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新 풍물기행'>새것과 옛것, 부자와 빈자가 모나지 않게 어울려 사는 곳..

기자 2014. 6. 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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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가 오현종의 서울 성북동

◆기사식당 길에서 테이스티 로드로

올봄, 전직 기자 Y와 성북동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간지 기자를 그만둔 뒤,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성곽 길도 걷고 산책도 할 겸, 성북동 어때요?"

만나는 날 아침, 그녀는 전화를 걸어와 점심메뉴로 국수를 제안했다.

"칼국수요?"

"아뇨, 고기국수요."

성북동이라면 당연히 칼국수를 떠올리는 내게, Y는 제주 올레길의 고기국수를 옮겨온 식당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성북동 인근에 사는 나는 약속시간에 앞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 식당까지 걸었다.

두어 달 전에도 산보 삼아 걸어간 길인데, 처음 보는 음식점과 카페 간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래에 성북동이 맛집 거리로 주목을 받으면서 Y처럼 이곳에서 브런치를 먹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몇 년 전이었다면 아마 그들과 삼청동이나 광화문에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까.

성북동 길에 브런치 식당과 로스터리 카페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5년 안팎의 일인 듯싶다. 삼선교의 오래된 빵집인 '나폴레옹 과자점'이 성북천 공사와 함께 성북동 입구로 이전한 뒤로 한성대입구 전철역에서 성북동 길을 따라 트렌디한 식당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돼지불백으로 유명한 쌍다리 기사식당 옆에는 수제버거와 화덕피자를 파는 레스토랑이 생겨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성북동 하면 왕돈가스와 백숙과 칼국수를 맛집으로 손꼽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질적인 것들이 '한동네'로 어울려 지내는 곳

사실, 삼선교에서 어릴 적부터 살아온 내게 성북동은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이다. 보통 성북동이라고 하면 텔레비전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담 높은 저택, 그들만의 동네를 떠올리기 십상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학창 시절의 나는 성북동 인근의 특목고에 다녔었는데, 성북동에 사는 누구는 집 안에 경비실이 있다고 하고, 또 누구는 기업의 상속자라고 했다. 평범한 중산층 집안의 장녀였던 내게 성북동은 옆 동네면서도 가까이하기에 먼 동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동네 성당에서 성북동에 산다는 한 언니를 알게 되었다. 언니는 무역회사 경리직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남들이 어디에 사냐고 해서 성북동에 산다고 대답하면 다들 내가 재벌인 줄 알아. 우리 집은 산동네 연립주택인데."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웃었다. 이후로 성북동 언니와 나는 대학로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성북동의 작은 수도원에서 휴일을 보내기도 했다.

셈해 보니 그로부터 근 이십 년의 시간이 지났다. 성북동 언니의 이름이 더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북동 골목을 걸을 때면 이따금 언니네 집이 이 근처는 아니었을까 가늠해 보게 됐다.

그렇게 성북동 길은 골목 안쪽으로 다세대주택이 줄지어 있고, 도로변에 간판도 제대로 달려 있지 않은 밥집과 세탁소, 꽃집, 카센터들이 어깨를 고만고만하게 맞대고 영업하던 거리였다.

길상사와 덕수교회와 성북동성당이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다들 모나지 않게 '한동네'로 어울려 지내는 곳. 성북동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성북동'이란 주소 아래 공존하는 동네였다.

◆호객과 소음과 대형쇼핑몰이 없는 길

성북동 길의 가게들은 호객을 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유행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문간에 내놓은 식당도 없다. 네온사인이 번쩍이지 않는 성북동 스타일은 시작하는 연인들보단 익숙한 연인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대형쇼핑몰처럼 한곳에서 영화도 보고 선물도 살 수 있는 편리함이 성북동에는 없다. 그러나 그 불편함과 느림 때문에 일부러 성북동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소음에 이끌리던 젊은 시절에는 성북동의 고즈넉함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십대에는 댄스음악이 흘러나오는 성신여대 앞 분식점에서 즉석 떡볶이를 사 먹었고, 이십 대에는 대학로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클럽이라면 신촌이나 강남역이었다. 예술영화를 보기엔 종로가 좋았다. 성북동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 동네였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네가 아니었다.

소음이 달라붙은 하이힐을 신발장 안쪽에 집어넣고, 운동화를 자주 신게 된 건 서른을 훌쩍 넘기고부터였다.

삼사십 분 걷기에 성북동만큼 지루하지 않은 동네도 없었다. 흔히 '출사' 나간다는 사람들처럼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더라도 곳곳에 숨어있는 문화유적지와 옛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이나 상허 이태준 같은 문인들이 살았다는 말을 전해 듣지 않더라도 카페 구석에서 한낮의 그림자를 훔쳐보며 책 읽으면 좋을 동네가 성북동이었다. 대학로처럼 보도를 걷다가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없었다. 가로수길에 나갈 때처럼 옷을 차려입지 않아도 마음이 편했다.

◆ 욕망이 모이는 공간

이 글을 쓰던 도중 지인 몇에게 카카오톡을 보내 보았다. 성북동에서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성북동에서 밥을 먹자고 했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제각각 이렇게 대답했다.

"북적거리지 않아서."

"날씨도 좋고, 예쁜 카페도 많고."

"어린애들 없는 동네잖아."

그것만이 전부일까. 대답을 듣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궁리하다 머리가 아파서 텔레비전을 켜보았더니 주말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연예인 11명이 한 집에서 지내는 모습을 관찰하는 리얼리티쇼. 적지 않은 인원이 머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셰어하우스로 정해진 집은 규모가 상당히 넓었다.

어디인가 했더니, 바로 성북동이라고 했다. 예전에 방영된 '인간의 조건'에서 멤버들의 숙소가 부암동과 연남동이었던 걸 보면, 리얼 예능 단체숙소의 조건은 겉으로는 허술해보여도 실상은 핫플레이스여야 하는가 보았다. 셰어하우스의 주인은 출연자이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머무는 집이기도 할 테니. 시청자들을 위한 매력적인 캐릭터만큼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동네에서 '인간의 조건' 찍고 나서 주차를 못해요. 집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죽겠어요."

부암동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산 지인은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시골동네처럼 조용하던 옛 부암동이 아니라며.

그러면 낯선 간판들이 점령해 나가는 성북동 역시 쇼룸과 프랜차이즈 식당이 즐비한 삼청동의 전철을 밟게 될까. 그런 미래가 빠르게 오든 영원히 오지 않든, 누군가는 '성북동'이란 고유명사가 주는 풍요로움을 위해 적지 않은 커피 값을 지불할 것이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에 앉아있는 시간, '성북동'에 대한 로망이 전연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아파트에 사는 어른들은 성북동이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동네이지만, 들어가 살기는 쉽지 않은 동네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단순히 속물적인 욕망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곤란할 만큼 성북동은 너무나 다양한 빛깔을 갖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구부러진 성북동의 언덕길과 골목들을 아직 다 걸어보지 못했고, 이곳 안쪽까지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어디로 흐를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성북동은 익숙하면서도 앞으로 오래도록 낯설게 남아있을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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