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VIEW] 국무총리制의 위기

최재혁 기자 입력 2014. 6. 27. 03:02 수정 2014. 6.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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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辭意)를 수용키로 했던 당초의 입장을 번복하고 정 총리를 유임시켰다. 지난 4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정 총리가 사의를 밝힌 지 60일 만이다. 이 같은 경우는 헌정(憲政)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 총리 유임 배경에 대해 "국정 과제들은 산적해 있는데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이고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총리제가 결정적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고 그랬겠지만 대통령 스스로 '총리는 유명무실하다'고 밝힌 셈이 됐다"고 했다.

이 같은 '총리제의 위기'는 우선 박 대통령의 '총리관(總理觀)'이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롯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책임총리제'를 공약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졌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월호 사고 이후 비로소 박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 개혁의 적임자'를 찾아 새 총리에 임명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 총리를 유임시킴으로써 총리의 책임과 권한 강화에 대한 약속도 물거품이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박 대통령은 정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 총리 개인이 국가 개조 같은 큰 과제를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을 갖췄느냐에 대해선 의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 4월 사의 표명을 통해 '방탄 총리' 역할을 함으로써 정 총리는 할 바를 다했다"면서 "접었던 카드를 다시 살린 셈인데 과연 총리의 영(令)이 서겠느냐"고 했다. 또 정 총리 본인이 아무리 뛴다고 하더라도 여론의 지지를 받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은 '총리직'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총리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아울러 최근 두 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로 인해 '국무총리 직(職)'은 많은 이에게 '기피 대상'이 돼버렸다. 검증을 명분으로 한 야권의 과도한 인신공격성 파헤치기 탓이 크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명예를 가질 수 있음에도 고사(固辭)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역할은 애매한데 워낙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니 누가 나서겠느냐"고 했다.

헌법 86조에 국무총리의 역할은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헌법을 고치지 않는 이상 총리의 역할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총리는 미국의 부통령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차이가 있다. 대통령 공백 상태가 되면 총리는 60일 이내 후임 대통령 선거가 있기까지 '대행' 역할을 하는 반면, 미국 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이어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총리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면 대선 때 사실상 러닝메이트로 활동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방법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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