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 목적이냐'는 말에 상처받는 유족들

2014. 7. 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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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

출근길로 한창 바쁜 11일 오전 7시 30분께. 인천특별시 부평역 지하광장에 하늘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팻말을 들고 섰다. '단원고 2학년 5반, 엄마 아빠가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천만인 서명에 함께해주세요'라 쓰인 팻말이었다. 팻말 속에는 아이들이 웃으며 함께 찍은 단체사진과 국화 꽃다발이 책상 위에 놓인 교실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 "단원고 2학년 5반 엄마아빠입니다"

11일 오전 7시 30분께. 인천특별시 부평역 지하광장에 하늘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단원고 2학년 5반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팻말을 들고 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는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 2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유족들이 직접 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고 있다.

ⓒ 유성애

한 어머니는 팻말을 든 채 자꾸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노란 나비들이 새겨진 손수건이었다. 이 모습을 찍던 지상파 방송사 촬영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그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터뷰나 이런 거 다 싫어, (진도)체육관에 있을 때 생각나서 마음만 아프단 말이야…" 숙소로 잠시 쉬러가는 길,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털어놓은 속마음이었다.

민성이 아버지 김홍열(45)씨는 '서명촉구' 팻말을 들고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갈 때면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검은색 캡모자를 쓴 그는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전 아들과 함께 부평역 내 쇼핑몰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민성이와 함께 수학여행 때 입을 옷을 사러 왔었다"는 김씨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 옷 사주러 왔던 곳(부평역)을 이런 이유로 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죠. 너무 마음이 아파요. 살아있다면 우리 아이도 저렇게 웃고 떠들고 다닐 텐데… 그냥 (민성이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고, 여행가서 안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 모자도 민성이가 쓰던 건데…."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가 특별법 제정촉구 서명을 위해 전국순회 가족버스를 탄 지 10일째. 부모들은 아이가 속한 반별로 모여 2박 3일씩 버스를 탔다. 동부권·서부권을 도는 버스를 타고 마지막으로 서명운동에 나선 건 2학년 5반(서부권)과 6반(동부권). 국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5반과 6반은 문과계열로, 주로 남학생들이 많은 반이었다.

▲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2학년 5반은 담임선생님인 이해봉 교사와 26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5반 학부모들은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희생자 한명 한명의 이름을 단체 티셔츠 뒷면에 새겼다.

ⓒ 유성애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2학년 5반은 담임선생님인 이해봉 교사와 26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수학여행에 나선 반 전체인원 36명 가운데 희생자는 27명에 이른다. 5반 학부모들은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단체 티셔츠 뒷면에 새겼다. 유족들은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며 오는 24일(참사 100일)까지 1000만명을 목표로 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고 있다. 국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7월 12일 현재 서명에 참여한 사람은 약 400만명에 달한다.

"유족이라는 게 죄인"... '보상금 목적이냐'는 말에 상처받는 유족들

아이를 잃은 단원고 학부모들은 서로의 이름을 잘 몰랐다. 그저 'OO엄마', 'OO아빠'라 서로를 부르며 나이차에 따라 언니, 형 등의 호칭을 쓰고 있었다. 오전 출근길 선전전 후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도 한 마디 대화 없이 식사를 하던 이들은, 잠시 시민단체에서 제공한 숙소에 들어와서야 긴장을 풀고 웃기 시작했다.

이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언니네 쪽은 김밥만 먹었어? 우린 콩나물국밥 먹었는데, 이쪽으로 오지~"라며 살갑게 서로를 챙기는가 하면, 방 한 켠에서 안산에 남아있는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병원 가는 거 알지? 엄마 없어도 잊지 말고 가야해"라며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동진이 어머니는 "유족이라는 게 죄인 같아, 뭘 먹고 싶다고 함부로 말도 못하겠고"라며 낮게 읊조렸다.

서명운동 중 만나는 사람들은 유족에게 "힘내시라"며 응원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민성아빠' 김홍열씨는 "어제 저녁에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 두 분이 와서 '새끼들이 놀러가다가 죽은 걸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냐, 보상금이 목적이냐'고 해 싸움이 날 뻔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되레 유족들을 질책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유족들이 이런 불편한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며 참는 이유는 하나다. '완준이 아빠' 김필성씨는 "그러다가 정말 싸움이라도 나면, 유족에 대한 시선은 더 안 좋아지고 서명운동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것 아니냐"며 "(그런 말이) 상처가 되더라도 세월호 사고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최대한 참기로 했다"고 말했다.

