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학원서 나간 19억 어디로 갔나

정용인 기자 2014. 6. 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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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직전 이상한 고서화 구입… 구설 끊이지 않는 새누리당 의원인 홍문종 이사장

"임금 받으려고 생떼 쓴 거지. 정치적으로 약점을 잡아 이용한 거 아닙니까."

입구 매표소 관리인이 말했다. 6월 12일 기자가 찾은 박물관은 한산했다. 주차장에 5~6대의 차가 주차돼 있었지만 관람객이 타고 온 차는 아니었다. 박물관 관계자들 차다.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평일 낮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기자가 찾은 이날 오후, 기자를 제외한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지난 2월, 이곳에서 일하는 이주 예술인들에 대한 '착취·학대' 논란이 빚어졌다. 논란 끝에 이주 예술인 노동자들은 모두 떠났다. 매표소 관리인은 공연료가 빠져 성인요금이 7000원이라고 했다. 박물관의 이사장은 아직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다. 기자가 받은 영수증에도 '대표자 홍문종'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지난 2월 논란 때 그는 곤욕을 치렀다. 그는 지난 6월 8일 연합뉴스에 "골치 아프고 신경도 못 쓸 것 같아 팔려고 한다"고 밝혔다.

4월 8일 새누리당 원내 대책회의에서 당시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홍문종 의원(사진 오른쪽)이 함진규 대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홍문종 개인의 땅 경민학원에 팔아

"홍 의원 주변을 파보세요. 재미있는 것이 많이 나올 겁니다." 여권 전 고위 관계자의 귀띔이다. 기자가 만난 한 지역인사는 홍 의원이 2010년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을 사들인 이유를 이렇게 풀이했다. "사실 그곳은 인근에 탄약고가 있어 제한보호구역으로 묶인 곳이다. 포천시와 박물관 전 주인 사이에서 불법건축물 관련 시비가 있다는 것을 홍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사실 홍 의원이 사들일 무렵 민자도로 건설 논의가 있었고, 그러면 탄약고가 이전돼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만약 군사시설 제한보호구역이 해제되었으면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도 혜택을 받아 땅값이 엄청 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해제되지도 않았고…." 기자가 방문한 6월 12일에도 아프리카 박물관 구내에 서 있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성격의 건물과 토지는 또 있었다. 경민커피문화원이다. 의정부시 고산동 616-2번지에 위치한 경민커피문화원을 찾아가는 길은 가파른 산길이었다. 차 2대가 나란히 지나가기 힘든 4m폭 도로다. 경민커피문화원 옆 도로 숲속에서도 비슷한 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안내문이다. 경민커피문화원은 현재 학교법인 경민학원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전 주인이 경민학원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홍문종 의원이었다. 홍문종 '개인'이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학원에 토지와 건물을 판 것이다.

이곳의 등기부등본을 떼보면 홍문종 의원은 2005년 12월 14일에 정모씨로부터 건물과 토지를 사들였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에 매매가 접수된 시점에 같이 부기된 전 소유자 정씨의 주소 변화가 특이하다. 원래의 커피문화원 주소로 되어 있던 정씨의 주소가 홍문종 이사장의 당시 주소로 되어 있는 의정부 신곡동에 위치한 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의 같은 동 하나 건너 집에 사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사연'이 궁금한 대목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홍문종 의원은 이 땅과 주변 땅을 담보로 3억6000만원을 은행으로부터 빌렸다. 그리고 2009년 11월, 이 땅은 다시 홍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경민학원에 13억2700만원에 팔렸다.

