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앵커]
오늘이 6.25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앵커]
뉴스정석에서는 오랜만에 신곡 통일바보를 발표한 가수 조영남 씨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인터뷰]
버티고 삽니다.
[앵커]
26년, 화개장터 내시고 처음 신곡을 어떻게 어려운 결심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싸이 이 친구가 난리를 칠 테도 괜찮았고 조용필 씨가 바운스 하니까 옆에서 전부, 같은 조 씨인 너는 뭐하냐.
그래서 그러면 나도 노래 만들어야 하나 그래서 만들어봤죠.
조용필 씨 덕이 제일 컸다고 봐요.
[앵커]
화개장터 이후에 26년 동안 악상이 안 떠오르시다가 이번 노래에 4곡 모두 자작곡으로 담으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앵커]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조용필 씨한테.
[인터뷰]
아직 공식적으로는.
용필아, 고맙다.
너 때문에 노래를 만들게 됐어.
[앵커]
26년 만에 물꼬를 튼 첫 곡이 어떤 곡인지.
[인터뷰]
뭐를 만들까 하다가 그때 마침 어떤 대학생이 대자보 붙여서 시선을 끌더라고요.
그래서 안녕하세요 대자보를 봤는데 안녕하세요가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서 뺐어요, 첫 곡을.
[앵커]
작사도 직접 하시고 작곡도 직접 하신.
어떤 내용입니까?
안녕하세요 가사가.
[인터뷰]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금 방송에 나오고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살죠.
[앵커]
잠깐 들어볼까요.
[인터뷰]
다들 입버릇처럼.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고.
[앵커]
조영남 씨도 좀 힘든 일이 있으셨나요?
[인터뷰]
다 힘들죠.
허나 두 번 말고 딱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게 인생 아닌가요.
그런 내용입니다.
[앵커]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보니 살아볼 만하고 선생님의 지금까지 살아오신 그 마음을 담으신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두 번 말고 딱 한 번은 살아볼 만하다, 그게 제 첫 노래의 핵심이죠.
[앵커]
그래도 젊은이들은 지금 취직도 안 되고 결혼하기도 어렵고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힘든 걸 그래도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앵커]
힘들지만 또 극복하게 되더라는 말씀이시군요.
[앵커]
그리고 또 한 곡이 쭉 서울이라는 곡인데.
제가 음원을 보내주셔서 들어봤더니 중학교 때부터 쭉 서울에 살았다, 이렇게 하시면서 자기 고백적인 얘기를 담으신 것 같더라고요.
[인터뷰]
제 고향이 이상해요.
이북에서 태어났는데 황해도. 그런데 알려지기는 또 충청도로 알려졌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저는 쭉 서울에 살았고 서울에서 죽을 거니까 실제 고향은 서울인 셈이에요.
그걸 지금 노래로 만들었어요.
[앵커]
서울찬가 같은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잠깐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노래 스타일이나 창법이 아주 조영남스러운, 전형적인.
[인터뷰]
그렇게 밖에 안 돼요.
[앵커]
가사를 함께 쓰신 분이 있으시다고 저희가 들었습니다.
[인터뷰]
두 곡을 쓰고 나니까 또 제 여자친구의 대표가 있어요.
유인경 기자라고, 유명한.
그 기자가 신문기자고.
정동영 통일 관계 친구들.
정대철 형 다 우리 친구들이거든요.
그런데 그 정대철, 정동영, 유인경 씨가 요새 통일이 이슈인데 통일에 대한 노래도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떻냐 그러면서 유인경 씨가 얘기를 하더라고요.
부산에서 아침 먹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서 냉면 먹고 오는 그런 얘기를 노래로 만들면 어떻냐.
그래서 그걸 갖다가 둘이서 만들었어요.
통일바보.
[앵커]
꿈에 그리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면 얼마나 꿈 같을까.
이런 건가요?
[인터뷰]
그런 거죠.
