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1. 인사청문회 무엇이 문제인가

신범수 2014. 7. 10. 07: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이경호 기자, 장준우 기자] 여론재판이 지나친가, 국회의 정략 때문인가, 대통령 인물관에 문제 있나, 제도가 잘못됐나

흠집과 낙마의 트라우마, 대체 누구 탓인가"청문회 통과가 최우선 목표다." 잇따른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이후 청와대 관계자들이 버릇처럼 반복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국가개조' 작업을 진두지휘할 인물의 선정 기준으로 '청문회 통과'를 제시한 것은 그만큼 인사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청와대를 짓누르고 있음을 방증한다.

박 대통령은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뒤 '문창극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 전 후보자를 내정하면서 청와대는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 전 후보자의 역사인식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고 야권과 언론으로부터 사퇴압박이 강해지자 박 대통령은 혼란에 빠졌다. 중앙아시아 순방 중이던 지난달 18일 박 대통령은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귀국해서 여러 상황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 재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임자'라고 밝힌 인물이 곤경에 빠지자 '임명동의안 재가'를 미루고 사실상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유도한 것으로 해석됐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문 전 후보자를 포기한 것은 그가 '식민사관'을 가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모 교회에서 했다는 강연 전체를 들어보면 식민사관에 젖은 인물로 보기 어렵다고 박 대통령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일련의 사태가 종료된 후 "신상털기, 여론재판식"이라 비판하며, 인사검증 방식에 대한 전면적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현재의 불안정한 인사검증시스템은 임명권자마저 수긍하지 못한 채 여론에 떠밀려 후보자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그 후보자가 일정 기간 자진사퇴를 거부하며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는 초유의 난맥상도 그대로 국민 앞에 노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문창극 사태 이후 '청문회 통과용' 총리를 찾아 헤맨 노력마저도 수포로 돌아간 무기력함에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는 다수의 인사를 접촉했지만 본인이나 그 가족이 반대해 고사한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인사 트라우마'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결국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은 사의를 표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는 황당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총리 후보자의 국정시행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여론이 반복돼서 많은 분들이 고사를 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청문회 가기도 전에 개인적 비판이나 가족들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고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정 총리가 사의를 표한 지난 4월27일 이후 60일간 진행된 이 같은 '인사논란'에 국정은 혼란을 거듭했다. 공직사회 개혁 등 세월호 참사 사후조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사실상 '올스톱(all stop)' 상태를 이어갔다. 총리 문제로 내각 구성이 지연되며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청와대와 여론 추이만을 지켜봐야 했다.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단행한 인사가 오히려 국정을 마비시킨 일련의 사태는 청와대 인사검증 방식과 여론검증, 인사청문회 제도 등 인사를 둘러싼 사회ㆍ제도적 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후보를 흔드는 손문창극 사태…보수·진보 대결 양상'문창극 사태'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인선 기준과 검증절차, 검증 기준은 물론이고 중도낙마의 타당성과 절차성에 대한 문제, 국무총리라는 자리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까지 함축돼 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문 전 후보자는 총리 후보자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다수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임명권자인 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지명철회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회를 갔더라도 임명동의안이 표결로 통과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 시각을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나누면 판이하게 달라진다. 사퇴의 원인에 대해서는 언론의 비이성적 보도와 정치권의 이전투구식 싸움이 낳은 참극(보수)과 부적합ㆍ부적절 후보자로서 마땅한 결과(진영)라는 주장이 지금도 맞서고 있다.

역사관 논란의 단초가 된 KBS 보도에 대해서는 "악의적 편집과 왜곡보도이다"와 "아니다 "가 팽팽하다. 중도사퇴에 대해서도 한쪽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시켰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쪽은 잘못된 인사와 부적합 인사의 낙마는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을 비판한다. 다만 보수는 박 대통령이 책임지고 청문회를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점을, 진보는 박 대통령의 인사관과 연이은 인사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방점이 찍힌다.

국무총리라는 지위와 자리의 특성을 감안하면 인사청문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제2, 제3의 문창극 사태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 국무총리는 내각을 통할하는 자리로 영예와 권위는 대통령 다음이지만 그 자리로 가는 과정은 어느 고위공직자보다 힘겹고 혹독하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총리는 장관급 국무위원들과 비교해 인선기준과 임명절차, 검증잣대 등도 다르다. 전문성보다는 투철한 역사관과 윤리의식, 고도의 청렴함이 앞선다. 인사청문회도 최장 3일간 치르고 국회에서 과반이 동의해야 임명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결국 이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거나 끝까지 버틴 총리 후보자만이 인사청문회장에 입장할 수 있다"면서 "인사청문회 방식을 변경하더라도 후보 지명 전 검증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는 반복되는 인사 난맥상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차떼기 연루, 깊이 후회" "위장전입, 제 불찰" "군복무중 연수, 죄송"對국민 '고해성사' 무대로7~8일 이틀간 진행된 박근혜정부 2기 내각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후보자 자질ㆍ정책 검증의 장'이라기보다 '대국민사과의 장'이 펼쳐졌다. 어느 인사청문회장을 막론하고 도덕성 문제가 집중 추궁되자 후보자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 신상털기가 난무하던 인사청문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지난 7일 열린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 연루 전력을 놓고 공방이 오갔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깊이 후회한다"며 "제 머릿속에 정치관여라는 말은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라며 머리를 숙였고 "가슴 한구석에 사표를 써서 들고 다니겠으니 지켜봐 달라"며 읍소했다.

같은 시간 열린 최양희 미래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마찬가지였다. 최 후보자는 다운계약서 의혹과 관련 "세무 지식이 부족해 중개업자를 따라 잘못된 관행으로 거래했다"고 인정했고 군복무 중 프랑스 유학, 미국 연수 의혹에 대해서도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농지법 위반을 회피하기위해 경기도 여주 전원주택 잔디밭에 고추를 심은 것에 대해서도 "거듭 사과드린다. 정말 반성하고 있다"고 답했다.

8일 개최된 정종섭 안행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위장전입ㆍ부동산 투기 의혹과 군 복무 기간 중 특혜, 사외이사 겸직 논란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관련해선 "젊은 시절의 제 불찰"이라고 자세를 낮췄고, 군 복무 중 박사과정 수료하고 시간강사로 출강한 것에 대해서는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켜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선박회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선주협회의 후원으로 지난해 해외시찰을 다녀온 데 대해 "뒤늦게 선주협회의 지원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제 불찰"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열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몇몇 위원들이 도덕성과 관련, 의혹을 일부 제기했으나 대체적으로 정책과 직무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뤄 상대적으로 대비된 모습을 보였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장준우 기자 sowha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