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손에 손잡고 월드컵

2014. 6.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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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5일 맑음. 손잡고.
#112 Koreana 'Hand in Hand'(1988년)

[동아일보]

활동 당시의 4인조 그룹 코리아나. 의상과 선글라스 협찬은 '무려' 조르조 아르마니. 동아일보DB

일주일에 하루는 퇴근길에 퇴계로에 있는 방송국에 들른다. 라디오 출연을 위해서다. 코너 제목은 '문화가 산책'. 지난주에 난 그 산책을 위해 경주 비슷한 걸 했다.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을 보며 업무에 집중한 열정이 고생길로 보답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거다. 주차장이나 다름없는 남산 1호 터널 안에서 방송시간을 맞아야 한다는 의미다. 버스는 이미 터널을 향해 시속 1km로 운행 중. 라디오 작가에게 'ㅠㅠ'를 동반한 메시지를 보냈다.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려요!" "네? 여기 차도 중간인데요." "차로를 걸어서라도 와야죠. 안 그럼 방송 안 돼요!"

내 상황을 이해해준 470번 버스 기사님께 감사한다. 터널 요금소에서 버스 앞문이 열렸다. 직원 눈이 동그래졌다. 내리긴 했는데 갈 데가 없었다. 차들이 내 옆을 스쳤다.

영화의 구원 스토리처럼 좁다란 계단이 보였다. 올라갔다. 직원 대기실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직원께 공손히 여쭸다.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친절한 안내와 차들의 양보 덕에 난 차로를 건넜고 남산 초입의 방송국으로 내달렸다. 600m쯤 되는 길이 올림픽 마라톤 마지막 구간처럼 느껴졌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만 하는 선수의 심정을 아는가.

그때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뛰지 마세요. 숨차면 방송 안 되니까. 걸어오세요. 큰 보폭으로." 종목은 경보로 바뀌었다. 머릿속 배경음악은 스웨덴 록 밴드 유럽의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에서 방겔리스의 '불의 전차'로 바뀌었다. 달리는 모든 것의 슬로모션을 위한 사운드트랙.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가 '핸드 인 핸드'는 다시 들어도 놀라운 명곡이다. '플래시댄스… 왓 어 필링'(영화 '플래시댄스' 주제곡) '테이크 마이 브레스 어웨이'(영화 '탑건' 주제곡)도 작곡한 거장 조르조 모로데르의 작품이다.

월드컵이 시작됐다. 평화의 축전을 가장한 세계 전쟁. 어쨌든 그날 난 진행자 옆자리에 땀을 닦으며 앉았다. 천신만고 끝에. 가슴속에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제작진에게 제창을 청하고 싶어졌다. 손 맞잡고.

'하늘 향해 팔 벌려/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손잡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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