[앵커]
통일대박 이야기 하는 게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아침에 평양 가서 냉면 먹고.
[인터뷰]
냉면 먹고 쇼핑하고 오는 게 나의 스케줄이다.
내가 꿈꾸는 게 아니고 나는 사실 내 이름은 통일바보다, 그래서 제목이 통일바보.
[앵커]
오늘 6.25전쟁 64주년 되는 날이고 그래서 또 통일이 빨리 돼야지,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북녘 동포도 그렇고 그래서 그 염원을 담으신 선생님을 오늘 모셨고 혹시 가능하시다면 이 자리에서 한번 직접 들려주실 수 있는지를 저희가 한번 청해 봤었는데요.
[앵커]
부탁 드려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민정 씨나 호준석 앵커한데 얘기하는데 처음, 처음 공식적으로.
더군다나 제 친구를 하나 불렀어요.
이북에서 실향한 새터민.
[앵커]
새터민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온 지 10년 된 함흥 출신의 가수하고 같이 부르기로 했어요.
그래서 왔는데요.
[앵커]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어서 오십시오.
얼마나 영광입니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둘이 어저께 처음 만나서 연습도 안 하고 연습도 한 번도 안 하고 여기 와서 지금 대충 했는데.
[앵커]
두 분이 만나신 게 어제가 처음이시라고요?
[인터뷰]
어제요.
[앵커]
녹음은 따로 하셨죠.
[인터뷰]
제가 찾았어요.
그런 남자 가수가 없느냐.
[앵커]
사연이 있는.
[인터뷰]
여자가수들은 있는데 남자는 굉장히 드물더라고요.
딱 한 사람 찾았어요.
그런데 물어보니까 남자가수가 없대요, 탈북 중에서.
그래서 어저께 만나서 오늘 만나자, 그래서 와서 처음 노래하는 거예요.
[앵커]
처음 맞춰보는 두 분의 하모니를 기대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반주 나오면 저희가 부르겠습니다.
[앵커]
노래 청해 듣겠습니다.
[인터뷰]
서울에서 점심먹고 서울에서 점심먹고 평양에서 냉면 먹고 놀다오는 것이 오늘 나의 스케줄.
내가 미쳤냐고요.
내가 꿈꾸냐고요.
그래요, 나는 꿈만 먹고 살아요.
내 이름 통일바보.
통일, 통일.
이게 꿈이냐, 생시냐.
통일, 통일.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부산에서 야구 보고 서울에서 영화보고. 평양에서 쇼핑하고 놀다 오는 것이 오늘 나의 스케줄.
내가 미쳤냐고요.
내가 꿈꾸냐고요.
그래요.
나는 꿈만 먹고 살아요.
내 이름 통일바보.
통일, 통일.
너를 생각만 하여도.
다같이.
통일, 통일.
괜히 눈물이 난다.
통일, 통일.
너는 대박이여라.
여기까지 할게요.
[앵커]
저희가 이 사옥으로 옮긴 지, 상암사옥으로 옮긴 지 이제 두 달 조금 넘었나데 이 사옥이 이렇게 멋진 무대로 변할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앵커]
정말 대박인 것 같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후에 맥을 이어갈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남북의 하모니가 이루어지니까 이게 노래 안에서 통일이 된 거지 않습니까.
[인터뷰]
1차적으로 된 거죠, 1차적으로.
[앵커]
분단의 아픔은 대한민국 국민의 누구나 가슴 속에 있는 거잖아요.
그걸 다독여주는 만져주는 노래가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아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통일되면 부산에서 야구보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 가서 쇼핑하고 그게 정말 마음이 와닿고요.
특히 북한에서 내려오셨으니까, 김충성 씨는.
통일이 되면 뭐를 하고 싶다는 게, 그게 남다를 것 같은데요.
