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살인·조혼·혐오..딸로 태어난 것이 무섭다

입력 2014. 6. 8. 19:37 수정 2014. 6. 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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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잘못된 종교관·관습 우선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매년 5000명 이상이 명예살인당해

올해 18살인 아프가니스탄 여성 자키아는 현재 카불의 여성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무함마드 알리(21)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이들의 도피는 지난 6일(현지시간) 자키아의 가족들이 알리를 납치 혐의로 붙잡아 경찰에 넘기면서 끝이 났다. 자키아는 여성인권단체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가족들에게 잡히면 '명예살인'의 이름으로 목숨을 잃을 처지다. '아프가니스탄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7일 뉴욕타임스에 보도돼 큰 관심을 모았다.

전 세계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자키아처럼 법보다 우선시되는 잘못된 종교관과 관습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전 세계가 공분하지만 여성의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 이소벨 콜먼 선임연구원은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이처럼 무서운 일이 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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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명예살인은 관습 때문에 여성들이 희생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 파키스탄 임산부 파르자나 파르빈도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 살해당했다. 터키에서는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봤다며 이혼소송을 벌이는 어머니를 아들이 총으로 쏴 죽인 일도 있었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00명 이상의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국제사회 비난에도 명예살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처벌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간통을 한 아내를 살해한 남편은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징역형을 받더라도 1년형을 넘지 않는다.

인도 등 일부 시골마을에 존재하는 족장회의도 여성들을 옥죄고 있다. 족장회의는 전통적인 사회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만의 재판을 벌인다. 법은 무시된다. 인도 웨스트벵골주에서는 지난 2월 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려 했다는 이유로 족장회의에서 '여성을 마음대로 농락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 여성은 촌장을 포함한 마을 남성 12명에게 짓밟혔다.

조혼은 많은 경우 가정폭력과 부부강간으로 이어진다. 성년이 되지 않은 수많은 소녀가 심하면 7∼8살 때 성인 남성과 강제로 결혼한다. 유니세프는 2013년 니제르의 여성 75%, 차드 여성의 68%, 인도 여성의 47%가 18세 이전에 결혼한다고 밝혔다. 예멘 등 일부 국가에서는 최저 결혼연령 규제가 없다. 있더라도 겉치레에 불과하다. 성년이 될 때까지 부부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형식적인 것일 뿐 지켜지지 않는다.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들은 남편의 구타에 시달린다. 도망치면 가족들에게 명예살인을 당하기도 한다.

◆여성혐오 확산 우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범죄자 개인적 상황과 사회적 문화가 각기 다르지만 근저에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남성우월주의와 같은 여성 왜곡인식이 공통으로 깔려 있다. 성폭력 사건이 빈발하는 인도에서 정치인들이 "옳은 성폭행도 있다"(바부랄 가우르 마드야프라데시주 내무장관), "성폭행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람세박 파이크 차티스가르주 내무장관)이라며 잇따라 쏟아내는 망언들은 여성에 관한 남성의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다. 명예살인이나 가정폭력 등도 '여성은 남성보다 못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폭력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엘리엇 로저 사건은 여성혐오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진 사례다. 그는 '자신을 거절한 여성들에 대한 복수'를 이유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여성혐오 분위기는 인터넷을 타고 더욱 확산하고 있다. 로저도 여성들을 욕하는 남성들이 모인 사이트에 가입해 활동했다. 또 범행 발생 후 로저를 '영웅'으로 찬양하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등장하기도 했다. 영국 BBC방송 뉴스프로그램 진행자 커스티 워크는 "SNS나 웹서핑 등을 통해 사회 내 잠재돼 있던 여성에 대한 혐오를 더 쉽게,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여성 혐오, 성차별적 콘텐츠는 익명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충격적인 여성 대상 범죄 사건들에 대해 미국의 여권운동가 제시카 발렌티는 영국 가디언 기고문에서 "(이들 사건이) 전 세계에 '더 이상은 안 된다(enough is enough)'는 경고를 하고 있다"며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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