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차화연, 이젠 잊어주세요

박효재 기자 2014. 7. 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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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복귀 후 비련의 여인상 벗어던지고 악역으로 연기변신
20년 공백기 아픈 세월만큼 연기의 깊이와 열정은 배가되었다

차화연(54·사진)은 중년 시청자들의 뇌리에 첫사랑처럼 각인된 배우다. 1988년 MBC 드라마 < 사랑과 야망 > 의 주인공 미자 역을 연기하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드라마 종영 후 결혼과 함께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당대 최고 인기 드라마 속 미모의 여주인공은 그렇게 평범한 주부가 됐다.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잊혀진 배우가 되는 듯했던 차화연은 20년 세월을 건너 2008년 SBS 드라마 < 애자 언니 민자 > 로 복귀했다. 세월의 풍화작용 앞에 그의 꽃다운 미모는 빛이 바래졌으나 그와 반대로 연기의 깊이와 열정은 배가되었다. < 애자 언니 민자 > 이후로도 단역, 조연을 마다하지 않으며 꾸준한 연기활동을 이어온 차화연은 무게감 있는 연기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길이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 예전보다 절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남들이 어떻게 보든, 시청률이 얼마든 신경쓰지 않아요.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고, 때로는 만족하며 살아가는 거죠. "

사진 | 강윤중 기자

최근 만난 차화연은 긴 공백을 깨고 연기자 생활을 다시 시작했을 때 시청자들은 연기변신보다 사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혼과 연기자 복귀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속상한 마음이 앞섰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두 아이의 엄마, 아내로 헌신했던 세월을 오히려 연기의 자양분 삼아 20년 전과 다른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는 "딸이 나에게 '엄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말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건강악화로 절정의 순간에 연기자 생활을 접었지만 인간의 다양한 삶을 표현하는 신비로운 세계에 촉수를 세우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특히 < 사랑과 야망 > 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해 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댔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며 연기자의 삶에 또 뛰어들었다.

20년 공백기가 무색하게 그는 연기자로서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비결이 뭘까. 차화연은 무용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몸을 자유롭게 쓰는 데 익숙하다 보니 다른 연기자들보다 감정 표현이 풍부한 것 같아요. 한국무용은 몸짓 하나로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의 연속이에요. TV는 연극이나 뮤지컬과 달리 작은 화면 속에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제약이 있는데 그게 저한테는 큰 제약이 되지 않는 거죠."

배우로 화면에 비치는 모습을 가꾸고 새로운 연기 트렌드에 적응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얼굴과 몸에 탄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관리를 하지 않아 살이 찐 모습을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매일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만족스러운 외모를 가꾼 뒤에는 최신 인기 드라마를 모니터링하며 대사를 뱉는 톤과 속도를 조절했다. 그가 본 최근 드라마의 대사는 속도가 빨라졌고 1980년대 드라마보다 구어체에 더욱 가까웠다. " < 애자 언니 민자 > 에서 저의 대사는 옛날 영화처럼 느렸어요.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면서 톤을 조절하지만 발음은 늘 정확하고 빠르게 하려고 하죠. 감정표현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은 것 같고요."

자신감이 붙은 연기자 차화연의 캐릭터 변신은 더욱 과감해졌다. 차화연하면 떠올리기 마련인 비련의 여자, 수동적이고 희생을 감내하는 여성상을 벗어던졌다. 야망도 있고 때로는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악역으로 연기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KBS 월화극 < 빅맨 > 에서 그는 심장이 안 좋은 친자식을 위해 타인의 심장을 빼앗으려는 비뚤어진 모성애를 선보였다. 휴식기 없이 작업에 들어간 MBC 일일극 < 소원을 말해봐 > 에서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악역으로 나온다.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재벌그룹 사장과 결혼하고, 부모를 죽인 원수도 은인으로 대할 수 있는 무서운 야심가 신혜란 역을 맡았다. 타당성 있는 악역을 보여주겠다는 그는 "이제 첫사랑 차화연은 잊어주세요"라며 웃었다.

<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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