[인터뷰]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가서, 가수를 했으니까 저는 자유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사상에 위배되는 노래를 부르게 되면 잘 아시는 아오지탄광으로 가야 되는, 정치범수용소를 가야 되니까 그런 제약성이 있었는데.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가서 정말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지 그거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고.
[앵커]
만약에 무대에 오른다고 우리가 꿈을 꿔 봅시다.
평양에서 큰 무대가, 콘서트가 열려서 그 무대에 서시게 되면 제일 먼저 부르고 싶은 노래 곡명은 무엇입니까?
[인터뷰]
저는 조영남 선생님의 통일바보를 부를 것 같습니다.
[앵커]
남으로 오시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또 남으로 오셔서 꿈 같이 조영남, 대선배님 아니십니까.
이런 노래를 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인터뷰]
제가 진짜 많이 당황했었어요.
관계자 분께서 저한테 전화가 오셔서 조영남 선생님께서 공연을 하시는데.
[인터뷰]
형.
[인터뷰]
조영남 형께서 노래를 하시는데 같이 해 보시는 게 어떻겠냐.
제가 조영남 형님께서 다른 유명한 가수분들도 많으신데 북한에서 온 저를 찾으셨을까 생각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형님께서 고향이 이북이셨고 통일을 생각하시는 그런 마음이 계셨더라고요.
또 통일바보 이 노래 같이 부르게 됐습니다.
[앵커]
조영남 형님께서 이번 토요일에, 이 노래를 통일바보를 포함해서 콘서트 하신다면서요?
[인터뷰]
성남하고 일산에서 주말에 콘서트를 하는데 같이 하려고 해요, 이 노래를.
[앵커]
그런데 콘서트가 특별한 포맷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인터뷰]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 일거예요.
가수가 그린 그림을 뒤 배경으로, 노래마다 거기에 맞는 그림을 비춰주는.
[앵커]
직접 화수라고 부르시잖아요, 직업을.
어떤 뜻이죠?
그림도 가지고 왔는데요.
[앵커]
이렇게 태극기하고 인공기가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뜻으로 그리신 것인가요?
[인터뷰]
제가 남북이 하나가 되면 태극기를 누구인가가 그려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혹시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조영남이가 그려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로 쓰자, 이런 의미에서 그린 겁니다.
[앵커]
통일되면 사용할 수 있는 국기를 말씀하시는군요.
[인터뷰]
임시로라도.
[앵커]
활용방안을 모색해 봐야겠네요.
[인터뷰]
두 개를 섞었죠. 민정 씨 아시겠어요, 그림?
금방 아시겠어요?
[앵커]
그럼요.
[앵커]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콘서트가 열리면, 통일돼서 콘서트가 열리면 통일바보 말고 그다음에는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 것인가요?
[인터뷰]
나머지들은, 기왕에 제가 한 것들이 많은데.
신곡 4곡을 하고 나니까 굉장히 노래 부자가 된 것 같아요.
4곡이라는 게 엄청난 비중 아니에요.
그래서 레퍼토리는, 같은 노래만 부른다.
쭉 그런 소문이 돌았거든요.
그런 건 불식되는 거죠.
[앵커]
6.25전쟁 64주년 되는 날인데요.
북한에서 태어나셨고 전쟁을 겪으셨고 북녘 동포들이나 또는 실향민들이나 내려오신 분들한테, 이런 분들한테 해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인터뷰]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에 탈북 청소년들하고 실크로드를 보름 동안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 친구들한테 26시간 기차타는 장거리 기차가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밤새도록 그 친구들이 어떻게 탈북했는지를 실제로 들어서 사연을 듣고 정말 이게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스토리를 직접 제가 들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위로해야 되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부르신 노래, 두 분이 부르신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절절한 마음들이 느껴졌고요.
저희들도 같이 통일을 꿈꾸고 모든 우리 북녘의 동포들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도록 같이 염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대박나시기 바랍니다.
