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 누명은 벗었지만.. "성폭행 진실도 밝힐 것"

조형국 기자 2014. 5. 3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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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은 딸 명예 위해 9년간 홀로 싸운 유미자씨

모퉁이가 닳은 한 뭉치의 서류더미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경찰 수사기록,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 등엔 밑줄이 빽빽했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딸 황인희씨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어머니 유미자씨(56)는 햇수로 10년째 딸의 죽음에 관해 남겨진 모든 기록들을 좇고 있다. 2005년 5월31일 공기업에 다니던 유씨의 딸 황씨(당시 22세)는 같은 회사 인사과장 이모씨(당시 38세)에게 살해당했다. 이씨는 황씨의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은 위증과 조작된 메모지를 근거로 두 사람을 내연관계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유씨는 이런 수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딸과 이씨는 내연관계가 아니고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씨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유씨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딸과 이씨가 내연관계가 아니었음은 밝혀진 상태지만 성폭행 부분은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았다.

살해된 딸의 억울함을 밝혀내기 위해 9년째 홀로 싸우고 있는 유미자씨가 딸의 기일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재수사를 요구하는 건의서에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경찰, 내연관계로 수사 종결 성폭행 혐의 부분 인정 안돼"억울한 죽음 더 일어나지 않길" 법 전문가 찾아 다니며 공부2심 재판 때 딸 자필메모 위조 공사 직원 위증도 직접 밝혀내

30일 딸의 9주기를 맞아 유씨는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추모예배를 올렸다. 기일이 다가오면서 유씨는 지난 26일부터 청계광장 소라탑 옆에서 "성폭행 혐의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재수사 건의서에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30일 오후까지 300여명이 서명에 참가했다. 이 사건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진상을 알고 있는 시민도 있었다.

유씨는 그동안 홀로 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하나하나 밝혀냈다. 유씨는 먼저 딸이 내연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경찰 수사의 문제를 조목조목 따졌다. 초기 수사에서 내연관계로 결론지었던 경찰 조사관은 1심 판결 후 " '내연의 관계'라는 표현은 무식해서 한 표현이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유씨는 이씨 동료직원이 위증한 사실도 확인시켰다. 당시 황씨와 교제하던 공사 직원 고모씨(당시 32세)는 경찰 조사와 법정에서 "이씨와 살해된 황씨는 내연관계였으며 나는 통화만 하는 사이"라고 증언했다.

유씨는 전남 곡성으로 발령받은 고씨를 찾아가 진실을 말해주길 간청했다. 유씨의 끈질긴 노력 끝에 고씨는 결국 진실을 털어놨다. 고씨는 2007년 위증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에서 이씨의 변호인 측이 "내연관계를 암시하는 글"이라며 재판부에 제출한 '황씨의 자필메모'가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유씨다. 대법원은 내연관계가 아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황씨에게 교제를 요구하다 이를 거절하자 살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 유씨는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 공사 책임자의 진정한 사과가 있을 때까지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유씨가 지금까지의 결과를 얻어내는 동안 수사기관이나 정부기관 어느 쪽도 유씨를 돕지 않았다. 서적을 읽거나 법의학 전문가를 찾아 다녔다. 비슷한 사건의 법정을 참관하기도 했다. 유씨는 이제 수사, 기소, 재판에 걸친 형사 소송 전반은 물론 필적 감정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이 됐다. 유씨는 "9년 동안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며 "대한민국에서 살인 피해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딸을 살해한 이씨는 현재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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