홍 의원이 아프리카 박물관을 매입할 당시 구입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이 나왔었다. 80억5000만원은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재산을 국회에 신고해야 한다. 2012년 5월 국회 신고 당시 재산은 69억6949만원이었다. 이때 밝힌 채무는 110억원이었다. 홍 의원의 재산 형성과정을 추적해온 유종규 경기북부시민신문 기자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경민학원에 임대해준 의정부 시청 앞 신도아크라티움 5~6층의 임대보증금 10억원을 빼면 이자 발생 가능한 채무는 100억원인데, 평균 이율을 5%로 잡으면 매달 4000만원이 넘는 이자를 갚아야 하고, 이율이 3%라면 월 2500만원을 갚아야 한다"며 "최근까지 경민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연봉이 2011년 기준으로 8119만원이다.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입장료, 임대수입 등을 다 합쳐도 도저히 월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나와 질의를 했지만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에게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온 사람이 있다. 김철기 전 친박연대 사무총장이다. 올해 2월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착취 논란 때도 그가 나타났다. 논란이 불거지자, 홍 의원은 김철기씨를 신임 관장으로 임명했다. 6월 12일 만난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관계자들은 실제 김씨가 관장으로 재임한 시기는 "약 한 달가량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일이 태권도계에서도 있었다. 태권도계를 대표하는 국기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홍문종 위원은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국기원 정기이사회에서 김철기씨를 감사로 임명했다. 태권도계 관계자는 "지난해 8월쯤부터 홍문종 이사장이 임명한 이사들의 비리 전력 등으로 논란이 일자, 김철기씨가 홍 이사장을 대리해 사람들을 만나 문제제기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었다"며 "태권도계 일각에서 김씨 사업(여행업)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등 논란이 되는 마당에 그의 감사 임명 소식에 대부분의 태권도계 관계자들이 반대했었다"고 회고했다. 이 관계자는 "김철기씨의 경력을 보면 친박연대 사무총장 말고도 권투협회 부회장 등의 경력이 있는데, 권투 경력과 태권도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 주간경향 > 은 홍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경민학원의 결산서류를 검토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김철기씨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민학원의 2012년 결산내역 중 '기부금 지출명세' 항목에서 이 해 9월 '집기비품-박물관 서화 구입'이라는 항목으로 10억원, 그리고 10월에 다시 2억원과 7억원 등 모두 19억원이 지출되었다. 그런데 '지급처 명'이 김철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철기씨는 홍 의원의 고등학교 2년 후배로, 2006년 홍 의원이 수해지역에서 골프를 쳐 당에서 제명됐던 이른바 '수해골프 사건' 때 홍 의원과 동행했던 인사다. 홍 의원 측도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경민학원 학교 측에 2012년 김철기씨에게 19억원을 지출한 경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결산서류에 나온 서화는 김씨가 그린 작품이 아니라 김씨가 갖고 있는 그림과 글씨 등 고서화였다고 경민학원 측은 밝혔다.

이주 아프리카 예술인 착취 논란을 빚었던 경기도 포천 소재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 정용인 기자

사들인 작품 목록조차 공개 거부

경민학원 측은 "익명의 사람들이 '김철기가 가지고 있는 고서화를 구입해달라'고 19억원을 학교 측에 지정기탁해왔고, 김씨로부터 사들인 고서화는 현재 학교의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19억원을 경민대학에 기부한 사람들이나 작품목록, 19억원 처리 등을 다루는 이사회 회의록은 "기부한 당사자 등이 공개를 원치 않기 때문에 비공개"라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김철기씨가 갖고 있는 고서화를 구입하는 데 써달라"며 기부받은 19억원은 경민대학을 거쳐 다시 김철기씨에게 흘러들어갔다. 김철기씨가 소유했던 고서화가 어떤 작품들인지 말해주는 최소한의 작품목록조차 "보안상의 이유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측 입장이다. 학교 측 관계자는 "당시 고서화에 대해 학교에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인사동을 통해 감정평가서를 받았고, 또 보험을 들면서도 검토하는 등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감정평가서나 평가액에 근거한 보험을 든 서류는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

김씨에게 지급된 19억원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2012년 9월과 10월은 그해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2~3개월 전 시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씨는 친박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홍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이라는 직함을 맡고 있었다. 다 차치하고라도 경민학원에는 아직 박물관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대선을 앞둔 시점에 박물관 전시를 목적으로 고서화를 구입했을까.

< 주간경향 > 은 사실확인을 위해 김철기씨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했으나 통화되지 않았다. 김씨의 개인 페이스북에는 6월 11일부터 해외로 출국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여행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적었다. "새누리당의 전당대회가 큰 관심입니다. 홍문종 의원의 선전을 기대해봅니다." 경민학원 측은 " < 주간경향 > 이 제기하는 질문 대부분은 이사장님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6월 13일, 홍문종 의원은 "새누리당 전당대회 준비 때문에 답변할 시간이 없다. 궁금한 점에 대해 서면으로 질문을 주면 학교 재단에 (답변을) 넘기겠다"고 밝혀왔다. 기자는 이미 취재를 통해 재단의 입장은 충분히 확인했으며 이사장 개인이 해명할 문제만 남아 있다고 재차 알렸다. 하지만 홍 의원으로부터의 답은 마감 시점까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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