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환율체력'을 키워라] (1) 환율만 쳐다보는 수출, 수출 계산기만 두드리는 경제

김문호 입력 2014. 5. 22. 17:43 수정 2014. 5. 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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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변동에 왜 민감한가원화 나홀로 강세에 수출기업들 '아우성'달러·엔·위안화 하락 속 통화전쟁 희생양 될수도

한국경제가 환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화 강세로 그동안 '고환율'에 안주해 있던 수출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원화가 강세를 보일 때면 한국엔 마치 수출만 있고 수입은 없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연내에 세자릿수 환율 시대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산업계는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한 국가의 통화는 그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기술력의 총화인 국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덩치가 커진 한국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원화의 국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원화강세가 한국경제와 기업, 금융시장(금리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며 놀라운 성장세를 일궈낸 원동력인 환율(수출 성장)이 거꾸로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경쟁업체들의 노골적인 견제로 정보기술(IT).자동차 등 우리 주력산업 성장세는 눈에 띄게 주춤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장기적으로 '달러 강세(미국 경상수지 적자)→경상수지 흑자국 절상 압력'으로 이어지면서 신통화 전쟁 압력까지 더해질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달러·엔화 기침에 원화는 몸살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수출 위주의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 때문에 환율변동에 민감하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의 '주요국 환율의 수출가격 전가율 비교분석과 시사점'이란 논문에 따르면 2009년 1·4분기~2013년 1·4분기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 전가율은 0.54였다. 이는 1차 절상시기(2002년 1·4분기∼2007년 4·4분기) 때 0.239보다 높아졌다. 수출가격 전가율이 0.54라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1% 하락(원화가치 절상)할 때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달러 표시 수출가격을 0.54% 올렸다는 의미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보다 작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가격을 마음대로 인상할 수 없는 만큼 결국 채산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8∼12일 340개 수출기업(대기업 30개, 중소기업 310개)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8.5%가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채산성이 악화했다고 답변했다. 기업이 제시한 손익분기점과 적정이윤이 보장되는 환율은 각각 달러당 평균 1045원, 평균 1073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국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0.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엔저 현상도 우려스럽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원.엔 환율이 100엔당 연평균 1000원과 950원일 때 국내 총수출은 전년 대비 7.5%, 9.1% 각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경제의 체력이 좋아지면서 원화 대접이 달라졌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은 지난해 사상 최대규모인 799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3월 경상수지가 73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는 등 25개월째 흑자다. 한국자산에 대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연초 국내 주식시장에서 팔자에 나섰던 외국인들은 4월, 5월에 각각 2조8000억원, 1조2000억원가량을 사들였다. 외환보유액도 3543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외환보유액은 환율 변동폭이 커질 때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버퍼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엄살만 떨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기존 산업의 고도화와 새로운 성장산업 육성, 과학기술 주도의 산업발전 구조 정착,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소재 및 부품을 포함한 제품 이노베이션의 모든 부문을 국내에서 하겠다는 폐쇄성을 지양하고 글로벌 분업의 효율성과 신흥국의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며 "아울러 해외 현지 생산과 수출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넛-크랙트(nut-cracked) 경고

새로운 통화전쟁에 대한 걱정도 고개를 든다.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끌어내리며 통화전쟁에 나섰다. 영국 중앙은행은 선진국에선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연 0.25%로 낮췄다. 신흥국들이 최근 금리인상이라는 극약처방을 꺼내들었고, 중국은 위안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통화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공포를 떠올리고 있는 것. 그 시발점인 1994년 글로벌 경제상황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불황에서 허우적대던 미국 경기가 활기를 되찾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급선회한다. 그러자 미국 시장을 떠나 중남미에 둥지를 틀었던 외화자금이 이탈했고, 심각한 금융위기가 터졌다.

통화전쟁의 근원은 미국의 테이퍼링에 따른 달러강세다. 여기에 국내총생산(GDP)의 3%까지 늘 것으로 전망되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이 1980년대와 같은 환율절상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일본이 타깃이었지만 이제는 중국과 한국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은 지난해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 독일, 일본, 한국 등을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거명하고 있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1980년대 통화전쟁의 표적이 당시 최대 경상흑자국 일본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 중국 등이 될 것"이라며 "올해 미국의 원·달러 환율 절상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밝혔다.

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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