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진 의원은 왜 220호를 제안했을까

이오성 기자 2014. 7. 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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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라"와 같은 말을 또 듣게 될 줄 몰랐다. 이 말을 들었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의 부모들을 향해,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위원이 한 말이었다. 지방선거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바꾸겠다"라며 머리를 조아리던 그 국회의원이 아니었다. 파행의 시작이었다.

양비론은 적절하지 않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한다'는 목적으로 출발한 세월호 국조특위를 엎어버린 건 새누리당이다. '세월호 국정조사 파행'이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 7월2일 상황만 따지면 명백하게 그렇다.

발단은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국조특위 위원의 발언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해경과 청와대의 통화 내용에 대해 질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 중계 영상을 좋아하는 바람에 사고 수습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넘겨짚은 발언이었다.

이에 새누리당은 "녹취록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곧 김광진 위원이 "그런 발언은 없었다. 사과드리겠다"라고 밝혔다(이후 김광진 위원 발언의 단초가 된 녹취록 내용 "VIP가 그건데요"는 "중요한 게 그건데요"의 오기로 밝혀졌다. 해경 측의 녹취 실수였다).

ⓒ시사IN 조남진 국정조사가 잠정 중단되자 유가족들이 새누리당 상황실을 찾았다. 이날 해양경찰청장이 상황실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이 유가족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새누리당은 김광진 위원의 사과 이후에도 다시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석고대죄라도 하라는 말이냐"라며 반발했고 고성이 오갔다. 국조특위 위원들 간에 언쟁이 이어지자 일부 유가족이 "싸우지 마라. (새누리당 위원들을 향해) 그냥 나가라"고 항의했다.

이때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조원진 위원은 유가족에게 "당신 뭡니까? 유가족이면 잘 좀 계세요"라고 말했다. 이후 장내가 소란스러워졌고 7월2일 오전 회의가 끝났다. 한때 조원진 위원이 유가족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오후 들어서도 새누리당은 어깃장을 놓았다. 아예 김광진 위원을 국정조사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후 2시30분 속개할 예정이었던 국정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이 나섰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 본관 제3회의장에 마련된 국정조사장에 나타나지 않자 유가족은 새누리당 국정조사 상황실을 찾았다. 국조특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과 면담을 요구했다. 잠시 후 심 의원이 나타나 싸늘하게 물었다. "누가, 왜, 절 보자고 하신 건가요?"

세월호 유가족이 답했다. "국정조사 하셔야지요. 더 이상 어떻게 사과를 하라는 겁니까. 유족들이 와서 이렇게 말하면 들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기서 방청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유가족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심재철 위원장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새누리당 상황실로 들어갔다. 결국 이날 저녁 7시30분까지 국정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국정조사장에는 야당 위원과 해양경찰청장 등 증인, 그리고 유가족만 앉아 있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가족 수십명은 울거나 화를 내거나 망연자실했다. 이날 오후 국정조사가 중단된 틈에 새누리당 국조위원들이 해양경찰청장과 상황실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이 유가족에게 목격돼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날 유가족들은 새누리당을 겨냥해 여러 차례 분통을 터뜨렸다.

야당 위원들은 5월 말 세월호 국조특위가 출범할 때부터 새누리당이 국정조사에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한다. 국정조사 때 기관보고를 받기 위해서는 통상 20∼30일 정도의 예비조사 기간이 필요함에도 일정을 앞당겨 국민적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 있는 시기에 기관보고를 진행하자고 주장한 점, 6월2일 국조특위 첫 일정으로 진도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으나 "유가족이 일정 변경을 요구한다"라며 새누리당 위원들은 불참한 점 등을 예로 든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위원은 "6월2일 진도 현장을 방문했더니 유가족이 '우리는 새누리당에 방문 날짜를 바꿔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해서 황당했다. 처음부터 새누리당은 세월호 국정조사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6월30일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실시된 이후에도 새누리당의 태도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해경이 관련 자료를 기관보고 당일 새벽 1시에야 제출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도 않았다. 새누리당 위원들의 국정조사 태도에 대해 일부 기자들이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말씀 하시는 것 같다"라며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새누리당, "외부 영향 최대한 줄여야 한다"

세월호 국조특위 야당 간사인 김현미 위원은 이런 사례도 털어놓았다. 기관보고가 시작되기 직전인 6월 말, 기관보고 장소를 논의하던 중 갑자기 새누리당 측에서 국회 본관 220호로 할 것을 요구했다. 220호는 방청객은 고사하고 기관보고에 출석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앉을 자리조차 부족할 정도로 좁은 곳이다. 언론사 취재진의 접근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시사IN 조남진 7월2일 오후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도중 퇴장한 가운데 유가족들이 회의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김현미 위원이 이에 반발하자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위원은 "외부 영향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이 "외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묻자 조 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현미 위원은 "애초부터 새누리당은 유족들이 방청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게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애당초 비틀거렸던 국정조사를 가능케 한 힘은 유가족에게 있었다. 국조특위 출범 전인 5월 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 새누리당의 반대로 특위가 공전하고 있을 때 국회에서 2박3일간 농성을 벌임으로써 특위를 출범시킨 것이 유가족이었다. 이후에도 국정조사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유가족이 나섰다. 새누리당 처지에서도 유가족의 요구는 함부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원진 위원의 "좀 계세요"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야당 국조특위 위원들은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 때 유가족이 없었다면 새누리당은 어떻게든 김광진 위원을 사퇴시켰을 것이다. 19대 국회 들어 새누리당이 취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물타기'는 나름 성과를 거뒀다. 국정조사가 파행을 겪은 7월2일 보수 언론은 김광진 위원의 발언 논란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MBC는 특히 이날 저녁 8시 < 뉴스데스크 > 에서 '해경 녹취록 공개 왜곡 발언 논란… 세월호 국조특위 파행'이라는 제목으로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위원의 발언 논란에 무게를 실은 뉴스 한 꼭지만을 내보냈다. 청와대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해경과 청와대의 녹취록 공개 관련 뉴스는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갈수록 첩첩산중, 최대 고비는 증인 채택

앞으로도 여야 간 신경전은 계속될 것 같다. 7월4일에도 여야는 유가족 방청객 수를 제한하고, 시민단체의 참관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조원진 위원은 김광진 위원의 발언을 '조작·날조'라고 규정하며 사퇴하지 않으면 국정조사 일정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정조사의 파행이 계속될 가능성이 더욱 짙어졌다.

남은 일정도 첩첩산중이다. 세월호 국정조사의 최대 고비는 7월 말이다. 8월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조사 청문회의 증인 채택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이때 진행된다. 하필이면 7·30 재·보선 기간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야의 공방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오성 기자 /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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