▲ "서명 부탁드립니다"

유족들은 11일 오후 한국지엠과 현대제철 등 인천 시내 대규모 사업장을 돌며 서명을 받았다.

ⓒ 유성애

▲ 인천 대학생들 "잊지 않을께요, 힘내세요"

유족들은 오후 3시께 인천시민사회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손편지'를 받기도 했다. 인천 내 대학생들이 모여 "힘내시라"며 일일이 직접 쓴 편지를 음료수에 붙여 유족들에게 건넸다.

ⓒ 유성애

오후 2시께에는 한국지엠과 현대제철 등 인천 시내 대규모 사업장을 돌며 서명을 받았다. 유족들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며 "서명에 동참해 주세요", "세월호(사고)를 잊지 말아주세요"라 외쳤다. 옆에서 돕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족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 반복해 말했지만, 정작 유가족들은 스스로 '유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자꾸 유족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게 '민성엄마' 박은희(41)씨가 밝힌 이유였다.

"오늘 우리 아들 생일...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

'진광아빠' 김아무개씨(55)는 오후 서명운동을 마치고 안산으로 되돌아갔다. 11일이 아들 김진광군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생일 축하하러 아내와 (아들이 안치된) 납골당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이제는 다 괜찮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유족들이 바라는 건 그저 아이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하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라며 "국정조사에서 시간만 낭비되는 게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사업장에 이어 인천교육청에서 교육감과 만나 간담회를 가진 유족들은 오후 3시께 인천시민사회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손편지'를 받기도 했다. 인천 내 대학생들이 모여 "힘내시라"며 일일이 직접 쓴 편지를 음료수에 붙여 유족들에게 건넸다. 11일 마지막 일정으로는 오후 7시 부평역 앞 촛불문화제가 있었다. 여기에는 젖먹이를 품에 안고 온 아기 엄마와 노란 손수건과 노란 배지, 노란 리본 등 온통 노란색으로 물든 사람들 1천여명이 함께 했다.

주최 측의 요청으로 무대 위에 선 '성호엄마' 정혜숙(47)씨는 "서명을 받고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다시는 이런 희생이, 가슴 찢어지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동참을 호소했다. 옆에 선 다른 유가족 어머니들은 고개를 숙인 채 내내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들은 하늘을 쳐다보거나 눈을 질끈 감으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 "서명에 함께 해 주세요"

거리서명에 나선 유족들. 이들은 "우리가 바라는 건 그저 아이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하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라며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애

▲ "아이들 살아올 수는 없지만.. 아픔 반복되지 않도록"

11일 오후 7시에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성호엄마' 정혜숙(47)씨는 "서명을 받고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다시는 이런 희생이, 가슴 찢어지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동참을 호소했다.

ⓒ 유성애

촛불문화제를 마친 유족들은 숙소로 되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날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하루 종일 부평역과 로데오거리, 문화의거리 등을 돌며 받은 서명은 약 1만 500명. 여기에 한국지엠 노동조합 측에서 자체적으로 받은 서명 2500명, 인천 내 시민단체와 천주교 측에서 모은 서명 1만 6천명 등을 더해 총 3만 4800여명의 서명이 모였다.

유족들은 12일 가족버스를 마치고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모여 '세월호 가족버스 보고대회'를 열 예정이다. 특별법 제정 호소와 함께 직접 진행·연주 등을 하며 그간 가족버스를 타고 다니며 느꼈던 점들을 밝히게 된다(관련기사: 세월호 유족들, 처음으로 서울 도심 집회 주최한다).

지난 2일부터 유가족들과 함께 한 김은진 국민대책회의 서명위원장은 "유족들은 낮보다 밤에, 바깥보다 아이가 없는 집에서 더 힘들어하신다"며 "잠을 못 자 수면제를 드시는 분도 있고, 술이 없으면 아예 못 주무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이분들에게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비록 아이들을 구할 골든타임은 놓쳤더라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골든타임까지 놓치지는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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