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무대가 어디 따로 있을까

2014. 7.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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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7일 일요일 흐림.
마당가르드. #115 Okkyung Lee 'The Crow Flew after Yi Sang'(2013년)

[동아일보]

우리 성당 신부님, 우리 반 선생님은 록 스타였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미사 때 신부님 곁에서 시중드는 복사(服事)를 했다. 영성체하러 나오는 평신도의 긴 행렬, 거기 끼어 나와 신부님 앞에 선 우리 반 여자아이의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난 괴상한 우쭐함을 느꼈다. 지상보다 딱 한 뼘 높은 성당 제대(祭臺)의 높이는 나를 신부님이란 보컬리스트의 등에 기대고 폼 잡은 기타리스트 정도로 느껴지게 했다.

선생님이 낸 문제에 나만 아는 답을 칠판에 적으러 한 뼘 높은 교단에 오를 때도 난 그런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난 성인이 될 무렵, 장래 희망을 록 스타로 바꾼 거다. 지상과 대중 위로 딱 한 발짝 올라서고 싶은 욕망.

6일 저녁,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의 전시 공간 '시청각(視聽閣)'에서 전위 첼리스트 이옥경의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지난해 문을 연 시청각의 이름은 시청각(視聽覺)과 누각(樓閣)을 합쳐 만든 거다. 'ㄷ'자형 기와집 내에 30m²나 될까 한 비좁은 마당이 무대였다.

해질 무렵, 첼로 소리는 툇마루나 보조의자에 옹기종기 걸터앉은 30명 남짓의 관객 위, 기와지붕에 갇힌 네모난 하늘에서 내려오듯 퍼지며 공연 시작을 알렸다. 어디서 나는지 모를 그 소리가 가까워지며 비로소 이옥경이 나타났다. 그는 대청마루에서 육중한 첼로를 어깨에 지고 켜면서 천천히 마당으로 걸어 내려왔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흐물흐물해졌다.

현을 극단적으로 강하고 빠르게 마찰해 내는 기괴한 잡음과 배음(倍音), 신경질적인 반복악절은 '전설의 고향' 속 아쟁 소리처럼 신경을 긁었고, 고택에 숨은 벌레든 귀신이든 죄다 목 놓아 원한 섞인 곡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이옥경은 첼로의 받침 못이나 신고 있는 샌들 바닥이 시멘트 바닥에 긁히는 소리까지 음악으로 활용했다. 난 그날 아방가르드, 아니 '마당가르드'를 봤다.

지난봄 청각장애 음악인 크리스틴 선 킴의 무대는 당구장을 개조한 문화공간,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구슬모아당구장'에서 펼쳐졌다. 거기서 관객은 예술가의 구성에 따라 작은 당구장 속 세계를 이루는 작품 자체가 됐다.

요즘 아이들의 꿈은 주로 연예인이나 공무원이라고 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곳. 두 개의 꿈은 딱 한 뼘짜리 꿈. 세상은 넓다. 하늘은 높다. 한 뼘보다 더. 삶은 깊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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