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근본부터 바꿔라] (1부·①) '공무원이 최고'.. 고시촌에 갇힌 32만 청춘들

신아람 2014. 5. 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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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채용 1. 공무원이 최고인 나라창조시대, 안정만 좇는 청춘들.. 국가의 미래, 누가 이끌어가나취업 시험 준비 15∼29세 3명중 1명꼴 공무원 수험생.. 올 5급 공채 경쟁률 32대 1정부 관피아 척결 의지에도 노량진·신림동 여전히 치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료집단의 무능과 적폐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공직사회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5급 공채(행정고시)의 경우 민간인 비율을 50%까지 확대해 경직되고 획일적인 공직문화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민간인 5급일괄채용제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타당성 분석 없이 민간인 채용을 대폭 확대할 경우 자칫 새로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시대정신에 걸맞은 공무원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사 및 채용제도에서 실적주의에 근거한 획기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공무원들이 현장과 실무에 능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쌓는 집단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뉴스는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 해법 모색과 바람직한 공직사회를 위한 개혁의 방향 및 대안을 시리즈로 집중 조명한다.

올해 5급 공무원 공채에는 430명 모집에 1만3700여명이 지원해 3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법무행정직에는 9명 지원에 835명이 몰려 92.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달 발표한 '청년층의 취업관련 시험 준비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관련 시험을 준비한 청년(만 15~29세)은 96만명으로 이 중 공무원 수험생이 31만9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처럼 고시에 대한 과잉 열풍이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피아(관료+마피아)로 상징되는 관료집단이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확고히 자리잡으면서 신분상승을 위한 고시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아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가 초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시가 전부'인 신림·노량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신림동 고시촌은 한 달여 남은 5급 공무원 2차 시험 준비에 몰두하느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년 초 있을 1차 시험을 일찌감치 대비하는 수험생도 있었다.

일요일 새벽 6시쯤 고시촌 인근 S독서실 앞에는 수험생 10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김모씨(25)는 "매달 한 번씩 스터디그룹과 번갈아가며 스터디룸을 예약하는데 불안할 때는 새벽 5시부터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시원에 둥지를 튼 수험생들은 "지원자 수에 관계없이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시험이 한 달 남아서 더 민감한 시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치열한 분위기는 7·9급 공무원과 경찰공무원 준비생이 밀집한 노량진 학원가도 마찬가지다. 매년 11월이면 법원직 9급공무원 준비생들이 마무리 강의를 들으러 1000여명씩 줄서서 기다리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업무에 종사해야 할 젊은이들이 이처럼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직업의 안정성과 명예 등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특히 고위공무원으로 출세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로 행정고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시는 '입신양명'의 꿈을 키워주는 신분상승사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고시를 통해 공직에 들어간 공직자들은 국가발전의 선도적인 역할은 물론 공직사회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면서 한국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데 따른 전문성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공직사회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공직사회도 전문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를 요구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 간의 파벌형성이나 권위적 상하관계 등은 관료조직을 연공서열 중심으로 굳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비판받아 왔다. 이에 따라 관료조직은 급속한 사회 발전과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개혁과 혁신의 대상 1순위로 꼽혔다.

국민구성원 전체가 높은 교육수준을 달성한 상황에서 제너럴리스트가주도하는 산업화 시대의 산물인 고시제도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성인이 된 몸에 유치원생 원복을 입혀놓은 격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고도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전문행정가가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계급제하의 공무원은 더 이상 전문행정가로 평가받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직사회의 지속적인 경쟁과 민주적이고 건설적인 의사결정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외부수혈은 물론 조직문화를 시대변화에 발맞춰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을 더 이상 외면하긴 힘들어졌다.

■고시에 목맨 청춘, 국가 미래는

고시 열풍에 따른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은 수년간 많은 비용을 투자해가며 시험에 몰두한다. 대외활동과 학업에 소홀해져 나중에는 '강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5월 24일 밤 10시30분께 신림동 고시촌에서 수험생 4명을 만나 고시를 택한 이유를 들어봤다. 재경직 2차 시험을 앞둔 이들은 답안지 스터디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모씨(24)는 "5급이든 7급~9급이든 모두 안정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이씨는 "사법고시가 폐지될 때 비싼 등록금, 교재값,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돈을 못 버는 기회비용 등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가 많았다"며 "반면 '사다리 걷어차기'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 남자)' 이런 게 고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모씨(24)는 "연금도 무시할 수 없다"며 "공무원 연금은 받아야 할 임금을 국가에 냈다가 나중에 돌려받는 후불임금 성격이다. 연금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국민연금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권모씨(25)는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공무원을 하다가 다른 직장으로 진출하려는 생각도 조금 있다"고 말하자 이씨가 "이제 '관피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험생들은 정부의 행정고시 축소 방침에 대해서도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싱숭생숭하고 공부도 안 된다"며 의견을 쏟아냈다. 실제 고시촌 고시학원과 대형 서점 앞에는 '행정고시 축소 반대 대책위원회'가 수험생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민간과 유착된 게 문제라면서 민간경력자를 뽑는다는 게 의문" "채용과정에서의 공정성이 문제다" "공직사회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를 외부 충원방식을 바꿔 해결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등의 의견을 표명했다. 임모씨(30)는 "내부 위계질서와 법이 그대로여서 민간경력자가 창의적으로 일할 여건이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요즘 세대는 삶의 질과 존경받는 직업을 고려해 공무원을 택하는 것 같다"며 "처음부터 공무원만을 좇다 보면 사회발전이 이전보다 더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서 젊을 때 하고 싶은 일을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실패도 경험하는 게 더 풍부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안정된 직업보다는 창의적이고 개혁적인 직업이 미래 사회에서 더 각광받을 거라 본다"고 덧붙였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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