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얼굴에 생리대를..고객님, 너무합니다

2014. 7. 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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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선영 기자]

요즘 감정노동자에 대해 조금씩 관심들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감정노동자로서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경험담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저는 마트 계산대에서 근무한 지 10년 정도 됐고, 지금 일하는 대형 할인마트에서는 6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기간을 계산원(캐셔)으로 근무했고, 그중 1년 반 정도는 계산원 일과 고객센터 관리업무를 같이 했습니다.

[A씨의 이야기]"이 여자가 일을 이딴 식으로밖에 처리 못하냐"

마트 안 고객센터에서는 고객이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리면 순서에 따라 처리를 해드립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느닷없이 "여기요! 내가 먼저 왔으니 내 거부터 빨리 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직원 A씨는 "고객님, 번호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번호표를 뽑아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고객은 그때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본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직원 A씨한테 "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딴죽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직원에게 부탁해 일을 처리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고객은 가다가 다시 오더니 "이 여자가 일을 이딴 식으로밖에 처리 못하냐! 매니저 불러!"라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중간관리자가 와서 고객을 모시고 나갔고, A씨는 교대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이 시간이 점심식사 마지막 타임이어서 이 시간을 놓치면 점심을 못 먹는 상황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중간관리자한테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고객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습니다. 1차적으로 고객과 갈등 상황을 겪은 직원에게 다시 2차적으로 고객을 만나 사과를 하라는 겁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밥을 먹고 있으면 어떡하냐"는 질책도 받았습니다.

설령 직원이 잘못한 게 있다 해도 양쪽 말을 다 들어보고 그 상황을 해결하라고 관리자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간관리자는 무조건 A씨한테 사과하라고 하다가, A씨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를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나는 고객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 했습니다. 결국 A씨는 "꼭 제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할게요"라고 대답했지만, 억울한 마음에 밤새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합니다.

A씨는 다른 날 과일 바구니를 하나 사서 관리자와 함께 그 고객을 만나러 갔습니다. 커피숍에서 따로 만나서 "이 직원이 죄송하다고 과일을 준비했습니다"라며 사과를 종용하는 관리자 앞에서 A씨는 고객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고객님! 마음이 상하셨다면 제가 죄송합니다."

[B씨의 이야기]"말 그 따위밖에 못하냐? 높은 사람 바꿔"

한 여자 고객은 바나나를 구입했는데, 집에 가서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매장에서 봤던 가격과 다르다면서 고객센터에 전화로 항의했습니다. 직원 B씨는 "매장에 가서 확인한 결과 바나나가 여러 종류인데 다른 제품을 잘못 가져가셔서 그렇습니다"라고 알려드렸습니다. 고객은 그때부터 무턱대고 욕을 퍼부었고, B씨가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래서 B씨는 농산 담당자를 연결해줬습니다.

농산 담당자와 통화를 끝낸 그 고객은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 고객은 B씨를 바꾸라고 한 뒤, "××! 너 거기 앉아서 뭐하냐? 너 거기서 꼴랑 100만 원 받아 처먹으면서…. 너 100만 원밖에 더 받냐?"라고 인격모독 발언을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그 고객 부부가 함께 고객센터에 와서 "야! ○○○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무실에서 관리자가 B씨를 부른 뒤 "아무 말 말고 무조건 죄송하다, 한 마디만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B씨가 고객을 만나러 가자 여자 고객의 남편은 다짜고짜 옆에 있던 물건을 들어 B씨를 때리려 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B씨한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고, B씨는 할 수 없이 사과를 했습니다. 그 뒤로 B씨는 마음고생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해서 병원 치료도 받았습니다.

전화로 행해지는 폭언과 욕설. 감정노동자는 멍들고 있다.

ⓒ sxc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고객이 계란 몇 개를 구입하고 어느 정도 드시고 난 뒤 계란 하나를 깨뜨렸는데 계란에 피 같은 것이 약간 섞여 있었다고 항의전화를 걸어왔습니다. B씨가 "죄송합니다, 언제든지 시간 되실 때 오시면 교환·환불처리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응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객은 B씨가 자신의 안부부터 먼저 묻지를 않았다고 "말을 그 따위밖에 못하냐"면서 "높은 사람 바꾸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중간관리자가 직접 고객을 찾아갔지만, 그 고객은 B씨한테 직접 사과를 받겠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B씨가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 상하게 해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고객은 사과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또 걸고넘어졌습니다. 고객은 "본사에 전화해서 잘라버린다, 다시는 그 자리에 못 앉도록 만들겠다"라고 온갖 막말을 다했습니다. B씨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내 이야기]"너 때문에 헛걸음했다... 니 눈엔 이게 맞는 거 같냐"

저 또한 A, B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40대 남자 고객은 본인의 뜻대로 처리를 안 해준다고 화를 내면서 "마트에 불질러버린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칼을 든 포즈를 취하면서 "확 쑤셔버린다!"라고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상황을 떠오를 때면 무섭고 떨립니다.

체크카드 환불은 은행 업무에 따라 길게는 7일 정도 걸린다고 계산대에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저희도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요. 그런데도 몇몇 고객들은 "어디서 내 돈을 가로채느냐? 난 물건 줬으니, 내 돈 내놔라, 니가 지금 내 돈 먹고 오리발 내미냐?"라고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또 "야! 겨우 이런 데서 근무하는 게 은행 업무에 대해서 뭘 알어!"라고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객센터는 전화업무도 많습니다. 전화업무와 고객센터 교환·환불, 계산대 업무를 함께 보다 보니 전화라도 좀 늦게 받으면 늦게 받는다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전화로 상품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있냐 없냐, 얼마냐, 매장에 뛰어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냐, 왜 인터넷보다 비싸냐,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여성은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구입하고자 하는 생리대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 했습니다. 전 매장으로 직접 뛰어가 확인한 뒤 "그 상품이 지금 진열돼 있습니다"라고 말해줬습니다. 이후 그 고객이 매장을 방문했을 때, 공교롭게도 해당 상품이 없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여성 고객은 다른 생리대를 사가지고 고객센터로 와 제 얼굴에 상품을 던지며 "내가 너 때문에 헛걸음했다, 니 눈에는 이게 맞는 거 같냐?"라고 폭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욕을 먹을 대로 먹고 나서도 웃지 않으면 질책받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입니다. 고객이 던진 물건에 다친 사람도 있고, 다치고 나서도 사과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 고객에게 보상을 해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출근을 하면 '진상고객'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면서 일을 시작합니다. 하루 100여 명의 고객을 만난다고 했을 때, 100번째에 진상고객을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첫 번째에 진상고객을 만난다면, 나머지 99명의 고객을 밝게 웃으면서 맞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고객에게 욕을 얻어먹을 대로 얻어먹고 난 뒤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활짝 웃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웃지 않는다고 질책을 받습니다. 어릿광대처럼…. 종일근무로 힘이 들어 잠시 미소를 거두면 "인상이 왜 그러냐? 나한테 성질부리냐? 왜 똥 밟은 인상이냐?"라는 말도 듣습니다. 우리도 웃으면서 일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모습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을 속이고 고객에게 웃음만을 보여줘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속으로 병듭니다.

그리고 고객과 분쟁이 생길 때 감정노동자가 직접 그 일을 해결하게 만들어 2차적인 마음의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회사에서도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으며, 중간관리자들 또한 그런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정노동자도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고, 조금만 배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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