[앵커]
두 분 나와주셔서 오늘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오늘이 6.25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앵커]
뉴스정석에서는 오랜만에 신곡 통일바보를 발표한 가수 조영남 씨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인터뷰]
버티고 삽니다.
[앵커]
26년, 화개장터 내시고 처음 신곡을 어떻게 어려운 결심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싸이 이 친구가 난리를 칠 테도 괜찮았고 조용필 씨가 바운스 하니까 옆에서 전부, 같은 조 씨인 너는 뭐하냐.
그래서 그러면 나도 노래 만들어야 하나 그래서 만들어봤죠.
조용필 씨 덕이 제일 컸다고 봐요.
[앵커]
화개장터 이후에 26년 동안 악상이 안 떠오르시다가 이번 노래에 4곡 모두 자작곡으로 담으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앵커]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조용필 씨한테.
[인터뷰]
아직 공식적으로는.
용필아, 고맙다.
너 때문에 노래를 만들게 됐어.
[앵커]
26년 만에 물꼬를 튼 첫 곡이 어떤 곡인지.
[인터뷰]
뭐를 만들까 하다가 그때 마침 어떤 대학생이 대자보 붙여서 시선을 끌더라고요.
그래서 안녕하세요 대자보를 봤는데 안녕하세요가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서 뺐어요, 첫 곡을.
[앵커]
작사도 직접 하시고 작곡도 직접 하신.
어떤 내용입니까?
안녕하세요 가사가.
[인터뷰]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금 방송에 나오고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살죠.
[앵커]
잠깐 들어볼까요.
[인터뷰]
다들 입버릇처럼.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고.
[앵커]
조영남 씨도 좀 힘든 일이 있으셨나요?
[인터뷰]
다 힘들죠.
허나 두 번 말고 딱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게 인생 아닌가요.
그런 내용입니다.
[앵커]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보니 살아볼 만하고 선생님의 지금까지 살아오신 그 마음을 담으신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두 번 말고 딱 한 번은 살아볼 만하다, 그게 제 첫 노래의 핵심이죠.
[앵커]
그래도 젊은이들은 지금 취직도 안 되고 결혼하기도 어렵고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힘든 걸 그래도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앵커]
힘들지만 또 극복하게 되더라는 말씀이시군요.
[앵커]
그리고 또 한 곡이 쭉 서울이라는 곡인데.
제가 음원을 보내주셔서 들어봤더니 중학교 때부터 쭉 서울에 살았다, 이렇게 하시면서 자기 고백적인 얘기를 담으신 것 같더라고요.
[인터뷰]
제 고향이 이상해요.
이북에서 태어났는데 황해도. 그런데 알려지기는 또 충청도로 알려졌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저는 쭉 서울에 살았고 서울에서 죽을 거니까 실제 고향은 서울인 셈이에요.
그걸 지금 노래로 만들었어요.
[앵커]
서울찬가 같은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잠깐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노래 스타일이나 창법이 아주 조영남스러운, 전형적인.
[인터뷰]
그렇게 밖에 안 돼요.
[앵커]
가사를 함께 쓰신 분이 있으시다고 저희가 들었습니다.
[인터뷰]
두 곡을 쓰고 나니까 또 제 여자친구의 대표가 있어요.
유인경 기자라고, 유명한.
그 기자가 신문기자고.
정동영 통일 관계 친구들.
정대철 형 다 우리 친구들이거든요.
그런데 그 정대철, 정동영, 유인경 씨가 요새 통일이 이슈인데 통일에 대한 노래도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떻냐 그러면서 유인경 씨가 얘기를 하더라고요.
부산에서 아침 먹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서 냉면 먹고 오는 그런 얘기를 노래로 만들면 어떻냐.
그래서 그걸 갖다가 둘이서 만들었어요.
통일바보.
[앵커]
꿈에 그리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면 얼마나 꿈 같을까.
이런 건가요?
[인터뷰]
그런 거죠.
