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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심 곳곳 시한폭탄…208곳 '빨간불'

언제 무너져도 전혀 놀랍지 않은 건물들

[취재파일] 도심 곳곳 시한폭탄…208곳 '빨간불'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모를 것 같은 곳.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를 것 같은 곳. 언제 무너져도 전혀 놀랍지 않은 곳. 서울에 그런 곳이 있을까요? 정답은 ‘있다’입니다. 그것도 꽤 많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한 달이 지나고, SBS는 ‘체인지 코리아, 안전이 미래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연속 기획보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재난위험시설’에 대해 다루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공산품이나 식료품에 대해 안전점검을 하듯이 주택이나 건물 같은 시설물에 대해서도 안전점검을 실시합니다. 시설물 안전점검 등급은 A등급부터 E등급까지인데, D등급과 E등급은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됩니다.

서울시에 이런 재난위험시설은 지난 5월 2일 기준으로 208곳이나 됩니다. 특히 이 가운데 최하 등급인 E등급은 29곳이나 됩니다. 안전점검 실시 결과 E등급을 받게 되면, 관할 구청은 해당 시설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립니다. 건물이 붕괴 위험이 높으니 즉시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는 것이죠.

이론상으로 보면 안전점검을 실시해서 낮은 등급을 받은 건물은 입주민을 대피시킨 뒤, 철거나 보수공사를 하면 됩니다. 그것이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목적이겠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면 서울 시내에 무려 208곳이나 재난위험시설로 방치돼 있진 않겠죠?

E등급을 받은 29곳은 다양했습니다. 건물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재래시장도 있고, 단독주택도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아파트 2곳, 재래시장 1곳, 1층짜리 일반주택 1곳으로 분류된 곳들을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1969부터 지은 아파트 4개 동이 서울 한복판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습니다. 서울 성북구의 이 아파트는 4개 동 가운데 1개 동이 D등급, 나머지 3개 동이 E등급을 받아 모두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곳은 철거되지 않은 채 주민 24세대 50여명이 위태위태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아파트는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콘크리트 안에 있어야할 철골 구조물이 벽 바깥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내부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한 주민은 밤에 잠을 자다가 “천장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머리로 떨어져 죽을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서대문구에 있는 아파트의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지난 1971년 지은 이 아파트는 현재 2개 동이 남아 있는데 지난 2007년 두 동 모두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았습니다. 성북구에 있는 아파트보다 훨씬 더 상황이 열악했고, 계단 곳곳이 떨어져 나가 있어 발을 딛고 올라가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아파트 복도로 작은 창문이 하나 나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안에는 제 키보다 높게 짐이 쌓여 있었습니다. 정말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나도, 사람이 죽어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아파트 입구부터 ‘대피명령’이 내려져 있다는 붕괴 위험 경고문이 붙어 있어 외부 사람들이 드나들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이곳에 현재 3세대가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갈 곳 없는 노숙자들도 몰래 빈집에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실제 거주자는 더 많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밤마다 비행 청소년들이 이곳 옥상에 숨어들어 담배를 피운다는 주민들의 제보였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낙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학생들의 흡연도 문제지만, 그들의 안전 문제가 더 걱정됐습니다. 또 이곳 바로 옆에 최근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이 자리 잡고 있어, 실제로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동작구에 있는 신노량진시장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낡은 재래시장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허름한 시장 사이로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아 대낮에도 어두컴컴했습니다. 걷기에도 무서운 길이었지만 근처에 사는 시민들은 큰길로 나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 다녔습니다. 역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은 곳입니다. 용산구의 1층짜리 시설물로 E등급으로 지정된 곳은 고무 제품을 가공하는 작업장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노후건물이었는데, 안에 고무가공기계까지 설치돼 있어 화재에도 취약해 보였습니다.

 E등급을 받은 시설물들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라는 놀라움이었습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 붕괴위험이 있는 건물이 2백 곳이 넘는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입니다. 이어 드는 의문점은 ‘왜 이런 건물들이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걸까?’였습니다. 왜 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재난위험시설 208곳 가운데 1곳만 제외하고 모두 개인 소유 건물입니다. 공공시설물이 아니라 민간시설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할 구청이나 서울시에서 할 수 있는 건 입주민들한테 대피 명령을 내리는 것뿐입니다. 개인 재산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로 철거 명령을 못 내린다는 겁니다.

물론 정말 위험한 경우 행정대집행으로 철거할 수도 있겠죠. 철거하려면 입주민들을 먼저 이주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주민들과 이주비, 혹은 보상금 문제에 대해 타협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앞서 취재진이 방문한 성북구의 아파트와 서대문구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관할 구청이 입주민이 원하는 이주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기대치와 구청이 내놓는 대책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죠. 서울시도 나름대로 고충을 안고 있습니다. 사유 재산에 대해 일일이 보수공사를 해주고, 입주민들의 입맛에 맞는 이주 대책을 다 마련해준다면 예산도 부족하거니와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주들이 지자체의 보수공사를 기대하며 너도 나도 관리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만 흘러가다보면 시민들의 안전은 점점 더 위협 당하게 됩니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해 사주 등을 상대로 3,48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지난 3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한 아파트 폭발 붕괴사고 피해자들은 아파트 소유주 등을 상대로 백억 원대의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안전을 외면한 소유주들에게 명백한 책임을 물은 사례들입니다. 전문가들은 공공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안전 문제가 있는 사유물에 대해서는 먼저 행정대집행을 한 뒤 구상권 청구 등으로 사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것이 시민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는 것이죠. 사유물이라고 건들지 않는 지자체나, 보수 공사할 여력 없다며 ‘나 몰라라’라는 소유주나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불러일으킬 장본인들입니다. 누구도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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