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그린 목단화, 지금도 기억하는 할머니

2014. 6. 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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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승훈 기자]

궁둥이텃밭

단풍나무 그늘이 드리운 평상에 앉아,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좀 더 욕심을 내보고 싶었다. 함께 할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 곳 구성원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으며 지속적인 것이었음 했다. 그래서 3명의 작가(고아람, 문성예, 이승훈)가 모여 토론한 끝에 협업 아이디어 하나가 탄생했다. '궁둥이 텃밭'이 그것이다.

단풍나무 평상에만 있는 텃밭, 그런 독특한 텃밭은 없을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평상 주변에 앉을 곳이 없어, 버려진 의자들을 주워온다는 점이었다. 평상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지만 서로 마주보기에는 불편한 구조다. 이는 평상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다리가 꺾이거나, 삐거덕대며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의자들이 평상 주변에 있었다.

지팡이나 구루마에 의존하는 할머니들에게 이런 의자들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텃밭의 기능과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면 어떨까?' 이름 하여 '궁둥이 텃밭' 우리는 앉을 수도 있고, 화단이나 텃밭으로도 이용 가능한 의자 겸 텃밭을 만들었다.

▲ 궁둥이 텃밭

뚜껑이 있어, 평소에는 식물이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 뚜껑을 닫고 평상 주위에 위치시켜 앉으면 의자로도 활용 가능하다.

ⓒ 이승훈, 고아람, 문성예

만들고 난 후 아쉬운 점이 두개가 있었다. 우선 생각보다 실용성이 없었다.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허리가 불편하여 항상 기댈 곳이 필요했다. 등받이가 필수요소였다. 하지만 우리가 디자인한 '궁둥이 텃밭'은 우리 같이 젊은 사람들이야 앉아서 놀기에는 적합해도, 할머니들이 앉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필요할 때는 탁자로 쓰기도, 부족한 의자를 대신하여 우리들이 앉기도 하며 최대한 이용하고자 노력했다. 두번째는 작업장에서 뚝딱 만들어져 도착한 텃밭의자가 할머니들에겐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생긴 것도 익숙하지 아니한 녀석이 갑자기 평화로운 공간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 또한 필요했다.

모란꽃

그래서 하루는 그림도구들을 준비했다. 집에서 갖고 나올 수 있는 아크릴 물감과 붓은 모두 갖고 나왔다. 무턱대고 평상에 눌러앉아 텃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보겠노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앉았는데, 막상 그릴만한 이미지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고 있자니 할머니가 핀잔을 줬다.

"안 그리고 뭐해? 빨리 그려~!"

"할머니, 무얼 그릴까요? 좋아하는 꽃 그릴까요?""목단화~!, 목단화 함 그려봐."

"목단화요?, 목단화가 뭐예요? 잘 연상이 안 돼요."

"목단화도 몰러? 대학 나온 거 맞어?, 붓 좀 이리 줘봐, 내가 그려 볼 테니."

▲ 그림 그리시는 할머니

궁둥이 텃밭에 그릴 그림을 할머니가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 이승훈

붓을 쥐고 버려져 있는 박스 조각에 쓱쓱 그림을 그리셨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꽃 하나가 완성되었다. 멋스러운 동양화였다.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서야 목단화가 모란꽃임을 알았다(*목단화 : 같은 말 모란꽃.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꽃).

일곱 살 때, 서당에서 붓글씨와 천자문을 배웠다고 했다. 그때 그렸던 목단화(모란꽃)를 지금도 기억하고 계셨다.

70년이 지난 세월, 그때의 일을 너무나도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던 할머니. 그때만큼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셨다. 실력은 녹슬었을지 모르지만, 그림을 그리던 즐거움만큼은 녹슬지 않고 남아 있었다.

▲ 나무이야기③

할머니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소재로, 매주 포스터를 한 장씩 만들어 입간판에 게시했다. 이 이야기는 할머니께서 그려주신 모란꽃을 주제로 포스터를 제작했다.

ⓒ 이승훈, 고아람, 문성예

단풍나무 평상에 있을 때면,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가 항상 해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네 살 꼬맹이일 때의 나를 업고 제주도 바다 내음이 짖은 바닷길을 걸을 때면, "할머니, 할머니 무거워~ 나 내려줘, 나 걸어갈 수 인~" 하고 말했다고 추억했다.

20년이 지난 소소한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던 할머니였다. 그 때는 할머니께서 왜 그런 과거의 장면을 매번 떠올리시는지 몰랐다.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내 손을 꼭 쥐고 "어이구~ 어이구~" 하시며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해 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인천 구월동에서 '틈만나면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었습니다. 기사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 하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틈만나면 단풍나무 평상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입니다. 또한 이 글에서 사용되는 '사진'과 '포스터'는 '만만한 뉴스(http://manmanhan.tistory.com/)'에 중복 게재되고 있습니다. (작가 : 이승훈, 문성예, 고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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