[앵커]
통일대박 이야기 하는 게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아침에 평양 가서 냉면 먹고.
[인터뷰]
냉면 먹고 쇼핑하고 오는 게 나의 스케줄이다.
내가 꿈꾸는 게 아니고 나는 사실 내 이름은 통일바보다, 그래서 제목이 통일바보.
[앵커]
오늘 6.25전쟁 64주년 되는 날이고 그래서 또 통일이 빨리 돼야지,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북녘 동포도 그렇고 그래서 그 염원을 담으신 선생님을 오늘 모셨고 혹시 가능하시다면 이 자리에서 한번 직접 들려주실 수 있는지를 저희가 한번 청해 봤었는데요.
[앵커]
부탁 드려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민정 씨나 호준석 앵커한데 얘기하는데 처음, 처음 공식적으로.
더군다나 제 친구를 하나 불렀어요.
이북에서 실향한 새터민.
[앵커]
새터민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온 지 10년 된 함흥 출신의 가수하고 같이 부르기로 했어요.
그래서 왔는데요.
[앵커]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어서 오십시오.
얼마나 영광입니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둘이 어저께 처음 만나서 연습도 안 하고 연습도 한 번도 안 하고 여기 와서 지금 대충 했는데.
[앵커]
두 분이 만나신 게 어제가 처음이시라고요?
[인터뷰]
어제요.
[앵커]
녹음은 따로 하셨죠.
[인터뷰]
제가 찾았어요.
그런 남자 가수가 없느냐.
[앵커]
사연이 있는.
[인터뷰]
여자가수들은 있는데 남자는 굉장히 드물더라고요.
딱 한 사람 찾았어요.
그런데 물어보니까 남자가수가 없대요, 탈북 중에서.
그래서 어저께 만나서 오늘 만나자, 그래서 와서 처음 노래하는 거예요.
[앵커]
처음 맞춰보는 두 분의 하모니를 기대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반주 나오면 저희가 부르겠습니다.
[앵커]
노래 청해 듣겠습니다.
[인터뷰]
서울에서 점심먹고 서울에서 점심먹고 평양에서 냉면 먹고 놀다오는 것이 오늘 나의 스케줄.
내가 미쳤냐고요.
내가 꿈꾸냐고요.
그래요, 나는 꿈만 먹고 살아요.
내 이름 통일바보.
통일, 통일.
이게 꿈이냐, 생시냐.
통일, 통일.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부산에서 야구 보고 서울에서 영화보고. 평양에서 쇼핑하고 놀다 오는 것이 오늘 나의 스케줄.
내가 미쳤냐고요.
내가 꿈꾸냐고요.
그래요.
나는 꿈만 먹고 살아요.
내 이름 통일바보.
통일, 통일.
너를 생각만 하여도.
다같이.
통일, 통일.
괜히 눈물이 난다.
통일, 통일.
너는 대박이여라.
여기까지 할게요.
[앵커]
저희가 이 사옥으로 옮긴 지, 상암사옥으로 옮긴 지 이제 두 달 조금 넘었나데 이 사옥이 이렇게 멋진 무대로 변할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앵커]
정말 대박인 것 같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후에 맥을 이어갈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남북의 하모니가 이루어지니까 이게 노래 안에서 통일이 된 거지 않습니까.
[인터뷰]
1차적으로 된 거죠, 1차적으로.
[앵커]
분단의 아픔은 대한민국 국민의 누구나 가슴 속에 있는 거잖아요.
그걸 다독여주는 만져주는 노래가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아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통일되면 부산에서 야구보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 가서 쇼핑하고 그게 정말 마음이 와닿고요.
특히 북한에서 내려오셨으니까, 김충성 씨는.
통일이 되면 뭐를 하고 싶다는 게, 그게 남다를 것 같은데요.
