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기타의 코드는 모음 같다, 엄마 같다

입력 2014. 6. 2. 03:08 수정 2014. 6. 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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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일 맑음. 어머니와 코드들.
#110 김창완밴드 'E메이져를 치면'(2014년)

[동아일보]

지난달 31일 밤 강원 춘천시 남산면 남이섬 '레인보우 아일랜드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는 김창완밴드. VU엔터테인먼트 제공

몇 년 전, 난 일요일 아침마다 A의 집에 갔다.

피아노 잘 치는 A에게 화성학을 배우는 대가로 난 A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기로 한 것이다. 통기타를 처음 들면 2, 3주간은 바보가 된다. 입으로 "C(시)… C… C…" "Am(에이 마이너)…Dm(디 마이너)…G7(지 세븐)…다시 C…"를 반복하며 단순한 코드만 퉁기고 있자면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온음음계('도-레-미-파#-솔#-라#'처럼 온음으로만 구성된 음계)를 설명하며 드뷔시(1862∼1918)의 꿈결 같은 피아노곡을 건반 위에 신기루처럼 뿌리던 A도 예외는 아니었다. 머리는 드뷔시인데 손은 초등학교 특별활동 중인 거다.

멍하니 코드를 퉁기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4∼6음이 동시에 울리며 말 풍선을 만들어낸다. '점심 뭐 먹지?' '피아노는 기막히게 치더니…' '기타고 뭐고 그만둘까'….

김창완밴드가 최근 낸 신곡 'E메이져를 치면'은 바보 같은 노래다. 보컬 멜로디가 없다. 김창완은 기타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E…F#m…A…D…Bm…G…Em…' 코드를 단조롭게 퉁기며 배우처럼 방백한다.

'E메이져를 치면 늘 그녀가 입던 초록색 점퍼가 생각이 난다/F#마이너를 치면 왜 그녀 집으로 가던 육교가 떠오를까…Em에서는 양말상자가/A를 치면 창가에 소파가/베이지색 소파가 떠오른다'

쓸쓸하나 명료한 목소리와 말투가 가히 최면 같다. 산울림 시절에도 이렇게 내레이션이 들어간 곡들이 있었다. 그의 독보적인 연기력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랭보(1854∼1891)의 시 '모음들(母音들·Voyelles)'이 떠오른다. 랭보는 'A는 검정, E는 흰색, I는 빨강, U는 초록, O는 파랑'이라고 했다. U와 O의 순서가 왜 바뀌었는지, 모음과 색의 조합이 어떤 기원을 지녔는지, 천재 시인 랭보를 둘러싼 수수께끼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우리들 중 소수는 특별한 공감각을 타고난다고도 했다.

그날 A가 연주했던 드뷔시의 피아노곡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베일(Voiles)'이었나.

기타 코드는 모음 같다. 엄마 같다. 멜로디를 낳고 몽상을 키운다. E메이저를 퉁겨본다. 미, 시, 미, 솔#, 시, 미…. 바람이 분다.

시간의 베일이 살랑인다. 뭔가 생각이 나려 한다. '한동안 다른 코드를 칠 수가 없다/그래도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A…D…Bm…G…'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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