[인터뷰]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가서, 가수를 했으니까 저는 자유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사상에 위배되는 노래를 부르게 되면 잘 아시는 아오지탄광으로 가야 되는, 정치범수용소를 가야 되니까 그런 제약성이 있었는데.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가서 정말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지 그거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고.
[앵커]
만약에 무대에 오른다고 우리가 꿈을 꿔 봅시다.
평양에서 큰 무대가, 콘서트가 열려서 그 무대에 서시게 되면 제일 먼저 부르고 싶은 노래 곡명은 무엇입니까?
[인터뷰]
저는 조영남 선생님의 통일바보를 부를 것 같습니다.
[앵커]
남으로 오시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또 남으로 오셔서 꿈 같이 조영남, 대선배님 아니십니까.
이런 노래를 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인터뷰]
제가 진짜 많이 당황했었어요.
관계자 분께서 저한테 전화가 오셔서 조영남 선생님께서 공연을 하시는데.
[인터뷰]
형.
[인터뷰]
조영남 형께서 노래를 하시는데 같이 해 보시는 게 어떻겠냐.
제가 조영남 형님께서 다른 유명한 가수분들도 많으신데 북한에서 온 저를 찾으셨을까 생각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형님께서 고향이 이북이셨고 통일을 생각하시는 그런 마음이 계셨더라고요.
또 통일바보 이 노래 같이 부르게 됐습니다.
[앵커]
조영남 형님께서 이번 토요일에, 이 노래를 통일바보를 포함해서 콘서트 하신다면서요?
[인터뷰]
성남하고 일산에서 주말에 콘서트를 하는데 같이 하려고 해요, 이 노래를.
[앵커]
그런데 콘서트가 특별한 포맷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인터뷰]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 일거예요.
가수가 그린 그림을 뒤 배경으로, 노래마다 거기에 맞는 그림을 비춰주는.
[앵커]
직접 화수라고 부르시잖아요, 직업을.
어떤 뜻이죠?
그림도 가지고 왔는데요.
[앵커]
이렇게 태극기하고 인공기가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뜻으로 그리신 것인가요?
[인터뷰]
제가 남북이 하나가 되면 태극기를 누구인가가 그려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혹시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조영남이가 그려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로 쓰자, 이런 의미에서 그린 겁니다.
[앵커]
통일되면 사용할 수 있는 국기를 말씀하시는군요.
[인터뷰]
임시로라도.
[앵커]
활용방안을 모색해 봐야겠네요.
[인터뷰]
두 개를 섞었죠. 민정 씨 아시겠어요, 그림?
금방 아시겠어요?
[앵커]
그럼요.
[앵커]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콘서트가 열리면, 통일돼서 콘서트가 열리면 통일바보 말고 그다음에는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 것인가요?
[인터뷰]
나머지들은, 기왕에 제가 한 것들이 많은데.
신곡 4곡을 하고 나니까 굉장히 노래 부자가 된 것 같아요.
4곡이라는 게 엄청난 비중 아니에요.
그래서 레퍼토리는, 같은 노래만 부른다.
쭉 그런 소문이 돌았거든요.
그런 건 불식되는 거죠.
[앵커]
6.25전쟁 64주년 되는 날인데요.
북한에서 태어나셨고 전쟁을 겪으셨고 북녘 동포들이나 또는 실향민들이나 내려오신 분들한테, 이런 분들한테 해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인터뷰]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에 탈북 청소년들하고 실크로드를 보름 동안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 친구들한테 26시간 기차타는 장거리 기차가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밤새도록 그 친구들이 어떻게 탈북했는지를 실제로 들어서 사연을 듣고 정말 이게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스토리를 직접 제가 들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위로해야 되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부르신 노래, 두 분이 부르신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절절한 마음들이 느껴졌고요.
저희들도 같이 통일을 꿈꾸고 모든 우리 북녘의 동포들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도록 같이 염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대박나시기 바랍니다.
[앵커]
두 분 나와주셔서 오늘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